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사람의 마지막을 지켜주는 것.
지금까지 쓰던 결혼 혹은 이혼과 크게 관련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으면서 아닌 게 아닌 뭔 소리 하는지 나도 잘 모르겠는 글이다.
글을 쓰면서 처음으로 나의 직업을 밝혀볼까 한다. 나는 저승사자 보좌관 혹은 저승사자 하청업체이다. 내가 하는 일은 죽음과 가장 가까이 있다. 맞다. 나는 장의사 혹은 장례지도사이다. 한 사람의 마지막 모습을 최대한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일을 하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것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운 일이다. 이 일을 하다 보면 상상도 하지 못할 일들을 많이 보게 된다. 아니 영화나 뉴스에서나 볼듯한 일들이 실제로 일어난다. 오랜 기간 연락을 하지 않고 지낸 부자지간, 아버지의 임종 소식을 전해도 전혀 책임을 지지 않겠다며 포기하는 경우. 좋은 외제차를 타고 와서는 돈이 아까워서 장례를 치르지 않겠다는 경우 등 가끔 보면 남이지만 욕이 튀어나올듯한 상황들이 있다. 반대로 잊지 못할 가슴 아픈 사연도 있었다.
60대로 기억한다. 여자분이 약물로 운명을 하셨다. 장례가 끝난 후 대략 10일 정도 지났을 무렵 남자분 한분이 약물로 운명을 하셨다. 알고 보니 10일 전 여자분의 남편분이다. 사연은 이랬다. 두 분은 자식도 없고 경제적으로도 힘들었다. 그래서 동시에 이 세상을 등지려고 하셨나 보다. 그런데 남자분은 깨어나셨다. 그러고는 유서로 모든 사실을 기록하고 뒤따라 가셨다. 수 없이 많은 고인들을 보았지만, 이렇게 잊히지 않는 분들이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잊을 수 없는 사연이 있다. 다른 가슴 아픈 사연들도 있지만 유독 이 사연을 소개하는 이유는 안타까우면서도 두 분은 함께하시는 동안 마음만큼은 행복하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서다.
사실 젊은 우리의 생각으로는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난 그저 그 두 분의 서로에 대한 마음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상하게도 조금 부럽기는 했다. 세상을 등진다는 것은 사실 쉬운 결정은 아니다. 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그렇다. 그런데 함께 그 어려운 것을 실행했다. 서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 때문이 아닐까? 물론 그 사랑이 잘못 사용되기는 했다. 그것은 사실이다. 아무튼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옆을 지켜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항상 다짐을 하며 살았다.
"나는 내 아내보다 더 오래 살 거야"
혼자 남겨두고 떠나고 싶지가 않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내 사람의 마지막이 쓸쓸하게 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그 사람의 마지막을 내가 지켜주고 싶다.
조금 무거운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나는 남아있는 사람의 그리움과 외로움을 조금이나마 안다. 사별은 아니지만 이별을 경험했고, 생각보다 아빠가 우리 곁을 빨리 떠나서 엄마가 느끼는 외로움과 그리움을 보기도 했다. '남아있는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간다. 그저 죽은 사람만 불쌍할 뿐이다.' 어른들이 많이 하시던 말씀이다. 그래 맞는 말이다. 죽은 사람만 불쌍하다. 하지만 남은 사람의 고통도 가볍지만은 않다. 매일매일을 엄마가 아빠를 그리워하며 힘들어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완전히 잊고 지내지도 않는다. 아마도 엄마가 아빠를 따라가는 그날까지 아빠를 그리워하며 살아가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 그 세월이 너무 길어 엄마가 참 힘들겠다는 생각을 한다. 좋은 세상을 다 보지 못하고 떠난 아빠가 불쌍한지, 아빠를 일찍 보내고 오랫동안 그리워하며 살아야 할 엄마가 더 불쌍한지 감히 누가 정의를 내릴 수 있을까? 이럴 때는 차라리 수학 문제가 더 쉽다.
사실 무엇이 더 고통인지는 잘 모르겠다. 먼저 떠나는 사람인지 아니면 남아있는 사람인지 알 길이 없다. 그래서 나는 그저 조금 더 고통스러운 길을 나에게 달라고 소망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