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시작

- 첫 만남부터 쉽지 않았지.

by 글쓰는장의사

우리의 첫 만남은 백화점 지하 분수대 앞이었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나는 그날 최소한 한 시간 이상을 기다렸다.

'약속을 피하려고 하는 건가?'

하는 불안한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당시 나는 연애에 큰 관심이 없었다. 어쩌면 그저 가까이서 말동무가 되어주는 친구가 필요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나에게 그 사람의 첫 모습은 '맑음'이었다.

나의 상황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 아마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을 그 사람은 아주 밝은 표정으로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듯이 반가운 얼굴을 띄고 나에게 걸어왔다.


솔직히 말하자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내 상황을 전부 이야기해주고 떠나게끔 하려 했다. 그 사람을 만나기 1초 전까지는 내가 다짐했던 나쁜 남자로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날 하루 데이트를 끝낸 후 나는 다시 생각이 바뀌었다.

'참 기분 좋게 만드는 사람이구나'

나를 쳐다보는 눈빛과 어색할까 봐 운전하는 내 옆에서 계속해서 말을 걸어주려 노력하는 모습이 너무 귀엽고, 고마웠다. 아마 내가 눈치채고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겠지만, 난 그 사람의 노력이 느껴졌다.


그렇게 첫 데이트는 간단한 식사와 바다가 보이는 경치 좋은 카페에서 커피 한잔이었다.

운이 좋았던 건지 인연이었는지는 몰라도 우리의 생활 패턴도 비슷했다. 일반적인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상상도 하지 못하는 평일 낮 데이트가 가능했다. 그 덕분에 우리는 한적한 식당과 유명한 카페지만, 그 시간만큼은 한적했던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다. 단 한번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었지만, 나에게는 소중한 하루가 되었다. 얼마 만에 가져보는 즐거운 시간이었는지 모른다. 지금도 종종 그 사람과 함께 있으면, 나의 과거들을 잊어버리게 된다. 나의 상처들이 치유되는 느낌이다. 아니 마치 나에게 그런 상처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잊어버리게 된다.


그날 밤 집까지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에서 나는 나의 답답한 현실과 마주하게 되었다.

"참 좋은 사람 같은데, 내가 만나도 될까?"

사실 처음 만난 그날 이후 데이트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항상 이런 생각들로 가득했다. 나의 과거와 그녀의 과거를 비교하고, 나의 현재와 그녀의 현재를 비교하며, 나의 미래와 그녀의 미래를 그려 보았다.

나에게는 상향평준화, 그녀에게는 하향평준화. 내가 생각해도 공평하지 못한 관계였다.




언젠가 나의 과거와 현재를 그녀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하루하루 미안함과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 시기를 잡기 힘들었고, 나의 과거가 내 입에서 나오는 순간 그녀는 나를 떠나갈 것 같았다. 그 두려움에 하루하루 시간만 흘러 보내고 있었다. 그 덕분에 나의 휴대폰은 그녀와 함께 있는 동안이면 무음 모드였다. 혹시라도 아이에게 전화가 올까 봐 하는 생각에서 영화관을 제외하고 평생 처음으로 무음 모드를 해보았다.


그래도 그녀와 함께 있는 시간이 너무 좋았다. 아마도 힘들었던 과거와 가슴 아픈 현실을 잊을 수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인 듯하다. 이미 '혼자 영화보기'가 적응되어 버린 나에게 다시 '함께 영화보기'가 가능해졌다. '혼자 시켜먹기'로 단련되었던 나의 위장이 '나눠 먹기'로 다시금 숨 쉴 공간을 찾았다. 그녀가 나를 보는 눈빛이 좋았고 웃는 모습이 이쁘게 보였다.


연애를 하면 모두가 느끼는 감정이겠지만, 나에게는 모두가 느끼는 일반적인 연애 감정이 특별하게 다가왔다. 다시는 느끼지 못할 감정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그리고 나 스스로 이런 감정들을 거부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에게는 아주 특별한 감정들이었다.


매번 데이트를 하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나중에 벌을 받더라도, 지금 이 순간을 조금만 더 즐기자. 온전한 나를 오픈하게 되면 다시는 못 올 시간이 될 수도 있으니 조금만 더 이기적인 사람이 되자.'


그 사람을 만나고 약 한 달 동안 나는 아주 이기적인 남자였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다시 시작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