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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쵸 May 25. 2023

이렇게 워홀 가면 안 된다 표본의 개노답 워홀기 3

3 형식을 벗어나기 위한 방법/유학원 상담기

  <거지 같은 호스텔에서 발견했을지라도>

  여행은 끝났다. 외면했던 현실로 돌아와야 했다. 영어, 어학원, 집, 휴대폰, 통장 개설... 가장 먼저 시도한 것은 어학원이었다. 시드니에 온 첫날 나는 거지 같은 호스텔에서 울며 겨자 먹기로 어학원을 검색했다. 그렇게 알아본 유학원 중 한 곳과 상담 예약을 잡아뒀었다. 뭐라도 해야 해서 하는 일인데 막상 하려니까 너무 하기가 싫었다. 그래서 상담 당일날까지도 확신이 없었다. 어학원은 다녀서 뭐 하나.. 목표도 없고, 여기 얼마나 더 있을지도 모르는데.. 이 상태로 상담이 가능하기는 할까?

  유학원에 도착하고서 월경이 시작했음을 알았다. 어쩐지 계속 배가 아프고 컨디션도 안 좋더라니, 예정보다 3일이나 빨리 시작하다니. 지금이라도 나가서 사올까? 아니면 유학원 사장님한테 빌려야 하나? 고민 끝에 후자를 택했다. 초면을 넘어서 방금 본 사람인데도 선뜻 빌려주었다. 호주에 온 이후 불안과 초조함은 심장에 눅진하게 들러붙어서 떨어지지가 않았다. 툭하면 심장이 빠르게 뛰었고, 해결법도 모르고 해결이 된다는 확신도 없어서 신경 쇠약은 날로 심해져 갔다. 그런데 작은 친절 하나에 방금 전까지만 해도 시니컬하던 마음이 금세 몽글몽글해졌다.


  <3 형식을 벗어나고 싶다면>

  내 상황은 이러했다. 1) 영어를 잘 못해서 2) 어학원에 다녀야 하지만 3) 얼마나 다녀야 할지(헬스장처럼 장기 결제할수록 할인이 된다는 글을 봤었다) 4) 지역 이동을 하게 될 수도 있고 5)한다면 언제일지 5) 어디로 갈지 모든 게 미지수였다. 나 조차도 갈피를 못 잡는 상황 속에서 사장님은 명쾌하게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워킹 홀리데이 비자는 학생 비자와 달리 장기로 끊어도 할인 혜택이 없다→한 달 정도 다녀보고 괜찮으면 연장하는 걸 추천.

  *대형 어학원의 경우 지역마다 캠퍼스가 있기 때문에 지역 이동을 해도 같은 어학원에 다닐 수 있다. 워홀 비자로는 어학원 다닐 수 있는 최대 기간이 4 달이라, 시드니에서 1~2달, 타 지역에서 1~2달 다니는 것도 괜찮은 방법.

  그 외에도 한국인 학생이 같은 반에 있는 걸 선호하는지? 직업 훈련이나 방과 후 액티비티가 활성화된 게 좋은지? 등을 확인했다. 그 후에 상급 어학원과 중급 어학원 두 곳의 금액과 특성을 엑셀 표로 대조하여 보여주었다. 어느 쪽이 더 저렴하고 이득인지 직관적인 파악이 바로 가능했다. 금액만 놓고 보면 중급 어학원이 더 저렴하지만 여러모로 따져봤을 때 상급 어학원과 큰 차이가 없었다. 게다가 전에 학생 수가 적은 어학원은 같은 반에서도 수준 차이가 많이 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기에, 상급 어학원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상담은 효율적이었고, 과도한 영업 하나 없이 무척 담백했다. 그래서인지 예상보다 빨리 끝났다. 사장님은 호주 무지렁이인 내게 맛집부터 비자, 생활 팁 등등 유용한 정보를 많이 알려주었다. 우리는 꽤나 코드가 잘 맞았고, 정신없이 수다를 떨다 보니 두 시간이 흘렀다. 언제 시간이 이렇게 됐냐며 깜짝 놀란 우리는 마무리로 어학원에 방문하기로 했다. 중급 학원은 예약을 해야만 방문이 가능해서 상급 학원 두 곳을 가서 비교하기로 했다.


  <들것에 실려 이곳을 벗어나고 싶어요>

  우리는 지름길을 통해 어학원으로 같이 걸어갔다. 액티비티와 직업 훈련을 진행하는 어학원을 먼저 방문했다. 영어 교과서 한 장면처럼 외국인들이 떼거지로 모여 웃고 떠들고 있었다. 순식간에 기가 빨린 나는 뒷걸음질로 그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분위기를 더 볼 것도 없이 인싸들만 출입 가능한 이곳은 나와 맞지 않았다.

  두 번째 어학원은 우중충한 분위기가 재수학원을 연상케 했다. 이건 이거대로 기가 빨려서 그대로 들것에 실려 호스텔로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영어를 못 하고 의지가 없으며 돈이라도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임을.

  명쾌했던 마음이 한층 모호해진 채로 어학원 투어가 끝났다. 나는 사장님이 추천해 준 카페에 가기로했고, 사장님도 다른 일정이 있었기에 우리는 작별해야 했다.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이대로 헤어지기 아쉽다는 생각이 나를 강하게 사로잡았다. 정확히 내가 뭐라고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사장님이 내게 '우리 또 보면 안 돼요?'라고 했던 것만은 선명했다. 어학원 등록을 하고 안 하고를 떠나서 다시 한번 보자면서 말이다. 나는 그 말이 참 좋았다. 매사에 로봇처럼 감흥이 없는 내 마음이 이상하게 찡하게 울렸다. 나는 진심으로 그러자고 답했다. 오늘 함께한 세 시간이 너무나도 즐거웠기에 내 답은 정해져 있었다. 나는 그냥 사장님이 좋았고 믿고 따라가고 싶었다. 기가 빨려 들것에 실려가더라도, 중간에 다 팽개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더라도, 우울을 극복 못한 채 망한 워홀의 대표 사례가 되더라도... 지독한 혼돈 속에서 허우적대던 내게 그 순간만큼은 햇살처럼 환하게 기억될 것이기에.


<유학원 정보>

카카오톡:gagopasyd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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