2020년 1월 말부터 스멀스멀 퍼지기 시작한 바이러스. 3월인 지금 정점을 찍은 듯 보이나 언제 사그라들지 알 수 없는 그 이름, 바로 코로나19. 전 세계가 코로나19 때문에 들썩이는 지금, 결혼식이 예정되어 있는 예비 신혼부부들을 정말 발을 동동 구르면서 예기치 못한 이 상황을 힘겹게 돌파해야만 할 것이다. 얼마 전, 친구의 결혼식이 있었다. 그 친구 역시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잘 헤쳐나가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가족과 함께 결혼식에 참석하지만, 이번의 경우는 나 홀로 참석해야만 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바이러스가 우리 가족을 위협할지 모르니 말이다. 마스크를 벗지 않고 예식장에 들어섰고, 신부는 신부대기실이 아닌 신랑과 같이 입구에서 하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오! 역시 신선한 방식, 내 친구 다웠다. 마스크를 풀고, 축하의 말을 건넸지만, 코로나 때문에 근심이 많을 텐데 어쩌나 하는 우려의 마음이 더욱 크게 전달된 것 같다. 차라리 내색 말고 그저 활짝 웃으며 축하만 듬뿍 해줄걸 하는 후회는 항상 뒤늦게 몰려오는 법. 방명록과 포토존까지 마련한 걸 보니 역시 소소하지만 이색적인 결혼식 분위기다.
친구와 공통적으로 아는 지인이 하객으로 참석한 경우가 많지 않아, 나는 식이 시작될 때까지 온전히 혼자 기다려야 했다. 한 50분쯤 일찍 도착했기에 앉을 곳을 찾아야했다. 간단한 다과가 준비되어 있었지만 먹지 않았다. 마스크를 다시 끼고 홀로 독서 삼매경에 빠졌다. 시간이 지나 드디어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어느 쪽이 신랑 측이고 어느 쪽이 신부 측인지, 결혼식을 수십 번 다녀도 왜 매번 헷갈리는 것일까. 뒤쪽에 가장 잘 보일만한 곳 아무 곳에나 앉았다. 앉고 보니 여긴 신랑 하객석. 이동하기 귀찮아서 그냥 앉아있었다. 코로나의 영향으로 사람들이 혹시 축하해주러 많이 못 오진 않을까 걱정하는 오지랖은 집어치워도 될 만큼 생각보다 많은 하객이 온 듯 싶었다.
입장하는 신랑, 입장하는 신부. 친구가 고른 드레스는 예뻤다. 무엇이든 예쁘고 아름다운 것들은 모두 개인의 취향인데, 친구의 드레스는 내 취향이었다. 특이했던 건, 부케를 신랑이 들고 입장을 했고, 신부는 빈손으로 홀로 입장한 것이었다. 역시 남들과 다른 결혼식으로 돋보였다. 신랑이 버진로드 거의 중앙까지 다시 와서 신부를 데려갔다. 그것도 인상적이었다. 사회는 신랑의 절친한 친구가 진행했는데, 주례 없는 결혼식이라 사회자의 말솜씨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신랑, 신부가 혼인서약을 했지만, 하객에게 함께 읊어달라고 하는 결혼식도 처음 본 듯싶다. 꽤 상호작용이 많은 결혼식이다. 축가는 신랑이 직접 불렀다. 인생 최초로 본인 축가를 본인이 하다 보니 떨려서 머릿속이 하얘져 컨닝을 좀 하겠다고 미리 양해를 구하는 신랑 역시 인상적이었다. 처음엔 좀 떨리는 듯하더니, 후반부로 치닫을수록 자신 있게 부르는 신랑의 노래실력은 빛을 발했다. 신랑으로부터 직접 축가를 듣는 친구가 새삼 부럽고 멋있었다.
2014년 내 결혼식을 떠올려 본다. 버진로드 양 옆에 나무로 가득한 식장. 나름 심사숙고했다 해도 비좁았던 건물. 많은 하객으로부터 축하받고 싶었던 인정 욕구. 가장 예쁜 모습을 남기고 싶었던 여자의 욕심. 어설픈 게 매력이었던 동기들의 축가. 차라리 나무가 없는 뻥 뚫린 식장이었더라면 좋았을 걸... 판에 박힌 지루한 주례사를 없앴더라면 좋았을 걸... 청첩장에 뻔히 정해진 멘트를 고르지 말고 내가 직접 썼으면 좋았을 걸... 신혼집에 뻔하고 판에 박힌 방식으로 가구를 들이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걸... 신혼여행을 힐링하는 곳으로 여행을 갔으면 좋았을 걸... 양가 부모님 눈치 보느라 있는 형식에 맞춰 전부 다 하지 않고, 의미 있는 곳에 돈을 썼더라면 더 좋았을 걸...
그 시절 나는 구닥다리 마인드를 갖고 있었다. 남들과 같게, 남들 눈에 좋게, 남들처럼 등 항상 남의 기준에 맞춰 모든 것을 해결했던 게 떠올랐다. 지금은 스몰 웨딩을 하는 사람도 있고, 실용적이고 소박하게 나름의 의미를 살려 이색적으로 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결혼식을 올리지 않는 사람도 있다. 시대는 그렇게 몇 년 사이에 많은 것들이 변해버렸다. 시대의 변화는 쿨하게 인정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내가 씁쓸했던 건, 과거의 '내' 모습이 한심하게 느껴져서다. 아니, 나만의 관점도 하나 없이 그렇게 휘둘리듯 내 삶을 정해버린 내가 안타까워서다. 내가 바보 같아서다. 내가 불쌍해서다. 지금 2020년에 내가 결혼식을 올린다면, 나는 어떤 모습으로 준비할까? 어쩌면, 6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평지풍파를 겪었기 때문에 과거의 나를 회상하고, 새로운 모습을 상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그때의 나'도 나이고,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는 지금의 나'도 나인 것이다.
친구는 그 누구보다 자신의 가정을 행복하게 꾸려나갈 것이다. 값비싼 특급 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지인의 모습을 보아도 그다지 부럽지도 멋있지도 않았는데, 이 결혼식에서의 신랑과 신부는 빛이 났다. 진짜 결혼식의 주인공 같았다. 우리나라 결혼식은 제조업 공장에서 물건 찍어내듯, 예식장이라고 하는 비즈니스 사업장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컨베이어 위에 신혼부부를 태우는 느낌이다. 후다다닥. 하객들도 시간 맞춰 쫓겨나야 한다. 식사시간도 정해져 있다. 주차시간도 제한적이다. 그런 결혼식 문화에는 아무런 매력도 남아있지 않다. 오죽하면 모 방송에서 외국인들이 한국 결혼식 방식으로는 아무도 해보고 싶지 않다 했을까. 그런 예식장 공장에서 순차적으로 밀어내는 뻔하고 재미없는 예식이 될 수도 있었던 것을, 내 친구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의미를 담아낸 듯싶었다. 멋있었다.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하객석에 홀로 앉아 친구의 결혼을 축하해주고 있다 보니, 별별 생각이 다 난다. 아마 누군가와 함께 있었더라면 떠올리기 어려운 생각이었을지도 모른다. 또한, 이 친구의 이런 이색적인 결혼식이 아니었다면 돌아보기 어려운 생각이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