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고 있는 술, 소주가 변한다?는 이야기는 못 들어봤을 겁니다. 증류주라 불순물이 없고, 도수가 높은 술들이 상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더랬죠. 맥주는 변할 수 있습니다. 유통기한도 있구요. 그럼 와인은 어떨까요? 오래된 와인일수록 좋고, 비싼 와인일 것이란 추측을 많이 하죠. 오래된 와인이 항상 품질 좋은 와인은 아니지만, 오래 보관할 수 있다는 건 와인은 안 상한다는 말일까요?
안타깝게도 와인의 제조, 유통, 보관 과정에서 불량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럼 와인의 품질에 결함이 생길 수밖에 없겠죠. 와인의 불량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경우가 어떤 유형들이 있는지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1. 열화 (Heat Damage)
흔히 끓어 넘쳤다고 얘기하는 불량입니다. 높은 온도에 몇 시간 이상 노출되었을 때 발생하기 쉬운 현상이죠. 일반 컨테이너로 수입되는 와인이 적도를 건너오다 발생할 수도 있고, 여름에 보관을 잘못하여 생기기도 합니다. 열화된 정도가 심할수록 코르크 옆면으로 와인이 올라와 묻은 흔적이 보여 육안으로 충분히 확인이 가능합니다.
2. 산화 (Oxidation)
산소가 필요 이상으로 와인에 영향을 주어서 와인이 빨리 산화된 상태를 말합니다. 오래도록 세워진 상태로 보관이 되어 코르크가 바짝 말라 수축된 경우, 와인병과 코르크 마개 틈 사이로 산화가 진행된 것입니다. 아주 오래된 올드 와인의 코르크가 탄성을 잃어버린 경우에도 산화될 수 있습니다. 산화된 레드 와인은 정상적인 색보다 색깔이 흐려지고, 화이트 와인은 반대로 색이 짙어져 노란색에 가까워집니다. 일반적으로 소량의 이산화황이 주입하여 산화를 방지하지만, 틈 사이로 이산화황이 빠져나가 줄어든 경우 산소에 의해 와인의 풍미가 훼손됩니다.
3. 환원 (Reduction)
산화 방지를 위해 넣은 이산화황의 양이 과도하게 많이 들어갔을 때 생기는 향의 감소 현상을 말합니다. 환원을 탈산소화라고도 부릅니다. 와인에서 마늘, 삶은 양배추, 썩은 달걀, 삶은 옥수수 또는 불에 탄 성냥 냄새가 난다면 유황 풍미(탈산소화)일 수 있어요. 이러한 향은 불쾌감을 주지만 보통 디캔팅을 하면 자연스럽게 사라지므로 환원이라는 현상은 중대한 불량으로 취급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4. 코르크 오염 (Corked)
코르크 마개가 직접적 또는 간접적인 원인이 되어 발생하는 불량을 말합니다. 코르크로 병입 되는 모든 와인의 1~7% 사이로 코르크 오염이 발생할 수 있어요. 프랑스어로는 부쇼네(bouchonne) 되었다고 하는데, 이것은 코르크를 뜻하는 부숑(bouchon)에서 나온 말입니다. 병입 된 와인이 코르크와 오래 접하면 코르크 물성이 배어들어가서 약간 축축한 나무 느낌이 날 수 있습니다. 이를 '코르키(Corky)하다'라고 말하는데 불량까지 취급하진 않아요. 하지만 처음부터 오염된 코르크를 사용하여 병입 된 와인은 젖은 마분지, 오래 쌓은 신문지 냄새, 퀴퀴한 지하실 냄새나 눅눅해진 버섯 같은 불쾌한 향이 나타나게 됩니다. 와인을 오픈하자마자 코르크의 냄새를 맡아보면 어느 정도 분별할 수 있다고 해요.
불량을 자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와인병을 오픈할 때 발견할 수 있는 불량이라면 최대한 섬세하게 살펴보는 습관을 갖는 것이 좋겠죠? 코르크 옆면이 끓어오른 흔적은 없는지, 코르크 마개 안으로 오프너를 넣을 때부터 코르크 자체가 말라서 부서지지는 않는지, 오픈하자마자 이상한 냄새는 안 나는지 등 확인하다 보면 와인을 보는 눈, 향의 민감도, 와인에 대한 관심도가 쭉쭉 상승할 거랍니다.
혹시라도 불량을 발견하게 되면, 그 현상을 즉시 사진으로 찍고 와인을 구입한 곳에 연락하여 조치를 취하는 것이 좋습니다. 환불이나 교환 등의 안내를 해줄 테니까요. 불량인 와인을 경험하는 것도 하나의 좋은 경험이 될 수 있겠네요.
몇개월 전 저는 2012년산 프랑스 오메독 와인 하나를 구매했는데, 코르크에 곰팡이가 있어서 교환을 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곰팡이가 있다고 해서 항상 불량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고 합니다. 보관하면서 그렇게 발생할 수 있지만 와인에는 큰 문제가 없는 경우도 많다고 하더라구요. 그 당시 그런 흰 곰팡이가 핀 경우를 처음 접한 저는 찝찝해서 결국 다른 와인으로 교환했더랬죠. 또 다른 케이스로, 와인에 대한 지식이 왕초보이던 시절 이야기예요. 한꺼번에 와인을 왕창 사다가 보관을 잘못해서 여러 병을 식초로 만든 경험도 있답니다. 서늘한 곳이 좋다고 해서 냉장 보관이 아닌 실온 보관을 했었거든요. 그것도 심지어 세워서. 일반 가정집에서는 지하실 같은 별도 공간이 있는 게 아니라면 시간에 따라 항상 실내 온도의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에,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냉장고 보관을 하는 게 가장 현명한 보관법이라고 합니다. 집에 와인셀러가 없는 이상 한 번에 너무 많은 욕심을 부리면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죠. 직접 몸으로 배우고 익히니 더욱 오래 기억에 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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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알.못을 위한 와인상식 #10 와인의 눈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