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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 Designeer Dec 17. 2019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독서노트 #27 <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

열심히 노력하면 달라질 거란 희망,
그 믿음 하나로 버텨온 세월이었다.
 노력은 종교였다.


작년 이 책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가 나온 지 얼마 안 돼서였을까, 그즈음 책 읽은 커뮤니티에서 몇 명이 읽는 것을 보고 제목이 재미있어 보여서 나도 읽게 된 책이었다. 단순히 열심히 살 필요 없다고 말하는 흔한 에세이일 거라 예상했지만, 저자의 말투 속에 엄청난 내공이 묻어나는 것을 느꼈고, 그 안에 너무나 공감하는 나를 발견했다. 특히나 이 책의 묘미는 바로, 저자가 직접 그린 일러스트라고나 할까! 다시 봐도 웃기다 훗.



"봐, 저렇게 꿈을 이루는 사람이 있잖아. 세상 탓만 하지 말고 노력을 더 하라고, 노오력을!"

기성세대가, 우리 사회가 계속 개인의 탓으로만 돌린 채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한국의 젊은이들 역시 득도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토리 세대가 생겨난 현실은 안타깝지만, 나는 그들을 부정적으로도 긍정적으로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살기 힘든 이 시대가 낳은 필연적인 현상이지, 좋다 나쁘다 판단할 대상이 아니다. 그러므로 섣불리 그들을 동정하거나 훈계하려 들어서는 안 된다.

운이 좋은 시대를 사는 세대가 있는 반면, 지금처럼 운이 없는 시대에 태어난 세대가 있기 마련이다. 그들은 자신이 살아야 할 힘든 시대를 자신들의 방식으로 어떻게든 애를 쓰며 살아 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은 그들에게서 희망을 빼앗았지만, 그들 스스로 행복을 찾으며 살아가고 있으니 그들에게 맞는 희망이 바로 거기에 있다. 겉으로는 한심해 보일지라도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과 치열하게 투쟁하고 있다. '득도'나 '포기'는 세상을 향한 그들의 자조 섞인 한탄이다. 그들이 자신을 비웃는다고 해서 기성세대가 같이 비웃어선 안 된다.

- p64

이러한 얘기를 이, 삼십 대가 했더라면 기성세대는 콧방귀를 뀌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저자의 나이를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많은 경험이 묻어나는 걸 봐서는 결코 적지만은 않은 나이일 것 같았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는 저자에게 공감뿐 아니라 고맙기까지 했다. 이해받는 느낌이랄까. 세상에 한 명이라도 우리 세대를 알아주는 느낌. 나보다 나이가 몇 살 더 많다 할지라도 이 세대를 함께 살아가는 동지처럼 느껴졌다.



때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더 큰 의미가 있다.
 나에겐 그런 시간이 필요했다.

일러스트가 참 매력적이다. 옷을 많이 안걸친 그림이 자주 등장하여 약간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그것 역시 작가의 의도된 그림일거라 생각했다.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경험이 있을까? 바쁘게 살다 보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게 쉽지만은 않다는 걸 깨달을 것이다. 나는 최근에 해봤다. 그 나름의 경험이었고, 그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 지속적으로 오래는 못하겠더라. 하지만 어쩌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나름의 재충전의 시간이랄까. 그림처럼 충전 100% 띵~!



어차피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건 불가능하다. 사람들에게 맞추려 하면 점점 힘들어진다. 사람들의 마음은 알 수 없을뿐더러, 그들의 변덕에 이리저리 휘둘리게 될 테니까. 나만 해도 이게 좋았다, 저게 좋았다 한다. 그 마음을 어떻게 맞춘단 말인가.

자신이 좋아하는 걸 한다고 모두에게 인정을 받는 건 아닐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건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걸 해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어차피 결과를 알 수 없다면 자신이 좋아하는 걸 하는 게 낫다. 남들의 인정에 목매지 말고 자기 세계에 집중하다 보면 그 세계가 더 단단해져 결국은 사람들도 인정하게 되지 않을까? 끝내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하고 싶은 걸 실컷 했으니 남들의 취향에 맞추려고 노력만 하다 끝내 인정받지 못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 p239

