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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 Designeer Aug 11. 2020

달콤한 귀부 와인

와.알.못을 위한 와인상식 #23 귀부 와인

귀부 와인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이 용어가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저 역시 와인을 공부하기 전에는 알지 못했던 용어예요. 귀부 와인이라는 말을 모르거나 쓰지 않더라도 이 와인은 무지하게 달달하다는 사실 하나만 기억하셔도 될 것 같아요.




귀부는 영어로 'Noble Rot'입니다. 즉, 고귀하게 부패되었다는 의미예요. 귀부 와인은 곰팡이가 핀 포도로 만든 와인을 말한답니다. 귀부병에 걸린 포도 열매만 선별하여 수확해서 만들기 때문에 귀부 와인은 값이 비싼 편이에요. 귀부병은 보트리티스 시네리아(Botrytis Cinerea)라는 곰팡이균이 포도껍질에 기생하면서 포도를 건포도처럼 말라버리도록 만드는 병을 말한다고 해요. 이 보트리티스 시네리아 곰팡이는 습한 환경에서 포도알에 생기게 되는데, 햇빛을 받으며 마른다고 합니다. 부패했다가 건조되는 과정을 지속적으로 거치면서 포도가 쪼그라들게 되는 것이죠. 이런 포도알이 말라버렸으니 당연히 수분은 거의 얼마 남지 않고, 포도의 당분만 남아 있게 됩니다. 남겨진 농축된 당분은 와인의 발효가 끝나도 달달한 맛과 향을 내지요.


귀부병에 걸린 포도알   [이미지 출처 : https://winefolly.com]


최초로 귀부 와인이 만들어진 곳은 바로 헝가리라고 합니다. 혹시 토카이 와인이라고 들어보셨나요? 토카이 아수(Tokaji Aszu)라고 적힌 헝가리 와인이 바로 귀부 와인입니다. 헝가리에서는 말라비틀어진 귀부 포도알을 '아수'포도라고 지칭한다고 합니다.


헝가리 - 토카이 와인   [이미지 출처 : https://winefolly.com]


헝가리에서 시작이 되었지만 귀부 와인이 본격적으로 만들어진 곳은 독일입니다. 지난 독일 와인을 소개하면서 나온 가장 높은 등급인 트로켄베렌 아우스레제가 귀부 와인입니다. 독일 라인가우(Rheingau) 지역의 슐로스 요하니스베르크(Schloss Joannisberg)라는 와이너리에서 포도 수확을 허락받기 위해 기다리다가, 수확시기가 한참 지난 곰팡이 핀 포도로 와인을 만들었는데 예상치 못하게 큰 인기를 끌면서 독일에서도 점차 생산이 시작되었다고 해요.

독일 - 리슬링 귀부 와인   [이미지 출처 : https://winefolly.com]


그리고 프랑스 보르도 남동쪽에 위치한 소테른(Sauternes)이라는 지역이 있어요. 가론강과 시론강에 둘러싸인 이 지역이 낮에는 덥고 건조하고, 새벽에는 서늘하고 습해서 이 곰팡이가 번식하기 딱 좋은 환경이라고 합니다. 이 곳에서 스위트 와인의 왕이라 불리는 '샤토 디켐'(Chateau d'Yquem)이 생산되지요. 전부 손으로만 수확한다는 이 와인은 독특한 벌꿀향과 신선한 산미가 조화를 이루며, 포도나무 한 그루에서 한 잔 정도의 양밖에 생산되지 않으니 엄청 비싸겠죠. 하지만 그만큼 농축된 맛이 일품이라고 합니다. 50년 이상 장기 숙성이 가능하다고 하니 대를 물려줄 수도 있겠네요.


프랑스 - 보르도 소테른 와인   [이미지 출처 : https://winefolly.com]




귀부 와인은 처음 만들면 황금빛 또는 호박색을 띄지만 시간이 흘러 숙성이 진행될수록 점점 진한 벽돌색, 진한 갈색으로 변하게 됩니다. 숙성될수록 점점 연한 빛으로 변하는 레드 와인과는 달리 더 진해진답니다. 떫고 드라이한 와인보다 달달한 와인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과감히 귀부 와인을 추천해드리고 싶네요. 하지만 귀부 와인도 아이스 와인처럼 비싸다는게 크나큰 장벽이 될 것 같아요. 몇 년 전 우연한 기회로 몇십만원 한다는 토카이 와인을 맛보게 되었을 때, 이게 정말 와인인가 신기하더라구요. 그 당시는 와인에 대해 전혀 몰랐을 때여서 아쉽기도 하고요. 얼마 전 리유섹(RIEUSSEC) 소테른 와인을 맛보았는데 정말 향이 예술이었답니다. 황금빛 색깔은 보기만해도 정말 아름다워서 마시기 아깝더라구요. 절인 살구향, 배, 꿀향 등 기존에 느끼지 못했던 향이 가득해서 신세계를 경험한 듯 했어요. 이런 귀부 와인은 만들어지는 양도 매우 적고 생산 과정이 결코 쉽지 않은 만큼 와인의 맛이 더 큰 가치로 다가올 수 있으니, 언젠가는 꼭 한 번쯤 맛보시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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