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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나 Oct 04. 2022

2020.04.26~29

#엄마의기일

4월 26일_새벽


엄마의 1주기로 엄마 모신 곳에 간다. 가톨릭 예식서를 보다가 추도식을 위한 기도문이 있어 복사하고 챙기며 사전에서 ‘추도식 찾아보았다. 사전에는 추도식의 의미가 죽은 사람을 슬퍼하며 그리워하는 뜻으로 치르는 의식이라고 나와 있었다. 같은 사람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모이는 시간.      


나의 엄마를 친구로, 성당의 언니로, 동생으로, 고모로, 이모로 아끼고 사랑하던 이들과 오늘 모인다. 코로나로 따로 연락하지 않고 있었는데 먼저 연락을 주신 분들에게 답장하다가 결국 작은 안내장까지 만들어 보냈다. 그리고 돌아온 메시지들. ‘연락 정말 기다렸어요. 다들 보고 싶네요. 이날 만나요.’      


추도식은 살아 있는 이가 먼저 돌아가신 분을 기억하고 서로의 텅 빈 마음을 나누는 자리다. 예식서와 성가 네 곡을 골라 앞뒤로 복사하고 있는 나를 보며 행사를 준비하는 기분이 들어 약간 부담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누군가의 추도식은 그저 함께 모여 그리운 이를 마음껏 추억하고 이야기하는 날이고 시간이다. 엄마는 이제 누군가에게는 추도식에 참석할 인연으로 기억되겠지.     


미사는 코로나 상황도 있어 새벽 미사로 혼자만 다녀올 예정이다. 문득 엄마와 함께 미사에 다니던 시절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엄마는 미사에 늦은 사람들이 자리를 찾지 못해 두리번거리면 주변에 있는 빈자리를 손짓으로 가리키고 빈자리까지 가는 길을 조용히 알려주었다. 또 옆에 앉으신 어르신이 성가 책에서 성가 번호 쪽수를 잘 찾지 못하거나 성가 책을 잘 넘기지 못하면 늘 엄마의 펼쳐진 성가 책을 그분께 드리고 그분 성가 책을 엄마가 받아 다시 찾아 노래를 부르곤 하셨다. 가족 중 유일하게 나만 아는 엄마의 모습이다. 함께 한 시간에 미사와 성전 안에서의 기억이 많다. 그리고 그 모습이 지금은 보이지 않는 큰 위로가 된다.  

    

한강을 걸으며 2019년 4월 사진첩에서 25일 새벽 사진, 아침 사진, 동영상을 보며 조금 울었다. 임종날 새벽에 산소 포화도가 낮아졌다는 말, 숨소리가 거칠어졌으니 눈여겨보라던 간호사의 말을 듣고 엄마 곁을 홀로 지키던 새벽, 불을 켜고 엄마 손에 묵주를 쥐여주고 엄마 곁을 지켜주던 강아지 인형을 팔에 둔 다음 엄마가 좋아하던 성가를 귓가에 들려주던 새벽이 떠오른다. 그때 간병에 지치지 않고 끝까지 힘을 내며 엄마 곁을 지키던 나도 보인다.      


엄마 친구분이 내일 엄마에게   가져갔으면 좋겠다면서 엄마가 좋아한   말을 집으로 보내셨다. 하지만 양이 너무 많아 엄마 친구분에게 나눠 먹겠다고 말씀을 드리고 반은 엄마의 마지막을 지켜준 병원 수녀님과 간호사분들에게 보내기로 했다. 비록 내가 준비한 것은 아니지만, 엄마의 이름으로 나눌  있어 감사하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데 1년이 지났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많은 이의 꿈에 나오는 엄마처럼 엄마는 그곳에서도 잘 지내고 계시리라 믿는다.


4월 26일_아침


엄마의 첫 기일. 새벽 일찍 눈이 떠져 성당까지 걸어가 미사 전 묵주기도를 드리고 미사예물에 올려둔 기도로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와 배달되어 온 떡 상자를 열어 작은 그릇에 소분해두고, 따로 엄마에게 가져갈 접시와 우리가 먹을 그릇에 떡을 담아 챙겼다.      


