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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희정 Feb 14. 2024

밤을 안아준 어느 연탄의 이야기

한 줄기 빛조차 없는 창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겠다. 이곳의 시간은 기어가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단지 허용된 건 나에 대해 생각하는 것뿐.

나는, 왜 이렇게 태어났을까. 내 삶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보기 흉하게 숭숭 뚫린 가슴. 새카맣고 볼품없는 몸.

만지기도 싫은 지저분한 가루 뭉치.     


먼저 떠난 친구가 내게 해준 말이 떠올랐다.

“우리는 가진 게 별로 없는 자의 방을 따뜻하게 안아주기 위해 존재해. 세상 모든 존재는 유로 왔다가 무로 돌아가지. 어차피 다시 돌아가야 한다면 그들을 위해 의미 있게 살다가 가고 싶어.”

그렇게 말하던 친구의 뒷모습은 검은 윤기로 반짝거렸다.     


드디어 창고의 문이 열렸다. 나와 남은 친구들 모두 인간들의 손에 실려 트럭에 올랐다.

긴장감에 검은 연탄재가 몸에서 부스스 떨어졌다.

그래. 나도 이제 숭고한 일을 해야지.

굳은 결심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갑자기 트럭이 한 가게 앞에 멈췄다. 들어가기 전 흘깃 쳐다본 가게의 간판은 이렇게 쓰여있었다.     


[옛날식 연탄 불고기]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어안이 벙벙할 새도 없이 누군가 내 몸을 불로 달궜다.

온몸이 점점 뜨거워졌다.

이럴 수가. 나는 누구의 방도 품지 못하고 이대로 세상을 떠나는 걸까.


정신이 점점 희미해졌다. 곧 내 몸이 붕 뜨더니 한 테이블로 옮겨졌다.

‘철컥.’

내가 도망갈까 싶었는지 내 몸 위로 철창이 드리워졌다.

메케한 냄새가 자욱했다. 하늘에서 불 기름이 떨어졌다.

이곳은 지옥인가? 나는 이대로 허무한 죽음을 맞이하는구나!

눈물은 불꽃이 되고, 재가 되어 사라졌다.      


그때, 위에서 사람의 말소리가 들렸다.

“아빠. 이 고기 정말 맛있다.”

“연탄으로 구워서 그래. 아빠가 어릴 적에는 이런 연탄이 정말 흔했지.”

“다음에도 아빠랑 또 오고 싶어.”

“그래. 다음에도 꼭 데리고 올게.”

철창 위로 보이는 아버지와 아들의 미소가 불타는 내 몸보다 눈부셨다.     


연탄으로 태어나 사는 법은 오직 하나인 줄 알았다.      


이제는 안다. 나는 천사의 미소를 만들려고 이 세상에 온 것이다. 비록 따뜻한 방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이들에게 따뜻한 밤을 선물했으니 그걸로 충분하다.


세상에 숭고한 일도 정해져 있지 않다.      

삶의 의미가 하나가 아닌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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