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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나 Sep 20. 2022

2019.05

#엄마의사망신고

5월 6

#슬픔너머기쁨과감사


엄마 장례미사 후 1주일이 지났다. 4월에서 5월로 흐르는 며칠이 1년은 지나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성당을 통해 받은 기도, 미사, 연도 등 온 마음으로 함께 해준 분들과 교중미사 후 떡을 나누었다. 신부님과 수녀님께는 엄마가 미처 사용하지 못하고 서랍 속에 넣어 두었던 카드에 감사 메시지를 적어 전해드렸다. 그리고 장례식장 제단 꽃을 함께 고민해주고 임종 소식에 한달음에 달려와준 꽃가게 대표님에게도 엄마의 카드에 편지를 써서 인사를 전했다.     


엄마는 어떤 일이든 그 끝을 잘 맺기를 원했기 때문에 모든 일의 마지막 돌봄까지 깊이 신경 쓰는 분이었다. 장례식장을 찾고 위로해주신 분들 한 분 한 분께 문자를 보내는 일이 조금 버거웠던 것도 사실이지만, 1:1로 받은 그 답장 속에 깊은 위로도 분명 있었다.      

감사히 마무리할 수 있음에 감사, 슬픔 속 감사를 발견하는 은총.

나의 삶에는 그 발견의 은총이 있는 것 같다. 

모든 이가 겪는 일이고 누구나 죽는 것인데 생각해보면 슬픔 너머의 기쁨과 감사에 대해 쓴 글은 좀처럼 못 본 것 같다. 기록하고 기억하자.        

  

5월 14

#역시행운아야


어제는 잠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며칠 전 남동생이 카톡으로 엄마와 나눈 마지막 대화를 캡처해서 보내준 게 떠올라 나도 내 휴대전화 속에 남은 엄마와의 대화를 찾아보았다. 휴대전화에는 2017년 12월 30일부터 엄마와 나눈 대화가 남아 있었다. 다음은 캡처해둔 대화 중 일부.      


역시 행운아야!     


엄마는 날씨가 좋았다거나 여행지에서 만난 택시 기사님이 좋은 분이었거나 우연히 들어간 식당이 맛있었다거나 하는 일상 속 작고 당연한 일들에서 늘 행운과 감사함을 느끼셨다. 저 문자를 보내준 저 날도 내가 우체국 여행기사 연재를 위해 출장으로 지방에 갔을 때 사진을 보냈더니 날씨가 좋다면서 함께 보내준 말이었다.


엄마의 말과 편지 속 문장 하나가 그 사람을 키우고 그것이 씨앗이 되어 퍼져 

어느새 ‘행운아’가 되어 있는 나를 발견한다.           


엄마가 정말 애가 된 것 같네     


작년 11월, 성당에 가는 나를 울린 엄마의 한 줄 문자.

어려서는 엄마가 자식을 키우고, 나이 들어서는 자식이 엄마의 역할을 하는 기회가 

잠시나마 주어지는 것 같다.           


5월 24

#엄마의사망신고


엄마의 사망 신고를 했다. 

오월의 장미가 반겨주는 요즈음의 날들. 

꽃을 보고 그때의 풍경을 느끼고 그 감정을 나누는 인간으로 자라고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하다. 

이건 정말 엄마에게 배웠다.     


구청에서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나 사망 신고를 하는데 생각보다 금방 처리되어 놀랐다. 

부모는 자식에게 무엇이든 해줄 수 있지만, 이 일만큼은 부모가 대신 해줄 수 없다는 것도

(자식이 자기 출생신고를 할 수 없듯이) 깨닫는다.     


자식은 부모에게 생명을 받아 삶을 이어가고 부모는 자식에게 당신 육신의 죽음을 맡긴다. 

가족은 인간사에서 가장 따뜻하고 축복받는 탄생과 가장 외롭고 두려울 수 있는 

죽음을 서로에게 보여주고, 맡기며 함께하는 세상 가장 가까운 인연이다.

- 전수영, 『나의 차례가 왔습니다』, 안단테마더, 2018, 155쪽.          


둘째 조카가 곧 태어난다. 생과 사의 봄. 

지난주 지인이 선물해준 뮤지컬 《라이온 킹(The Lion King)》을 보는데 

첫 곡으로 나온 〈서클 오브 라이프(Circle of Life)〉를 듣자마자 뭉클했다. 

인생, 순환, 연결, 가족, 가정과 부모, 자식.      


엄마에게 영원한 안식을

태어나는 둘째 조카에게 더 없는 축복을.      

사망 신고 후 구청을 나오는데 오월의 장미가 곳곳에 피어있었다.




2019년 4월 26일 세상 하나뿐인 엄마가 돌아가신 뒤 

인스타그램에 엄마의 세례명을 딴 #로사리아의선물 글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글쓰기란 사랑하는 대상을 불멸화하는 일' 이란 프랑스 철학자 롤랑 바르트의 말을 아낍니다. 

이제, 세상을 떠난 엄마이지만 엄마와 나눈 시간, 말과 행동을 오래 기억하고 싶어 글로 남겨둡니다.

훗날, 엄마를 잃게 될 많은 딸들과도 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정리하고 있습니다. 

제10회 브런치북 응모를 위해, 지난 글을 정리해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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