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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속담 이야기

『이덕무의 열상방언』, 엄윤숙, 사유와 기록(2019)

by 하늘바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어릴 때 잘못 들인 버릇이 여든 살 먹어서도 갈 수 있으니, 어릴 때부터 습관을 잘 들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을 지닌 속담이다. 아마 이 속담을 모르는 한국 사람들은 거의 없지 않을까. 속담과 비슷한 것으로 고사성어가 있다. 고사성어를 소개하기에 앞서 잠깐 옛날 이야기를 들어보자. 다음과 같은 이야기다.


초한지로 유명한 중국 한나라의 유방은 중원을 통일한 후, 자신의 신하인 한신(韓信)에게 스스로 얼마만큼의 군사를 부릴 수 있는 능력이 된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한신은 대답했다.


‘다다익선(多多益善: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입니다’


유방과 한신의 이야기까지는 몰랐을 수도 있겠지만, ‘다다익선’을 못 들어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 촌철살인의 효과를 준다는 점에서 고사성어와 속담은 유사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둘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특성이 있는데, 우선 고사성어는 ‘성어’ 앞에 붙은 ‘고사(古事)’에서 알 수 있듯이 옛날 이야기다.


그래서 방금 앞에서 소개한 것처럼 대체로 성어에 얽힌 고사를 통해, 그 성어의 유래나 작자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속담은 다들 알다시피 민간에서 오랫동안 구전되어 온 말이라, 언제부터 생긴 말인지 누가 만들었는지 모른다. 요약하자면 고사성어가 문자를 아는 엘리트 지배계층의 것이라면, 속담은 민간의 고사성어라고 할 수 있다. 지식인들이 향유하던 고사성어를 글자를 몰랐던 옛날 백성들이 접하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왠지 옛날 지식인들은 고사성어에만 관심을 갖고 속담에는 관심이 없었을 것 같은데,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았다. 지금까지 전해지는 속담 자료집으로 홍만종의 『순오지』, 조재삼의 『송남잡지』, 이익의 『백언해』, 정약용의 『이담속찬』이 있다. 우리 생각으로 옛날 양반이라고 하면, 《논어》, 《맹자》, 《대학》,《중용》 등의 유가경전을 줄줄 외고 공맹과 유가의 도덕만 이야기할 것 같은데, 실제로는 다방면에 호기심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 특히나 그 사람이 실학자라면 더욱 그렇다. (한 가지 예로, 정약용의 형으로 흑산도에 유배갔던 정약전은 일종의 어류도감인 《자산어보》를 만들었다.)


그들 중에 이덕무도 빼놓을 수 없다. 이덕무는 책을 읽다 보면 배고픔도, 아픈 것도, 추운 것도, 더운 것도 모두 잊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에게 간서치(看書痴 : 책만 읽는 바보)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이덕무가 《간서치전看書痴傳》이라는 짧은 자서전을 남긴 것을 보면, 이덕무도 그 별명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그토록 책을 좋아하던 이덕무는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이라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거기에는 이덕무가 민간의 속담을 기록한 〈열상방언冽上方言〉이 실려있다.



나는 사유와 기록에서 나온 『이덕무의 열상방언』를 통해 〈열상방언〉을 읽을 수 있었다. 고전을 연구하는 엄윤숙 연구자가 《청장관전서》에서 〈열상방언〉 부분만을 떼어내 편역한 책이다. 이 책에서 이덕무는 총 99편의 속담을 모아, 매편마다 여섯 글자로 속담을 한자로 번역한 후 간략하게 그 뜻을 설명하고 있다. 책에 실린 속담 가운데 우리가 잘 아는 속담을 예로 들면 다음과 같은 방식이다.


獨木橋寃家遭(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


이런 식으로 우리말 속담을 한자로 번역하고는 아래와 같이 자신만의 해석을 붙였다.


言事之湊也(이런 말이다. 일이 공교롭게 되었다.)


이미 조선 초에 창제된 훈민정음을 쓰지 않고 우리말을 굳이 한자로 번역해서 책으로 펴낸다는 점은 이해하기 어렵다. 번역이라는 것은 외국어로 된 글을 이해하기 쉽게 모국어로 번역하는 게 목적일 텐데, 우리말을 한자로 번역해서 책으로 펴낸다는 점은 좀처럼 공감하기 쉽지 않다. 아무리 양반들끼리 보는 책이라지만, 그들이 양반이라고 한들 훈민정음보다 한문이 더 편하단 말인가. 물론 이는 이덕무 개인이 아닌 당대 지식인 사회 전체의 한계다. 하긴 훨씬 후대인 한용운 선생이 《채근담》을 번역했을 때도 한글보다 한자가 더 많았다고 하니, 조선 후기야 더 말해 무엇할까.


그러고 보면 여성도, 서얼도 아닌 번듯한 양반 사대부의 자손이면서도 《홍길동전》을 순한글체로 썼다고 알려진 허균은 시대를 얼마나 앞서갔을까. 그렇지만 당대 지식인 계층으로 일반 백성들의 언어인 속담에 관심을 갖고 이를 기록해 책으로 남겼다는 점에서, 이덕무가 쓴 〈열상방언〉이 지니는 가치 또한 결코 작다고 할 순 없다.


앞에서 말했듯이 『이덕무의 열상방언』에는 이덕무가 가려 뽑은 99편의 속담과 그에 대한 이덕무의 해설이 달려 있다. 거기에 더하여 이 책에는 고전 연구자 엄윤숙이 덧붙인 해설도 있어서 전혀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오늘날의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속담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속담들도 있다.


지금은 잊힌 속담들을 발견할 때면, 당대 사람들의 삶과 사고방식을 엿볼 수도 있고,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속담을 보게될 때면 반갑기도 할 테다. 아무래도 옛날부터 내려온 속담이다 보니 지금 시대와 맞지 않는 속담들도 있는데, 이는 걸러서 읽으면 될 일이다. 아무튼 나는 무척 재밌게 읽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편역자 엄윤숙 연구자가 남긴 글을 인용하며 이번 독후감을 마친다.



속담은 인생 선배가 삶의 길목마다 세워둔 이정표다. 인간이 얼마나 허약하고 허술한 존재인지 알기에 삶의 고비마다 조심하라고 경계의 표지판을 세운 것이다. 속담에는 삶의 지혜가 빼곡히 들어차 있다. 조심하게 만들고, 실행하게 만들고, 생각하게 만든다.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갈팡질팡할 때, 어떤지 좀 우울할 때, 욕심에 눈이 멀었을 때, 잘못된 사랑을 퍼붓고 있을 때, 남을 부러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할 때 우리를 잡아주는 엄격한 스승 같고 다정한 친구 말이다. (13~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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