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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쵸 Oct 22. 2023

이렇게 워홀 가면 안 된다 표본의 개노답 워홀기 21

양공장 원정대, 남바완의 고난의 대서사시 3

<탈출까지 D-100~D-96:더보에서 집 구하기>



  <신문지만 있으면 어디서든 잘 수 있어>

 휴가기간이 끝나면 지원하랄 땐 언제고 양공장에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만약 양공장에 다닐 수 없다면 빨리 시드니로 돌아가야 했다. 지금까지 들인 시간과 돈만으로도 충분히 손해였으니까. 사람을 뽑지 않는 건지, 서류 탈락한 건지 아니면 원래 시간이 걸리는 건지 알 길이 없으니 답답했다. 휴가 전부터 지금까지 양공장 노동자는 우리 이력서를 받았는지 영어를 잘하는 양공장 고인 물 언니와 인사팀에 찾아가 묻기까지 했는데... 아무런 기약 없이 시간만 흘렀다. 만약 당장 채용 계획이 없거나 떨어진 거라면 집을 구할 필요가 없는데 그렇다고 퇴실 날짜가 다가오는데 손만 놓고 있을 수도 없었다. 연장하기에 가든 여인숙은 너무 비쌌으니까...

  작은 시골 마을에서 집 구하기란 쉽지 않았다. 우선 공급이 너무 적었다. 그 몇 안 되는 집들 중 우리가 원하는 조건에 딱 부합하는 곳은 없었다. 우리는 페이스북 지역 커뮤니티로까지 눈을 돌렸는데 거기도 별반 다를 바는 없었다. 우리는 독방을 쓰고 싶었기에 방이 두 개가 필요했는데 여기서부터 많은 집이 걸러졌다. 그렇다고 큰 독방을 같이 쓰자니 방값이 시드니 독방보다 훨씬 비쌌다. 금액을 나눠 내니 작은 독방보다 싸지만 그렇다고 불편함을 감수할 만큼 파격적인 금액도 아니었다. (시드니 외곽 기준 독방 230~250선, 더보 큰 독방 320~350선) 저렴한 가격의 괜찮은 집을 발견한 적도 있지만 집주인이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는 주택난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집이 정말 간절한 사람에게 빌려주고 싶으니 지원서를 보내주면 검토하고 알려주겠다고 했었다. 총 3쪽으로 된 워드도 아닌 PDF파일에는 여권과 면허 정보, 자금 현황, 입출국일을 비롯한 개인 신상을 모두 적어야 했다. 게다가 증빙 자료로 여권, 면허증, 통장 캡쳐본을 첨부해야 했다.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는 뭘 했는지, 집이 필요한 이유 등을 작문하기까지 해야 했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정보를 모두 넘기는 게 보이스피싱과 다름이 무엇인가. 내가 널 뭘 믿고... 처음에는 빈 방이 두 개인가부터 금액, 위치, 집 상태, 집주인의 국적까지 모두 따지던 우리는 점점 눈을 낮춰야 했다. 언제까지 호텔에 묵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난이도 극악인 집 구하기 퀘스트>

  구직은커녕 집도 못 구하고 있으니 길거리 생활이 머지않았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진작 기술을 배우지 않고 무얼 했나 참회하며 지금이라도 비트박스를 배우자고 자조적인 농담을 했다. '빨리 비트 박스 연습해, 구걸하러 가게.' 그러면서도 진짜 비트박스 메이커가 될까 봐 한국에서는 10년 전에나 쓰던 페이스북을 매일같이 들락거렸다. 그러다 그 글을 본 것이다. 독방 200불에 방이 2개인 글을. 그런데 프로필 사진이 범상치 않았다. 옛날 극장에 걸린 손수 그린 영화 포스터 같은 가족 그림. 하지만 우리는 이미 가당치도 않은 더보 집들로 인해 눈이 낮아진 상태였기에 문자를 보냈다. 답은 바로 왔다. 아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다시 나가야 해서 잠깐 비는 시간에 집을 볼 수 있다면서. 우리는 돈이 아쉬운 처지라 걸어야 했고, 지금 출발해도 한 시간이 넘었다. 집 사진도 못 봤는데 방이 두 개 있다는 이유로 뙤약볕에 굳이? 그런데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심장이 쿵쿵 뛰었고 전화기를 집어던지고 싶었다. 문자로 하면 되지 왜 갑자기 전화를 거는 거야, 미친놈이. 어쩌지, 외국인이잖아, 무서워. 하지만 맞닥뜨려 야했다. 그러지 않으면 여기까지 온 의미가 없기에. 전화를 받자 스크림의 살인자처럼 음침하게 꼬부라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뭐라는 거야, 씨벌...'

