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탕 대환장 유기견 입양기 2

심장사상충 치료기

by 재쵸

<짖지 못하는 개가 범인>

경찰서를 나선 뒤 점점 걸음이 빨라지는 장면처럼 나쵸는 반전이 있는 개였다. 짖는 모습을 통 보질 못해 처음에는 성대 수술을 당한 줄 알았다. 산책 중 시비 거는 어떤 개에게 죽자고 달려들지 않았더라면 아마 계속 오해했을지도 모른다. 산책 중 만난 아기 허스키가 나쵸 머리에 턱-하고 두툼한 발을 얹은 적 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신나서 몸이 주체가 안 되는 것 같았다. 그때 나쵸의 표정은 '극 대 노'였다. 개도 눈으로 욕을 할 수 있음을 처음 알았다.

본문과 관련 없는 극대노 사진

동물에게 가차 없는 나쵸지만 평소 성격은 꽤나 유순했다. 먹던 음식을 뺏어도 이 한 번 드러낸 적 없었다. 다정다감하고 애교 있고, 산책할 때는 언제나 보폭을 맞춰 걸었다. 장난감은 거들떠도 안 봤지만 밖에서는 눈만 마주치면 낮은 포복자세를 취하며 장난을 걸었다. 나쵸는 알면 알 수록 사랑스러웠고 키우기도 편했다. 불쑥불쑥 나쵸가 왜 버려진 건지 의구심이 들곤 했다. 버리는 이유들이야 많지만 버려져도 되는 동물은 없음을 안다. 하지만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최고의 강아지를 버리다니. 쓰레기가 쓰레기짓 하는 건 놀랄 일은 아니다. 버려줘서 고마워 병신들아! 사는 내내 엿같길 바라�

나쵸 인생 첫 KTX

나쵸와 함께 외가댁으로 기차 여행을 간 적이 있다. 그 집에는 고양이 두 마리를 키웠는데 마당에 길고양이 급식소(폭식소에 가까운)도 운영했다. 고양이들에게 그곳은 언제나 활짝 열려있었다. 그래서 고양이들이 집 안에도 막 드나들었다.(???) 웬 모르는 고양이가 거실에서 밥을 먹고 있길래 깜짝 놀라 "쟤 뭐예요?" 물으니 이모가 대수롭지 않게 "어, 밥 먹으러 오는 애."라고 한 적도 있다. 너무 개방적이라서 놀란 내가 촌스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나쵸는 얌전하고 짖지도 않았기에 기차를 타는 건 수월했다. 친척집에 도착해서가 문제였다. 그 집 고양이들과 싸우거나 길고양이를 쫓아가진 않을까 걱정이 됐다. 하지만 막상 고양이들을 본 나쵸는 예상과 다르게 별 관심이 없었다. 바깥에 고양이들이 보여도 반응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집 둘째 고양이가 갑자기 등을 세우며 하악질을 했다. 벌러덩 드러누워있던 나쵸는 빠르게 몸을 일으켜 위협자세를 취했다. 고양이는 화들짝 놀라 도망쳤다. 주섬주섬 자리에 앉는 나쵸를 본 할머니와 이모들은 자지러졌다. 손님이라서 집 고양이를 봐주고 있었지만 까불면 얄짤 없다는 해석까지 하며. (그 뒤로 나쵸는 할머니에게 영특한 개로 불렸다.)

폭풍전야

확실히 나쵸는 도전을 마다하지 않는 용감한 강아지다. 그렇지만 도전하는 대상이 약자라면 참아준다. 표정에 노기를 잔뜩 서린 채로 말이다. 아기 고양이가 잔뜩 성가시게 굴어도 끝까지 참는 모습이 어찌나 성숙하던지.(당시 나는 현장에 없었고, 영상을 찍은 후 둘을 떼어놓았다.)

상반되는 특성을 가진 모순적인 개, 나쵸.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다가도 슴슴한 흑당버블티 같은 그런 개. 그래서 특성들을 하나씩 발견하는 재미가 있었다.


