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어 다섯째 날 - 대만 땅끝을 향하여 (D + 4)
비슷한 일정을 5일째 반복하다 보니 이제 거의 습관처럼 일어나 샤워를 하고 짐을 싼다.
이제 전체 여정의 절반이다. 오늘도 기대를 갖고 아침식사를 하러 내려간다. 오늘도 꽝이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중식 스타일의 음식들이 대부분이었다. 다행히 수박이 있었다. 수분이 많은 과일이어서 그런지 자전거를 타면 은근히 수박이 당긴다. 몇 가지 먹을 수 있는 음식과 함께 수박을 잔뜩 받아서 아침식사를 한다.
조금 여유 있게 아침식사를 즐기고 여느 때처럼 체조와 브리핑 후 출발 준비를 한다. 오늘은 102Km 라이딩이 예정되어 있다. 가오슝을 출발해 대만의 땅끝마을 헝춘(Heungchun)까지 내려간다. 이미 대만 남부지역이어서 기온이 상당히 올라갔는데, 남쪽으로 더 내려가니 더위와 햇살에 단단히 준비해야 한다. 점심 전에는 평지 지형을 달리다 오후에는 오르락내리락하는 산지 지형을 달릴 예정이다.
가오슝 시내를 다시 관통해서 오늘의 라이딩을 시작한다. 아침 라이딩은 상쾌했다. 아직 햇살이 강렬하지 않아 체력소모가 적었다. 오토바이가 많기는 하지만 도로가 넓고 자전거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라이딩이 즐겁다.
대만은 지진이 잦은 나라여서 고층 빌딩이 많지 않다. 가이드의 설명을 들어보니 내진설계를 완벽히 하려면 층수가 올라갈수록 공사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고 한다. 하지만 가오슝 시내에는 다양한 빌딩들이 눈에 띄었다. 건물의 형태도 다양하고 길거리가 잘 정비되어서 눈이 즐거웠다.
시내를 빠져나오자 끝이 안 보이는 직선도로로 연결되었다. 흡사 고속도로처럼 느껴지는 직선 도로를 몇 시간 달리다 보면 무념무상의 경지에 이른다. 도로, 자전거, 나 이외에 모든 것이 서서히 사라진다. 오직 자전거에만 집중하면서 페달을 밟는 다리 근육의 움직임을 하나하나 세밀하게 느껴본다.
직선도로가 끝날 때쯤 식당에 도착했다. 오늘의 점심은 닭요리다. 솔직히 기대하지 않았다. 닭냄새가 나거나 각종 향신료를 첨가했을 것이 뻔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다르게 우리나라의 전기구이 통닭과 흡사한 닭요리가 나왔다. 향신료도 첨가되지 않은 그저 닭을 통째로 구운 요리였다. 닭은 머리와 함께 접시에 올라가 있었다. 이미 중화권에 오래 살았기 때문에 낯설지 않았다. 중국인들은 닭을 시키건 오리를 시키건 머리부터 통째로 나와야 온전한 요리를 먹는다고 생각한다.
닭 이외에도 부침개나 야채 요리 등 오늘은 그나마 먹을만한 요리들이 아침의 서운함을 달래주었다. 점심식사 후에는 자전거 정비를 위해 한 시간가량 휴식을 취했다. 내일부터는 본격적인 대만의 산악지형을 달린다. 브레이크 정비가 잘 되어 있지 않으면 자칫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다. 스태프들이 자전거를 하나하나 꼼꼼히 체크했다. 아들 녀석은 점심이 부족했는지 근처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으로 입가심을 했다.
점심식사 이후에도 힘들지 않은 코스가 계속되었다. 코스는 힘들지 않지만 더위와 싸우는 게 힘들었다. 강렬한 태양이 몸을 지치게 만들었다. 스태프들도 예상했는지 오늘 간식은 대만식 팥빙수가 준비되었다.
떡이 많이 들어 있기는 하지만 달콤한 것이 먹을만했다. 식혜와 비슷한 맛이 났다. 무더운 날씨에 시원한 것을 먹으니 좋았다. 이어지는 도로는 바다가 보이는 해안도로였다. 탁 트인 바다를 보면서 라이딩을 하니 자전거 타는 맛이 났다.
멋진 경치를 감상하며 열심히 라이딩을 하다 보니 어느덧 날이 저물어가고 오늘의 목적지인 헝춘에 다 달았다. 이제 대만을 절반 달렸다. 대만 북쪽 끝의 타이베이에서 남쪽 끝 헝춘까지 서쪽 해안을 따라 내려왔다. 무릎 통증과 감기기운으로 힘들기는 했지만 절반을 해냈다는 것에 성취감을 맛볼 수 있었다.
오늘의 숙소는 Grand Bay Resort이다. 재빨리 세탁기에 빨래를 넣고 저녁을 먹으러 이동했다. 식사는 숙소 안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했다.
역시나 각종 중국음식들이 준비되었다. 조금씩 맛만 보고 일찌감치 방에 들어가 피곤한 몸을 달래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