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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명록 Apr 22. 2023

나는 병원으로 퇴근한다

수명록 壽命錄

금요일 오후 뜨거운 해를 받으며 나는 병원으로 퇴근한다.

병원에 도착하기 전까지도 왜 입원을 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갈 곳 없는 마음이 갈 수 있는 곳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타인의 걱정과 염려를 덜어주기 위한 핑계로 마침내는 스스로를 가두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정신과에서 자신을 해치거나 남을 해칠 것 같은 상황을 ‘위기상황’이라고 한다.

위기상황을 맞닥뜨리기 전에 안전한 선택을 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입원 수속을 하고 병실을 배정받는다. 정신과 병동은 일반병동과 폐쇄병동으로 나뉜다. 일반병동은 개방형 병동이고, 폐쇄병동은 전자기기, 통신기기를 비롯한 모든 채널을 통제하는 곳이다.


일반적으로 자살사고(思考)를 가진 사람은 폐쇄병동으로 입원을 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사회생활을 병행해야 하기 때문에 주치의의 권유를 거절하고 일반병동을 고집한다. 담당 간호사의 입원 경위 등의 간단한 질의응답을 거쳐 주치의의 형식적인 상담이 끝나면 그제야 입원 절차가 마무리된다. 이제부터 쉬어야지 생각하는 나와는 달리 정신과 병동의 의료진은 자살사고를 가진 사람을 의심하고 주시한다.


반복적인 질문, 복받치는 의문에 대해 나는 침묵한다.

요즘 기분이 어떤지, 가족과의 관계는 어떤지, 아직도 자살사고가 있는지 등등 병원에 올 때마다, 상담을 받을 때마다 받는 질문들이 지겹다. 주치의는 지금 말하는 것이 불편하냐고 묻는다. 나는 당연한 걸 질문이라고 묻느냐고 속으로 생각한다. 자신의 슬픔이 타인에게 가닿는 일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고도 생각한다. 나는 자신의 감정을 잘 모르기 때문에 표현하는 데는 어려움을 많이 느끼기 때문이다.


소리를 지르는 폐쇄병동 환자의 소리를 뒤로하고 일반병동의 침대로 들어가 안락함을 느낀다.

5인실에는 이미 두 명의 환자가 자리를 잡고 있다. 왜 여기에 왔을까 하는 호기심의 눈빛을 보내는 동시에 서로 인사를 주고받는다. 나는 환자복으로 갈아입는다는 이유로 침대를 둘러싸고 있는 커튼을 치고 성벽을 쌓는다. 창가 쪽 자리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일반병동 안에서 자신만의 폐쇄병동을 꿈꾼다. 고요한 공기 속에서도 눈치를 교환하는 시선이 느껴진다.


둘은 입원한 지 꽤 지난 것처럼 보인다. 한 여자 할머니는 기운이 없어 간병인과 함께 생활하고, 다른 여자는 말과 행동이 자유분방하다. 처음 병실로 들어서는 나에게 반갑다는 인사도, 식사 잘했냐는 인사도 그녀가 먼저 했다. 나는 그저 고개를 가볍게 끄덕일 뿐이다. 하나의 병실은 하나의 사회다. 누가 먼저 왔고, 나이나 병력이 어떠한 지에 따라 관계와 질서가 형성된다. 저 둘은 언니 동생하며 서로를 챙기고 서로를 의지한다. 나는 그들의 관계에 끼어들 생각이 없다.


여자는 이어폰을 끼지 않고 핸드폰으로 티비를 시청한다. 목소리도 꽤나 시끄럽다. 사물함 벽에 붙어있는 병실 사용 매너 안내문마저 무용하다. 병원에서도 사회생활 하듯 눈치를 살펴야 하는 상황에 나는 금세 피곤해진다.  밤 10시 정각, 병실의 불이 꺼진다. 어수선하고 낯설은 첫날밤에 억지로 잠들기 위해 이어폰을 끼고 오디오북을 틀지만 여자의 요란한 티비소리가 잠을 깨운다. 밤새 몸을 수없이 뒤척이면서도 나는 죽은 것처럼 침대를 지키고 있다.


정신과 병동에서는 잠자는 시간, 식사량, 먹는 약을 관찰하고 감독한다.

이른 새벽 당직 간호사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휴대폰 플래시를 켜고 환자가 자리에 있는지 잠은 자고 있는지 확인한다. 식사는 아침, 점심, 저녁을 반드시 먹어야 한다. 약을 손에다 놓아주고 다 먹은 것까지 보고 나서야 돌아간다. 화장실마저 문 아래가 크게 뚫려있어 쉽게 열 수 있다. 이곳에서 정신은 자유롭기보다 통제되고 감시받는데 익숙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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