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견문』, 유길준 지음, 허경진 옮김, 서해문집(2004)
유길준의 『서유견문』은 ‘문명’의 이념이 제시하는 세계상을 매우 분명하게 보여준다. 문명이라는 이념을 수용한다는 것은 법과 과학이 지배하는 패러다임에 입각하여 조선 사회 전체를 재구성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명의 이념과 더불어 만국공법과 세계지도가 수용되었으며, 이러한 지식과 더불어 서양에서 만들어진 근대적 정치체인 ‘국가’가 받아들여지고 내면화되었다. 근대 정치의 주체인 국가는 근대 과학의 주체와 마찬가지로 보편적·객관적 위치를 표방하며 보편적·객관적 위치를 발한다. 그것이 곧 법의 담론이다. 유길준은 법률에 근거하여 국가의 대내외적 권리를 주장하고 또 국민의 권리를 주장한다. 법 안에서 모든 국가,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 이런 점에서 법은 ‘이성’이고 나아가 그러한 법적 담론을 발하는 국가는 이성이다. (60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