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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스 Mar 30. 2017

떡갈비와 햄버그스테이크 사이

우리 집에는 먹는 것과 관련된 규칙이 몇 가지 존재한다. 부엌의 주인은 나이기 때문에 내가 정하고 내가 지키는 규칙이 대부분이지만 남편이 개입된 규칙도 있으니 일주일에 한 번은 아이들에게 고기 먹이기같은 것이 그것이다. 대외적으로 내세운 남편의 명목은 자라나는 아이에게는 정기적으로 단백질을 공급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반찬으로 섭취하는 단백질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 그의 의견이다. 그리고 덧붙여 내가 주말에 연달아 세 번 밥을 차리고는 힘들어하니 고깃집을 가면 한끼 건너뛸 수 있어 나를 돕는 것이라 했다. 매끼마다 새로운 반찬을 하거나 다른 음식을 준비하는 성격탓에 휴일은 하루종일 부엌에 서있어야 한다. 먹고 치우고 먹고 치우고 먹고 치우고...


볶음밥이건 짜장라면이건 아무거나 좋으니 본인이 좀 하면 안되는가 보다. 설겆이라도 하시던가!!! 주말이나 휴일에도 일하러 나갔다가 겨우 저녁먹으러 오는 것이 전부이니 기대할 바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평일이라면 엄두도 못냈던 온 가족이 함께 하는 저녁식사를 그나마 주말에는 할 수 있었으니 조금은 특별한 식사이기도 했다.


한국에서 살던 시절에는 우리가 즐겨가던 고깃집이 있었는데 아이들은 항상 배부른 집이라 부르며 아직도 이 집에서 먹었던 고기와 냉면을 그리워한다. 미국으로 이사한 뒤에는 뒤뜰 바베큐그릴에서 남편이 직접 고기를 구웠다. 그야말로 고기의 전성시대였다. 핀란드에서도 남편은 테라스에서 고기를 구웠다. 그런 남편이 한국으로 돌아가면서 고기구울 사람이 없어졌다. 십여년간 이어진 주말에  고기먹기 전통이 끊어질 위기다.


내가 부엌살림의 주인장이지만 고기를 고르고 굽는 것은 남편의 몫이었기에 장을 보아도 구워 먹을 고기를 고를 엄두가 나지 않는다. 게다가 이곳은 국거리요, 갈비용이요, 삼겹살이요 말만 하면 알아서 건네지는 친절한 고기도 없다. 음식문화가 다르니 즐겨먹는 고기부위도 다르고 잘라놓은 모양새도 다르다. 이름은 핀란드어로 쓰여진 외계어나 마찬가지이기에 오로지 모양만 보고 고기를 골라야 하는데 고기를 즐겨 먹지도 않고 골라본 적도 없는 나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나도 손쉽게 고를 수 있는 고기가 있으니 간고기가 바로 그것이다.


소고기와 돼지고기 갈은 것은 한 팩씩 사다가는 오후내내 열심히 치댄다.부지런히 치댈수록 고기가 부드럽고 맛이 좋은 탓이다. 손에 낀 장갑이 뱅그르 돌고 벗겨지고 부엌바닥에 고기가 튀기도 하지만 열심히 치댄다. 스테이크를 구워주진 못하지만 떡갈비를 해주려던 참이다. 그러다 문득 햄버그스테이크를 해주리라 마음을 바꾼다.


하지만 떡갈비와 햄버그스테이크 사이의 차이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둘 사이의 차별점을 잘 모르겠는 나로서는 그저 큼직한 디너접시에 구워낸 고기를 올려 소스를 만들어 부으면 햄버그스테이크요, 구운 고기만 따로 접시에 내어 밥반찬으로 먹으면 떡갈비다.


성장기아이들은 버섯을 많이 먹어야 한다했으니 버섯도 썰어 넣자. 나물이라고는 딱 한 줌 무쳐먹으면 끝이지만 하루에 수십번 물을 주어가며 닷새넘게 기르는 숙주나물을 한 줌만 키울 순 없어 풍성하게 한 소쿠리 자란 숙주도 듬뿍 넣어 소스를 만들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고기를 구워 먹이던 아빠는 없지만 봄을 기다려도 될 것만 같은 3월의 끄트머리에서 나는 햄버그스테이크를 해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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