  원래도 잘 안 들리는 영어가 전화기를 한 번 거치자 더 들리지 않았다. 단어 몇 개로 태워주겠다고 하는구나 유추하는 데까진 성공했다. 그런데 내 답을 못 알아들은 건지 그는 무언가 자꾸 이야기했다. 결국 나는 '모르겠어, 잘 안 들려, 문자로 하면 안 될까?'이 세 가지 문장만 반복했는데 그럼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딱 봐도 영어 못하는 외국인한테 계속 떠든다고 귀가 트이는 것도 아닌데 대체 왜 이러는 걸까? 결국 나는 전화를 끊었고, 그에게서 아들과 함께 우리를 태우러 오겠다는 문자가 왔다.


  <기이한 집구석으로의 초대>

  KFC 야외석에 웬 똥차 한 대가 멈춰 섰다. 창문이 열리고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인이 말을 건넸다. 주름진 얼굴은 하회탈처럼 푸근한 인상을 주기 마련인데 그를 봤을 때 나도 모르게 섬칫했다. 기분 나쁜 찝찝한 인상에 짧은 순간 동안 이 차를 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뒷좌석에 설치된 카시트에 아이가 타고 있지 않았더라면 아마 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묘한 기시감이 모든 게 처음이라 그런 건지, 아님 본능이 외치는 경고인지 몰라 자꾸만 눈치를 살피게 됐다. 가뭄에 깊게 팬 고랑을 연상시키는 주름, 노인 특유의 불분명한 발음, 말하는 것조차 힘든듯한 기색을 보아 그는 70대가 분명했다. 물론 노화가 빠른 백인 특성상 예측이 틀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젊게 봐도 55세 아래는 아니었다. 55세에서 70세 사이, 15년 오차범위가 존재하지만 분명한 건 그는 노인이었다. 그에 반해 유아용 카시트에서 만화 영화에 푹 빠져있는 아이는 아시안이었고 10살쯤으로 보였다. 아들...이라고 하지 않았나? 손자라고 했는데 내가 잘 못 읽었나? 기묘한 조합 속 혼돈에 빠진 나는 지금이라도 뛰어내릴까를 진심으로 고민했다.

  차는 비슷비슷한 집들이 몰려 있는 주택가에 멈춰 섰다. 동네는 깔끔했고 평화로운 분위기였지만 영화 비바리움을 연상케 했다. (한 번 들어오면 죽지 않는 이상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전원마을을 배경으로 한 영화) 그의 차 뒷유리에 부착된 사신 그림만이 유일하게 여기가 비바리움이 아닌 현실임을 일깨워줬다. 물론 그건 그거대로 범상치 않았지만.

  바닥에 널브러진 장난감과 벽에 키를 잰 흔적, 아이가 그린 그림이 붙어있는 냉장고... 예상과 달리 아이가 있는 여타의 평범한 집 같았다. 방도 두 개 있는 데다 혼자 쓰기에 적당한 크기였다. 무엇보다 햇볕이 잘 들었고, 안뜰에는 쉬거나 음식을 먹을 수 있게끔 탁상과 의자가 있었다. '생각보다... 괜찮은데?'라고 생각하자마자 벽에 걸린 결혼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 할저씨던 할아버지가 턱시도를 입고서 옛날 화장을 베트남 전통 복식을 입은 상대적으로 젊은 여자와 찍은 사진. 쨍한 채광과 어우러진 결혼사진에서는 기괴함과 음산함이 뿜어져 나왔다. 시발... 이건 아니잖아. 아들인지 손자인지 모르겠는 10살 꼬마와 아빠인지 할아버지인지 모르겠는 55세에서 70세 사이의 노인과 3040 부인이라니. 자꾸만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여기 살게 되면 저 영감이 본인만의 하렘을 건설했다고 의기양양해할 것 같다는 예감. 그저 매매혼을 했을 뿐인데 범죄자취급하는 건 너무 앞서 나가는 거 아니냐고 이성이 말렸지만 인간 또한 동물이기에 본능이 자꾸 위험을 알렸다.

