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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부가 여성의 한글일기

『병자일기』, 남평 조씨 지음, 박경신 역주, 나의시간(2015)

by 하늘바다



전근대 여성이 남긴 기록은, 저자가 남평 조씨처럼 사대부가 여성이라고 하더라도 이처럼 본관과 성만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본래는 《병자일기》도 그랬으나, 2018년 남평 조씨의 신주 뒷면에 새겨진 본명이 발견되면서 그의 이름이 조애중이라고 밝혀졌다. 이는 박경신이 역주해서 ‘나의시간’ 출판사에서 나온 『병자일기』의 책 날개에도 적혀있다. 《병자일기》는 작자와 창작연대가 확실한 최초의 여성 실기문학(實記文學)이자 민간 여성이 쓴 최초의 한글 일기로 그 사료적 가치도 높다고 한다. 이 점에서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한글을 창제한 세종에게 다시 한번 감사하는 마음을 느낀다.


《병자일기》는 남평 조씨가1636년 병자호란이 터지자 63살이었던 조애중이 피난을 떠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워낙 급박한 상황이라 옷가지나 양식을 챙길 겨를도 없었다. 그런 와중에도 저자는 보고 느낀 당시의 장면을 날마다 기록으로 남겼다. 지금도 아니고 당시의 예순셋은 그야말로 고령에 속할 텐데 피난이라니, 그 고충을 전쟁을 겪은 적 없는 내가 감히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그런 상황에도 일기를 써서 남긴 그의 기록 정신이 존경스럽다.


당진에서 축이가 몹시 아파서 오지 못했는데 [몸]조리하고 오장의 양식을 찧어 날라다가 바닷물에다 한번 대충 씻어 밥을 해먹었다. 피란 온 사람들이 모두 거룻배로 나가 물을 길어오나 우리 일행은 거룻배도 없고 그릇도 없으니 한 그릇의 물도 얻어먹지를 못하고, 밤낮으로 남한산성을 바라보며 통곡하고 있을 뿐이었다. (1637년 1월17일) - 21쪽


이처럼 참혹한 현실을 조애중은 회피하지 않고 기록으로 남겼다. 힘든 현실을 일기를 쓰면서 정면으로 마주해 이겨내려던 것이었을까. 그러나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전쟁의 세세한 기록보다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었다.


양남에 사는 종들이 집에서 부리는 종들을 보고 모두 마주 나와 상전의 소식을 묻고 난리를 무사히 지낸 것이 하늘 같다고 하면서 우리 노비들도 상전님 덕분에 하나도 죽은 사람 없이 다 살았노라고 하면서 모두 즐거워하더라고 한다. (1637년 11월 10일) - 51쪽



물론 조선이 청나라에 너무 쉽게 패배하는 바람에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었던 까닭도 있겠으나, 그 난리통을 틈타서 종들이 다 도망갈 수도 있고 상전을 해칠 수도 있었는데, 오히려 위와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것을 보면 조애중과 그 남편 남이웅은 당시로서는 괜찮은 상전에 속했나 보다.


조애중이 피난을 마치고 와서도 일기는 계속되는데, 그 이후부터는 대체로 평온한 일상의 기록이다. 지금과는 다른 당대의 생활상을 일기를 통해 읽으니 마치 역사소설이나 사극을 보는듯했다. 옛날에 쓰여진 기록이라고 하면 대체로 양반 사대부의 시선에 비친 모습인데, 다른 시각으로 보니 좀 더 신선하게 느껴졌다.


『병자일기』처럼 여성들이 남긴 기록을 볼 때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 역사에서 여성들의 활동을 억압해온 기나긴 역사가 안타깝다. 고대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남성 혼자서 이룬 역사는 없었다. 비록 주연은 아니었으나, 그 뒤에는 여성들의 헌신과 조력이 있었으리라. 한때 여성사 공부에 잠깐 빠진 적이 있었는데, 이 책을 계기로 관련된 책을 좀 더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반쪽짜리 역사가 아니라 전체 역사를 알고 싶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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