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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나 Sep 17. 2022

프롤로그

'로사리아의 선물'을 시작하며


우리 모든 사람들이 언젠가 죽을 사람인데 지금 살아 있어요.

-영화 《목숨》, 포천모현의료센터 정극규 원장



2019년 4월 26일, 엄마가 돌아가셨다. 내 주변 또래에 비해 조금 일찍 겪은 일이었다. 다른 가족보다 엄마와 유독 친한 딸이었기에 상실의 감정을 어떻게 흘리고 추스러야 할지 알 길이 없었다. 그때부터 SNS에 짧고 긴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하나, 둘 이야기를 적다 보니 엄마와의 추억과 기억이 어느 순간 ‘선물’처럼 느껴졌다. 엄마가 들고 다니던 노트의 메모, 엄마가 다른 사람을 위해 하던 행동, 엄마와 찍은 사진, 엄마의 말. 그래서 엄마의 세례명에서 딴 ‘#로사리아의선물’이라는 해시태그를 만들어 엄마의 이야기와 내가 지나온 시간을 담은 글을 생각이 날 때마다 SNS에 올렸다. 어떤 날에는 엄마 친구분이 보낸 문자나 말 한마디로, 또 어떤 날에는 종교 안에서의 성찰로 글이 쏟아졌다.      


그렇게 쌓인 글을 통해 나는 보다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게 됐다. 비슷한 또래와 같은 나이가 아님에도, 

세상의 모든 딸에겐 '엄마'가 있기에, 각자 자신의 엄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떤 날은 따뜻한 위로의 말을 나누기도 했고, 어떤 분은 두렵게만 느껴지던 부모님의 장례식에 대해 어렴풋이라도 생각하게 되었다며 메시지를 보내오기도 했다. '엄마'라는 존재를 통해서, 나는 내 또래 친구들과는 아직 살아계신 자신의 엄마 이야기를, 나보다 나이가 많은 분과는 이미 돌아가신 엄마와의 이야기를 건네 듣게 됐다. 


엄마와 장례식, 또 죽음 이후를 살아가며 겪는 상실과 그리움의 시간. 지극히 사적인 영역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누군가 전해주지 않으면 도통 알 길이 없는, 한 사람이 왔다가 돌아가는 장례의 여정. 나는 엄마의 장례식을 통해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풀어내고 공유해갔다.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종종 찾던 묘소가 있었다. 그때마다 언니는 동물 모양 과자를 챙겨 묘소 주변에 뿌려주었고, 엄마는 그곳에 다녀오는 날이면 늘 울었다. 그래서 나는 ‘대체 여기가 누구의 묘지?’, ‘왜 이 사람은 엄마를 슬프게 하지?’ 생각했다. 훗날 알게 된 그곳은 나와 세 살 터울인 오빠의 묘소였다. 나에게는 기억에 없는, 내가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사고로 세상을 떠난 오빠. 영문도 모르고 묘소에 따라가던 시절을 지나 기억나지 않는 어느 날, 오빠의 존재와 사고에 대해 듣게 되었다.      


나에게는 다섯 살 터울의 언니와 연년생인 남동생이 있다. 다른 형제들이 있는데도 나는 유독 아들을 잃고 살아가는 엄마를 지켜줘야겠다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 아무도 그러라고 하지 않았지만, 나에게 엄마는 슬프게 하고 싶지 않은 사람, 또 지켜야 하는 대상이었다는 것을, 엄마가 돌아가신 뒤에 깨닫게 됐다.


그렇게 내가 지켜주고, 지켜주어야 했던 대상인 엄마는 지금 곁에 없다. 하지만 아직 어딘가를 여행 중이라 잠시 만나지 못하는 것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엄마가 일상에 선물처럼 숨겨둔 것들을 찾으며 스스로 크게 위로받던 지난날을 돌아본다. 그리고 엄마가 자주 하던 말, 엄마가 써준 편지와 함께한 시간을 붙잡아두고 싶은 마음을 담아 적었던 글을 1,000일의 이야기로 담아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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