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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나 Mar 28. 2021

05/고해성사의 은총

  

천주교인은 1년에 두 번, 판공성사란 이름으로 부활을 앞둔 사순 시기, 성탄을 앞둔 대림 시기에 고해성사를 봐야 한다. 종교가 있어서, 특히 천주교인이라 좋은 점이 여러 가지 있겠지만 그중 가장 강력한 한 가지는 ‘고해성사’라고 생각한다. 성당에서 준비해 주거나, 스스로 찾아 양심 성찰 질문을 살펴보며 내가 나에게 묻고, 대답해보는 시간이 1년에 두 번 있기에 일상에서 잠시 멈춰 나를 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본당 활동을 열심히 하다 보면, 특히 미사 안에서 전례를 담당하는 전례단 등으로 신부님이 나의 목소리를 알고 있다는 생각에 왠지 고해성사드리기 어렵게 느껴진다. 고해하며 신부님께 한 말은 절대적으로 어딘가에 누설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간혹 그저 스스로의 부담으로 집 근처의 다른 성당으로, 고해하러 다녀온 적도 있다.


몇 년 전 대림 시기에 본당이 아닌 다른 성당에서 미사 전 고해성사를 드렸다. 십계명을 다시 보고, 양심 성찰 글귀를 다시 보며 고해할 내용을 종이에 적어 임시 고해소에 들어가 나의 이야기를 했는데 당시 신부님이 하나하나 내가 고해한 내용을 기억하고, 하나씩 크고 작은 해답, 새로운 관점으로서의 방법 등을 알려주신 적이 있었다. 당시 고해소를 나서며 눈물이 몇 방울을 흘렀었는데 내가 기억하는 내용은 이렇다.      


”(당시 투병 중이시던 엄마가 있었고, 간병의 지분이 많았던 나의 고충, 또 간병의 끝이 헤어짐이라는 걸 알았기에 두려웠던 나의 그 어지러운 마음을 듣고서는)

어머님께서 자매님을 가장 많이 업고 다니신  아닐지 생각해 봅니다. 그래도 귀한 시간,  보내실  있기를 기도합니다.

(오래 활동한 이들, 봉사하면서도 자신의 고집을 부리는 이들을 미뤄하는 마음에 대해서는)

힘들죠, 어느 본당이나 OB 들은 있어요. 그런데 자꾸 미워하다 보면 그 사람이 마음에 찹니다. 그러니 그냥 그럴 때 기도해 주세요. 힘드시겠지만, 제가 해드릴 수 있는 말도 이것뿐이라 죄송하네요.

(대녀가 많지만, 다 챙기지 못하고 기도하지 못한다는 나의 말에는)

그리고, 대녀를 더 늘리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관리, 영적으로 함께하기에 그 수도 중요한 것 같아요. 자매님이 지치시지 않게요.”


어떤 고해성사는 믿음의 문을 더욱 열어준다.


언젠가 고해성사에 관해 강의를 들을 때, “고해할 것이 없는 건•• 자신의 사랑이 너무 작은 건 아닌지 돌아보세요.”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무언가를 사랑하고,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면 내가 더 주지 못한 사랑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더 주지 못한 사랑이, 내가 생각지 못한 그것도 내가 저지른 죄가 될 수 있다던 신부님의 말이 오래 남아있고, 고해성사를 준비할 때마다 떠오른다.     


고해성사는 그저 단편적으로, 단면이던 ‘나’라는 존재를 가족 안에서, 관계 안에서 보다 입체적으로 바라보며 성찰할 기회를 주는 것 같다. 그저 혼자가 아니라, 나와 연결되어 있는 이도 돌아보고, ‘혹시-‘ 하고 생각하고, 입 밖으로 꺼내보는 그 과정에 발견의 은총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 그랬지!’, ‘아, 이미 있었는데..!’ 이렇게 마음에 환기를 시키며 다시 깨닫게 되는 감사함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노력하는 인간으로서의 내가 있다.      


부활을 앞두고 나의 몸과 마음가짐을 다잡고 준비하는 시간, 평소와 조금 다르게 멈춰서 나를 돌아보고, 그 돌아봄의 힘으로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사순 시기도 이제 막바지다. 나는 준비되어 있는지, 잘 준비했는지 돌아본다. 2021년의 사순과 2021년의 부활은 내 인생의 한 번뿐임을, 잊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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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나 요안나 @lifeisjina

쓰거나 쓰게 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신앙 안에서의 다양한 인연과 깊은 체험을 이 연재에 담아보려고 합니다.


신설화 @shinseolhwa

좋아하는 것을 그리고 만듭니다.
평화의 상점 사라와 카드 숍 P.S. draw and make 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요안나의홀리저널 은 매달 2/4주 주일 아침에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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