<건강검진>

입양 다음날, 건강검진을 받으러 나쵸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 주사나 몇 방 맞히고 오면 될 거라 생각했는데 심장사상충 양성이었다. 죽을 수도 있는 병인 데다 치료 과정도 길고 약이 독하기까지 해 치료 중 죽을 수도 있다고 했다. 2차례에 걸쳐 치료를 하고 약도 계속 먹어야 했고, 1차 치료비만 250만 원 정도였다. 의사는 치료를 할 의향이 있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는 그때까지도 개를 키우길 잘 한 건지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태였다. 개를 데려온 것도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쁜 사람이 되기 싫어서였다. 스스로도 내가 잘 모르는 안 친한 개를 위해 거금을 쓸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 나는 치료를 택했다. 이유는 없다. 그냥 당연히 그렇게 했다. 치료를 마치면 돌아오라기에 수납을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한 번에 250만 원이 사라졌지만 치료비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지독한 가성비충인 내가 그럴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다시 병원에 가니 의사가 나쵸를 데리고 나왔다. 다리에 붕대를 감고서 위풍당당하게 걸어오는 나쵸를 본 순간 충동적인 선택에 대한 불신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나는 이 개에게 영원히 종속됐음을 알았다.


<심장사상충 치료기>

심장사상충은 보통 사상충에 걸린 모기에 의해 감염된다. 높은 치사율에 비해 예방법은 간단한데 한 달에 한 번 하트가드를 먹이면 된다. 그러니까 개가 심장사상충에 걸렸다면 주인이 개에게 전혀 신경 쓰지 않아서라고 할 수 있다.

모순적이게도 건강 관리는 안 해줬지만 미용은 해줬다

사상충 치료는 3차로 나뉘어서 진행된다. 1차 약물치료 후 한 달간 하루 두 번 12시간 간격으로 약을 먹여야 한다. 그리고 이틀에 걸쳐 2차, 3차 약물 치료를 하고 6개월 뒤 검사해 완치 여부를 확인한다. 당연히 나쵸는 약을 싫어했기에 주사기로 잇몸에 약을 뿌려서 먹여야 했다.

치료 중 가장 중요한 건 안정이다. 심장에 무리가 가는 행동은 자제해야 한다. 운동, 산책, 신나서 날뛰기 전부. 그런데 산책을 안 가니 나쵸는 몸을 벌벌 떨어가며 화장실을 참았다. 3일을 오줌 한 방울 싸지 않았다. 결국 산책을 하는 쪽을 택했다. (병원에서는 정 나가야 한다면 아주 짧게, 오줌만 싸고 바로 들어오라고 했다.)

완치가 될 때까지 나쵸는 접종도(광견병 주사만 맞혔다) 중성화 수술도 할 수 없었다. 당시 나쵸는 1살 반이었는데 일반적인 중성화 시기가 지난 나이였다. 중성화를 하지 않은 노견들은 자궁축농증에 걸릴 확률이 높다. 얼마지 않아 나쵸는 생리를 시작했다. 기운 없이 축 쳐진 모습에 불쑥 화가 치밀었다. 진작 중성화만 했어도 생리도 안 했을 거고, 힘들어하지 않았을 텐데. 그 쓰레기들은 미용 말고 해준 게 뭔가? 나쵸 위로 자꾸만 죽음의 그림자가 겹쳐 보였다. 당시 나는 나쵸가 갑자기 죽을까 봐 불안에 시달렸고 자주 악몽을 꿨다.

약 복용판. 약을 떼어내면 그림이 하나씩 나온다. 백수였기에 할 수 있던 정성스럽고 쓸데없는 행위... 뒤로 갈수록 그림 개판..

처방받은 약을 모두 먹였다. 이틀 연속으로 병원에 가서 2차, 3차 약물 치료를 했다. 병원에서는 치료가 잘 끝났으니 3개월 뒤 검사해 음성 판정을 받으면 완치된 거라고 했다. 그간의 마음 고생한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무엇보다 잘 견뎌준 나쵸가 대견했다. 해주고 싶은 것들이 정말 많았다. 예방 접종, 중성화 수술, 마음 졸이지 않고 뛰어놀기 등등. 이제 마음고생은 안녕이다!... 고 생각했다. 언제나처럼 내 인생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나쵸에 관한 또 다른 이야기는 밀리의 서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많관부!⤵

봐줘요..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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