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나 Jun 13. 2021

10/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되는 것


한때 성당의 동의어가 ‘신부님’이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유아세례를 받고, 초등학생 때 첫 영성체를 하고, 일요일에 미사 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람이었다. 물론 중, 고등학교 학창 시절에는 냉담의 기억도 있지만, 가족을 제외하고 주일에 미사를 통해 신부님의 강론을 엄마와 함께 듣고, 크고 작은 질문을 던져보는 시간을 무척 좋아했다.


천주교 1년 12달 중 몇몇 달은 그달에 좀 더 특별하게 ‘성월 기도’가 있다는 것도 서른이 넘어 성당 전례단에서 봉사하면서 알게 됐다. 그런데 그 봉사의 시작, ‘성당에서 무언가 봉사하고 싶다.’는 마음의 시작이 나에게는 미사 시간을 좋아하던 마음, 그리고 당시 내가 자주 가던 성당의 신부님이었다. 신자라면 신부님의 강론이나 특별한 호불호 없이, 매주 미사를 갈 수도 있겠지만 부족한 나에게는 신부님의 목소리와 의사전달 방식, 강론 내용 등도 크게 다가왔다.


처음으로 편애하는 신부님을 만났다고 할까. 그 시기에는 미사에 다녀가며 강론의 한 말씀이 오래 남아 그걸 꼭 휴대전화 메모장에 적어두기도 하고, 그때 새로이 다가온 성경 구절은 집으로 돌아와 노트에 필사해두기도 했다. 그간 미사 드리며 만난 신부님이 참 많았는데 그렇게 내가 한창 미사를 열심히 가던 시기와, 당시 신부님의 본당 부임 기간이 겹쳐있다는, 그 당연하지 않은 시간의 교집합에 감사했다.


신앙 속 영적 친구들, 대녀들은 물론 엄마와도 신부님의 강론이 중심이 되어 자주 이야기를 나눴다. 성소 주일의 강론에선 사제의 길을 걷게 된 동기도 듣게 되는데 그간의 많은 신부님들은 그 중심에 복사단 봉사자로 함께이던 어린 시절과 그 시기 만났던 좋은 신부님과의 만남이 큰 계기였다. 한 사람이 보여주는 세상과 가까이에서 그것을 지켜보며 커지는 마음의 힘은 참 놀라운 신비다.


청년 활동하며 가까이 뵙게 되는 신부님이 많아지고, 또 성당에서 주일학교 다니던 분이 신학교에 입학하는 것 등을 보게 되며 신부가 된다는 것, 사제로 살아가는 것에 감정이입이 많이 되던 시절도 있었다. ‘모든 이의 모든 것’으로 살지만, 나의 것, 나의 가정은 없는 삶. 어쩌면 그렇기에 더 큰 사랑을 실현하고, 품을 수 있을 어렴풋이 이해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라틴어로 사제를 'Alter Christus'라고 말한다는데, 이 뜻은 "또 하나의 그리스도", "제2의 그리스도"라는 뜻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자라고 한다.


6월은 예수 성심 성월로, 예수님의 뜨거운 마음을 본받아, 사제 서품 후 신부님으로 살아가는 분들도 더욱 기억하는 달- 오늘 나는 이문재 시인의 시 ‘어떤 경우’라는 시를 떠올린다.


‘어떤 경우에는/ 내가 이 세상 앞에서 / 그저 한 사람에 불과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내가 어느 한 사람에게 / 세상 전부가 될 수 있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한 사람이고/ 한 세상이다.”



예수 성심 성월의 유월, 신앙 안에서 뜨거워지는 마음속에 주일 미사에서 만나는 모든 신부님을 위해 기도를 보탠다. 신학대학을 졸업해 본당은 물론, 특수 사목으로 병원에서, 군대에서, 또 세계 각지로 유학 나가 공부하며 계신 분들까지도 한번 떠올려본다. 그렇게 많은 신부님 중, 내가 가는 성당, 내가 드리는 미사 시간에 주례 사제로 만날 수 있는 확률!


그걸 생각하면 주일마다 뵙는 신부님이 결코 당연한 존재가 아님도 깨닫게 된다.  명의 영향력과  사람으로부터 시작될  있는 세계를 떠올려본다.


——————


이지나 요안나 @lifeisjina


쓰거나 쓰게 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신앙 안에서의 다양한 인연과 깊은 체험을 이 연재에 담아보려고 합니다.


신설화 @shinseolhwa


좋아하는 것을 그리고 만듭니다.

평화의 상점 사라와 카드 숍 P.S. draw and make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요안나의홀리저널 은 매달 2/4주 주일 아침에 연재합니다.



https://youtu.be/ibsKD8qWXBo

한국방송공사에서 제작한 <영원과 하루> 다큐



이전 10화 09/ 성모 성월의 기억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