잘하는 것을 해야 한다, 좋아하는 것을 해야 한다,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한다 등 사람들의 의견은 분분하다. 여기에 정답이 있을까? 그냥 자신만의 해답대로 실천하면 되지 않을까. 자신이 추구하는 삶의 가치대로 말이다. 좋아하는 게 있다면, 좋아하는 일을 실컷 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긴 하다.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한테 좋아하는 것을 물으면 열에 아홉은 좋아하는 게 뭔지 모를지도 모른다. 우리는 '해야 하는' 일만 배워왔으니까. 좋아하는 일을 찾기 위한 경험이 없으니까. 그런 이들에겐 억지로 좋아하는 일을 찾으라고 하기보다는, 싫어하는 일을 배제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확실한 건, 남의 취향과 남의 기준에 맞춰서 내 삶을 억지로 끼워 넣는 일은 슬픈 일이라는 것이다. 저자와 같이 확고한 인생철학으로 무장해서 이 거친 세상을 살아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때 멈췄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부모님 몰래 자퇴를 했다. 학교에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다시 입시 준비를 했다. 4수였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나에게 그곳에 가는 것만이 유일한 희망이었고, 다른 길은 없었다.
아, 홍대병에 걸려 7수를 했다던 그 입시생. 거짓이 아니었구나. 바로 나 같은 인간이 그런 입시생이 되는 것이었구나. 고작 대학교의 간판을 위해 7년이라는 시간을 보낼 가치가 있을까 싶지만, 그때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눈에 뭔가가 씐 게 분명했다.
시간이 흘러 다시 겨울이 오고 홍대 입시를 치렀다. 그리고 그 해, 나는 네 번의 도전 만에 홍대에 합격했다.

이 이야기를 포기하지 않고 도전해서 꿈을 이룬 성공 스토리쯤으로 읽었다면 한참 잘못 읽은 거다. 이건 잘못된 목표가, 오직 한 가지 길밖에 없다는 믿음이 얼마나 사람을 피폐하게 만드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다.
내가 홍대를 갈망했던 이유는 그것이 내 인생을 바꿔줄 것이라는 믿음에서였다. 어른들은 좋은 대학만 들어가면 인생이 성공으로 끝나는 것처럼 말했다.
...
나는 "절대 포기하지 마라"라는 말을 싫어한다. 목숨 빼곤 다 포기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쉽게 포기하며 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원하는 목표가 있으면 노력도 하고, 최선을 다해봐야 한다. 그렇게 두세 번 도전했는데도 안 되면 과감히 포기하는 게 맞다. 나처럼 4년 혹은 그 이상 매달리는 것은 집착이다.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말처럼 잔혹한 말은 없다.

이미 많은 것을 포기했으니 그것 또한 포기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너무 괴롭거든 포기해라. 포기해도 괜찮다. 길은 절대 하나가 아니니까.

- p51

무언가에 매달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저자의 생각에 공감할지 모른다.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고3 입시 실패 후, 재수를 했고, 역시 또 실패하여 점수에 맞춰 대충 들어갔고, 다시 한 학기 다니고 또 삼수를 했다. 처절한 실패를 맛보고, 더 이상 대학입시에 매달리지 않기로 했다. 세 번이면 충분했다. 마지막 성적표는 받으러 가지도 않았다. 편입까지 생각했지만, 대학 간판 때문에 몇 년씩이나 매달리는 내가 너무 비참했다. 왜 인생을 입시 때문에 젊은 나날을 낭비해야 하나 싶어서 포기해 버렸다. 그리고 다른 길들을 찾아 나섰다. 저자는 4수 만에 성공했지만, 나는 3수 시도에 실패했다. 그래서 저자의 말에 공감도 가지만, 한 편으로는 성취를 해 본 사람의 공허함이 아닌, 실패자로서의 공허함이라 약간 씁쓸하기도 하다. 그래도 '포기'해도 괜찮다는 말에는 공감한다. 성취를 이룬 사람이나 실패를 경험한 사람이나 결국은 '다른 길'도 있음을 인정하게 된 것, 우리의 인생에는 다양한 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중요하니까.


세상에는 많은 길이 있다.
어떤 길을 고집한다는 것은
 나머지 길들을 포기하고 있다는 이야기와 같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하지 않는가.

실패가 있어야 성공도 있는 법.

많이 실패하자.

괜찮다.



이제 열심히 사는 인생은 끝이다. 견디는 삶은 충분히 살았다. 지금부터의 삶은 결과를 위해 견디는 삶이어서는 안 된다. 과정 자체가 즐거움이다. 그래서 인생이 재미있다. 앞으로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뿅 하고 건너뛰고 싶은 시간이 아닌 즐거운 시간을 보내야지. ...

나는 지금 제대로 즐기고 있다.

- p285

열심히 살아도 괜찮다.

재미나게 살아도 괜찮다.

자~알 살아도 괜찮다.

어떻게 살아도 괜찮다.

그것이 남이 아닌 내가 선택한 인생이라면 말이다.


휴,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하루하루 오늘의 '열심'에 치여 오늘의 '나'를 외면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 책을 한 번쯤 추천해주고 싶다.




* 책 제목 :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 저자 : 하완

* 출판사 : 웅진지식하우스

* 출판일 : 2018년 4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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