  그때 어디선가 아기 강아지가 달려와 배를 까뒤집고 애교를 부렸다. 아들 겸 손자가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벨라! 나가!' 하고 외쳤고 강아지는 줄행랑을 쳤다. 순식간에 치고 들어온 이 집에서 유일하게 무해한 존재에 잔뜩 경계하던 내 마음은 무장 해제가 됐다. 나쵸와 페퍼를 못 본 지 얼마나 오래인가. 어떤 개를 데려와도 그리움은 사라지지 않을 테지만 나는 작은 똥개를 또 보고 싶었다. 시내가 너무 멀어 우버는 필수인 데다 꺼림칙한 기분이 들고, 아빠와 아들의 나이차이가 60살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우리가 계약하고 싶다고 하지 않자 55세에서 70세 사이의 영감은 주절주절 떠들어댔다. 안뜰은 우박을 대비해서 직접 보수를 했다는 둥 그다지 구미가 당기지 않는 이야기들을. 그는 그새 본인이 쓴 글을 잊은 건지 집세가 주에 180불이라고 했다. 고작 20불 차이지만 무직이던 우리에게는 큰 금액이었기에 굿가이와 나는 의미심장한 시선을 주고받았다.


  <비바리움을 떠나며>

  그는 아들인지 손자인지(이하 아손)를 학원에 데려다주는 길에 우리를 시내까지 태워다 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올 때와 같은 멤버로 차에 올랐다. 만화를 보던 아손이 갑자기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걸었다. 노화 때문인지 보간 영어인지(생활 수준이 낮고 교육이 짧은 사람 특유의 영어 발음-하단 영상 참조) 알아듣기 힘든 노인의 영어보다 명확하게 들렸다. 자기가 무슨 포켓몬을 갖고 있는지 알려주는데 나는 전혀 감흥 없는 동태눈을 숨길 수가 없었다.

  "난 그거 몰라."

  "왜 몰라?"

  "난 애가 아니니까."

  아손은 금세 시무룩해졌고 나는 그저 피로할 따름이었다. 어느새 시내에 도착한 우리는 잔뜩 기가 빨려 차에서 내렸다. 의견 교환을 하기 전부터 이미 서로가 그 집을 내켜하지 않음을 알았다. 굿가이는 집이 후져서였고 나는 노인이 언젠가 우리에게 마수를 뻗칠 것 같아서.

  우리는 다시 페이스북을 뒤져야 했고, 노인에게서는 몇 번 질척이는 연락이 왔다.

  '양공장이 너무 멀면 안 돼서 아직 고민 중이야.'

  '처음에 여기 살던 베트남 소녀도 플레처에 잘만 다녔단다. 그리고 읍내까지는 내가 태워줄 수 있어.'

  노인은 그런 것쯤은 단점이 아니라는 반박과 함께 대안을 제시했다. 그 집에 살고 싶지 않음에도 단칼에 자를 수가 없었다. 때는 이 좁디좁은 시골에 유달리 집이 없던 암흑기였기에. 그리고 얼마 뒤 두 번째 인스펙션이 잡혔다. 치안이 안 좋다는 강 너머 집, 집주인 국적은 인도. 여기라도 안 가면 갈 곳은 노인의 집뿐이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인스펙션 당일 인도 집주인에게 메시지가 왔다.

  '그냥 내일 와. 오케?'

  그대로 차단을 눌렀다. 내키지 않았지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노인의 집에 가야 했다.


  <10대, 20대, 30대, 40대, 70대가 공존하는 집>

  이삿날, 퇴실 준비를 마치고 짐을 아래층으로 옮기는 일만 남았다. 올 때와 갈 때의 공통점은 엘리베이터가 없다는 것이고, 차이점은 우리를 도와줄 직원이 그때는 있었고 지금은 없다는 것이다. 20킬로가 넘는 캐리어와 계단을 막막하게 번갈아 보고만 있었다. 그때 지나가던 호텔 직원이 '그냥 던져~' 하며 껄껄 웃었다. 농담인 줄 알았는데 진담이었는지 그는 그대로 사라졌다. 역시 호주는 오르페우스의 나라가 틀림없다.(호주 워홀기 17-멜버른 여행 9편 참조)

  우당탕탕 와장창창 흥분한 진돗개에 끌려가듯 어찌어찌 캐리어를 내렸다. 호텔 1층은 직원은커녕 사람이 없어 그새 망했나? 싶었다. '잘 있어라, 가든 여인숙. 다신 보지 말자.' 그렇게 피난 보따리 수준인 짐들과 함께 호텔 앞에서 노인을 기다렸다.

