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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쵸 Jan 18. 2023

사기꾼 변호사의 늘그막에 시작된 외사랑:우편실 지미

  전직 사기꾼 지미는 우편물실 직원으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사회의 일원으로 섞이려 애쓰던 어느 날, 그와 눈이 마주쳤다. 저렇게 빛나는 사람이 있었나? 지미는 순간 첫사랑이 시작됐음을 직감했다. 그것도 아주 지독한 열병이.

  뉴 멕시코에 백야가 찾아왔다. 볼 것 없는 마을에 얼뜨기 같은 관광객들이 설렘을 뿌리며 돌아다녔다. 지미에게 백야는 늘그막에 시작된 첫사랑만큼이나 달갑지 않은 존재였다. 벌어진 암막커튼 틈 새로 비집고 들어오는 달빛이 그를 닮아서 지미는 잠들지 못했다. 잡히지 않는 달빛처럼 그는 막연하고 멀었기에.

  그날 지하주차장에 가지 않았다면 지미의 외사랑은 혼자 상처 입고 단단해지기를 반복하다가 끝났을지 모른다. P3 구역에서 지미는 그와 마주쳤다. 그가 파리한 안색으로 힘겹게 말을 건넸다. 아스라이 흩어지는 '52번가'를 끝으로 그가 지미의 품에 쓰러졌다.

  그를 부축해 계단을 올랐다. 안에서 새어 나오는 희뿌연 빛을 따라가자 밤이 펼쳐졌다. 뉴 멕시코에서 사라진 밤이. 그와 함께 만끽하는 유일한 밤, 순간이 영원하길 바랐지만 내일은 조금씩 가까워졌다. 지미는 내일을 기약했지만 그날 이후 그를 다시 볼 수 없었다. 동료 직원 중 누구도 그를 기억하지 못했다. 오직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그날 밤을 지미는 그러쥐려 애썼다.

  수많은 내일을 흘려보냈다. 심장을 옥죄던 감각은 무뎌졌다. 어딘가 텅 빈 것 같았지만 홀가분하기도 했다. 지미는 내일만 기다리던 과거를 보상받으려는 듯 현재를 살았다. 그런데 그날은 이상하게 달이 밝았다. 마치 그와 함께했던 밤으로 돌아간 것처럼 가슴이 울렁거렸다.

  '두 번이나 벌어진 이상 현상에 우리는 경계를...'

  '전 그냥 이 로맨틱함을 만끽하고 싶어요! 보세요, 모자도 샀...'

  티비가 까맣게 물들었다. 젠장, 또 백야가 왔단다. 백야로 들뜬 어수선한 분위기가 싫었다. 지미는 자꾸만 아리는 가슴께를 치며 법원으로 향했다. 접견실로 향하는데 복도 끝에서 빌이 손을 흔들었다. 잔뜩 들떠 실실 대는 꼴에 지미는 못 본 척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작은 유리창 너머 그를 발견했다. 지미의 세계를 흔들고 거짓말처럼 사라진 그가 다시 나타난 것이다. 그토록 기다리던 내일이. 지미는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온전히 차오름을 느꼈다. 발걸음을 내디뎠다.


  지미의 늘그막에 시작된 외사랑이 어떻게 될지, 그리고 그의 정체는 무엇인지 궁금하시다면?

  밀리의 서재 "석류가 쏟아지는 방"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석류가 쏟아지는 방 | 밀리의 서재 (milli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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