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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나 Apr 11. 2021

06/ 2021 부활을 맞으며

     

올해의 사순 시기는 유독 뜻깊게 보낸 것 같다. 별다른 봉사 없이 그저 미사를 드리며 보낼 때도 있지만 성당의 청/장년 전례단에서 봉사하고 있는 나는 해설이나 독서의 봉사자로서 미사 드릴 때가 많다.  

    

사순 시기를 보내는 마지막 주일은 주님 수난 성지주일로 미사 한 해 동안 십자가상에 걸어둘 성지 가지와 함께한다. 더불어 <주님 수난기>를 읽는 것이 전례단의 큰 봉사 임무 중 하나이다. 올해는 수난기를 위해 세 명의 봉사자가 필요했는데, 코로나로 미사 드릴 수 있는 인원이 제한되어 있으니 봉사자를 최소한으로 해서 당일의 해설자와 독서자가 담당하기로 했다. 우리는 짧은 복음으로 미리 읽어보며 준비했고, 줌으로 만나 각자 연습하며 말투를, 또 각각에 필요한 말을 나눠주기도 했다. 시간을 들여 연습하고, 어쩌면 부담스러울 수 있는 그 자리에서 각자 즐겁게 연습하고, 봉사하고, 또 각 역할에 따른 목소리 톤의 변화를 주며 연습하는 동안에도, 함께 하는 이들에게 감동하며 봉사를 준비했다. 그러다 당일, 미사 시작 20분 전에 “짧은 복음이 아니라 긴 복음으로 읽어야 할 것 같아요.”라는 수녀님의 말씀에 긴 복음은 한 번도 읽어보지 않은 채로, 그저 미사가 시작하고 처음으로 전체 복음을 읽게 됐다. 연습보다 그저 실전으로 나누던 시간. 부담되고, 당황했지만... 그간의 경험상 미사가 시작되면, 어떻게든 이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몇 번의 심호흡을 크게 하고 무사히 마쳤다.     


그 후, 성당의 1년 중 가장 큰 미사, 의미 깊은 미사인 파스카 성야에서 우리 나이의 단체도 봉사를 하면 좋겠다는 전례 분과장님 말씀에 단장인 내가 바오로 사도의 서간을 읽었다.  아마도 1년 중 가장 많은 신자들이 모이는 시기가 파스카 성야와 부활절 미사일 것이다. 예전만큼 꽉 찬 성전은 아니지만 모두가 집중하고, 성경을 듣는 독서대 앞에서는 무척 떨린다. 1/3/5/7 독서 후 서간을 읽는데 그 성경 구절에 ‘죽음’ 이 몇 번이나 나왔다. 나에겐 그 성전이 엄마 장례미사를 치른 곳이라 그곳에서 부활절에 그 서간을 읽고 있는 게 그저 뭉클했다. 죽음에 대한, 부활에 대한 구절을 읽으니 2년 전 엄마의 장례미사 드리던 아침이 떠올랐다.      


성당 활동을 하다 보면 마치 그 성당이, 자기 성당인 것처럼 활동하는 이도, 이사 갔는데도 그리로 나오며 활동이나 봉사를 고집하는 어르신도 있다. 때론 그 모습이 좋지 않게 보였는데, 어쩌면 그분들 각자도 개인적 사연이 있어서, 그 성전에서 -혼배 미사를 드려서, 장례미사를 드린 기억이 있으니- 추억과 기억 때문에 그리로 오는 것은 아닐까, 처음으로 이렇게도 생각하게 됐다.     


독서나 해설 봉사할 때 엄마가 그 미사에 오면, 늘 녹음을 해주거나, 그날의 봉사에 대해 이야기해줬었는데 어떤 평가가 아니라 늘 칭찬하고, 독서대 위에서 말씀을 나눌 수 있는 것이 큰 은총이라고 말하셨다. 매번 목소리로, 누군가에게 말씀을 전하는 그 봉사의 귀함을 깨닫게 하는 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날의 내 순서 전 떨리던 마음은 마치 옆에서 엄마가 ‘크게 숨 쉬고 올라가서 떨지 마, 독서대 앞에서 그 순간 읽을 수 있는 사람 너밖에 없어, 파이팅!’ 이란 말이 들리는 것 같았다.      


사순 시기를 어떻게 보냈느냐, 가 결국은 그 부활의 의미를 더욱 짙게 만든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다. 부활절 주일 아침 미사를 함께 하며 그간의 사순 시기가 주마등처럼 스치며 성가대의 “알렐루야” 소리에는 조금 눈물이 났다.


파스카 의미는 ‘Pass Over’ 건너감이라고 한다. 힘들었던 시간을 보내고, 이곳에서, 저곳으로 건너감의 의미. 나에게는 이번 부활절이 유독 기쁘게 다가온다. 지나갔고, 건너갔음을 일상에서 체험하고   기쁨을 나눌  있기를 소망한다.   


엄마가 돌아가신 지 2년-그간의 시간이 스치며 열심히 살아온 나를, 또 어떤 부분 힘들었던 내가 그 시간을 다 보고 있었을 주님의 시선에 따스히 보호받고, 또 이제는 내 어깨에 있는 것들을 내려두라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껴진 시간. 2021년의 사순과 부활은 나에게 유독 진하게 다가왔다. 일상 안에서 찾고, 발견하는 나의 영적 순간을 돌아본다.


2021년의 부활,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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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나 요안나 @lifeisjina

쓰거나 쓰게 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신앙 안에서의 다양한 인연과 깊은 체험을 이 연재에 담아보려고 합니다.


신설화 @shinseolhwa

좋아하는 것을 그리고 만듭니다.
평화의 상점 사라와 카드 숍 P.S. draw and make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요안나의홀리저널 은 매달 2/4주 주일 아침에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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