  노인은 처음 만난 날처럼 뒷유리에 사신 그림이 붙은 차를 타고 왔다. 그는 탈 때와 내릴 때 모두 우리 짐을 싣고 내리는 걸 도와주었다. 그러고 나서 한참을 고통에 찬 신음과 함께 어깨를 돌리더니 결국 약까지 털어 먹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그러고도 통증이 가시지 않았는지 계속 어깨를 돌려댔다. 나는 굿가이에게 속삭였다.

  "여기 나갈 때는 우리가 직접 들자..."

  별 대수롭지 않은 생각이나 발언이 어떤 사건의 복선이 되듯이, 그 말도 3주 뒤 씨가 되고 마는데...

  집은 처음 봤을 때보다 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 첫날은 못 봤나 싶을 만큼 벽 곳곳에는 범상치 않은 호랑이 그림이 걸려 있었다. 뿐만 아니라 침대 위에도 극세사 호랑이 이불이 깔려 있었는데 어찌나 강렬한지 할머니 집에서 봤던 이불이 진화한 것 같았다.

  집을 풀려고 서랍을 여니 머리카락이 수북했다. 마치 베트남 소녀가 떠나기 전에 저주를 뿌리고 간 것처럼. 찜찜했지만 머리카락을 치우고 두 번째 서랍을 열었다. 거긴 발톱이 들어있었다. 길고 두꺼운 발톱이. 조용히 서랍을 닫았다. 세 번째 칸에는 뭐가 들어있을지 두려워서 열지도 않았다.

  그래도 전기장판이 있는 건 마음에 들었다. 드디어 1시간마다 꺼지는 미니 장판을 안 써도 되니까. 그런데 전기장판 양 쪽에 코드가 달려 있어서 두 개를 다 꽂아야만 전체를 킬 수 있었다. 호주 놈들은 코드 하나로 양쪽 다 조절한다는 데까지는 사고가 미치지 않는 걸까? 콘센트가 양쪽 벽에 달려있는 게 아니니 한쪽만 켤 수 있었지만 그래도 켠 쪽에서 자면 되니까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대 화력으로 틀어도 안 튼 것 같은 이 시원치 않음은 왜일까? 외풍 때문인지 여기서 파는 게 다 그 모양이라 그런 건지 알 수 없지만 결국 미니 장판을 다시 꺼내야 했다.

  이 집에서 유일하게 멀쩡한 개(덕구)는 알고 보니 집에 들어올 수 없는 신세였다. 바깥에서 개를 키우는 게 무조건 잘못됐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덕구는 아기였고 개집에는 천 쪼가리 하나 없었으며 하루의 대부분을 혼자 보냈다. 사람을 그렇게 좋아하는데 말이다. 그렇다고 잘 놀아주는 것도 아니고, 산책을 하는 꼴도 못 봤다. 대체 목줄은 왜 있는 걸까? 그리고 덕구는 인형을 참 좋아했는데 아손이 가진 수많은 인형 중 하나를 나누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우리 개들 주려고 미국에서 사 왔지만 철저히 외면당했던 양파 인형을 줬다. 덕구는 양파 인형이랑 항상 잠을 같이 잤다.) 담배를 뻑뻑 펴대는 노인 옆에서 좋다고 간접흡연을 자청하는 모습이 안쓰러울 따름이었다.

  원래도 기괴한 조합이었지만 우리의 합류로 이 집엔 10대, 20대, 30대, 40대, 70대가 공존하게 됐다. 대가족도 아닌데 모든 세대가 어우러졌음에 기괴함은 더욱 배가 된 채로.


<보간 영어는 아래 영상 참조>

https://youtu.be/vmL72sgVdAQ?feature=sha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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