엄마에게 가는데 날씨가 너무 좋아서 울컥했다.

오늘 날씨도 너무 좋네. 역시 엄마가 복이 많으셔.’ 이어지는 이야기, 주변에 피어있던 겹벚꽃과 나무의 새싹, 파란 하늘.  보러   너무 슬프지 말라고, 소풍처럼 오라는 엄마의 마음이었을까.


추도식에는 스무 명 정도 모였다. 한 존재를 둘러싼 부모와 자식, 가족, 이모와 고모, 성당 언니와 친구. 우리가 오직 남길 수 있는 것은 사랑을 뿌린 시간과 마음인 것 같다. 미리 복사해둔 추도식 예절 기도문을 나부터 읽기 시작해 나중에는 언니, 남동생과 함께 읽었다. 그리고 나도, 남동생도 한 마디씩 하다가 목이 메이고 눈물이 흘렀다. 그 눈물도 그리움, 사랑의 표현 같았다.


엄마의 유일한 올케인 외숙모가 자신이 쓴 짧은 메시지를 직접 읽고 싶다고 하셨다. 그 말에 나도 이해인 수녀님 시집 『엄마』에서 어제 눈에 담아둔 시를 읽었다. 같은 존재를 함께 그리워하는 마음. 그리고 그 그리움을 눈앞에 펼쳐 두고 서로 위로할 수 있던 시간.


엄마 성당 친구분이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떡을 두 상자 챙겨주셔서 추도식 후 다 같이 모여 앉아 아침에 우려 보온병에 담아둔 차와 함께 먹었다. 엄마를 잘 아는 분들이 추도식에 가져오신 꽃이 활짝 웃는 엄마의 모습과 똑닮아 너무 엄마 같았다. 항상 나누기를 좋아했던 엄마였기에 엄마의 기일에 맞춰 엄마 이름으로 천주교한마음한몸운동본부에 ‘고인 추모 기부’를 했다.      


엄마 돌아가시고 1,  누구보다 나도 힘든 시간을 보냈다.


나의 엄마였지만, 딸이자 엄마의 보호자이기도 했던 몇 년의 시간이 스친다. 깊고 진한 사랑의 체험. 슬픔에 매몰되기에는 엄마의 삶이 너무 넓고 둥글고 깊었다.


이해인 수녀님의 시집 <엄마>, 샘터


4월 29일_장례미사


평생 잊지 못할 미사가 있다면 엄마의 장례미사가 있던 1 , 오늘의 미사일 것이다.


장례미사는 장례식장에서도 드릴 수 있었다. 하지만 엄마가 평생 다닌 성당에서 기도와 미사를 꼭 드리고 싶어 4일장을 치르고 월요일 새벽에 장례미사를 드렸다.      


엄마를 모신 관과 함께 드리는 미사. 성전 안에서의 작별.


장례미사는 다른 미사와 비슷하지만, 중간에 신부님의 강론에 고인의 생전 이야기가 담기고 고별식에서 유족들이 초를 들고 양쪽에  있으면 신부님이 관에 향을 뿌리며   동안 예절을 드린다.


엄마의 장례미사에서는 청년 활동하던 시절의 신부님이 고별식을 맡아서 진행해주셨고 엄마와 가까웠던 신부님, 수녀님도 함께해주셨다. 그래서 이날 미사를 집전한 주임신부님은 여기 계신 신부님, 수녀님만 봐도 고인이 살아생전에 어떻게 마음을 쓰고 나누었는지 우리는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이야기하셨다.     


관과 함께 입장할 때의 노래는 천상병 시인의  「귀천」에 음악을 맞춘 곡이었다.  곡을 새벽에 장례미사 성가 봉사하는 분들의 목소리로 들을  있어 놀랐고 성가대 이름이 ‘하늘의 이어서  감사했다.


장례미사  서울추모공원에 가기  집에 들러 안방, 마당, 엄마가 자주 앉던 소파, 부엌 식탁 등에 엄마의 영정사진을 두고 잠시 시간을 보냈다. 그것 또한 돌아보면  잘했다 싶고 그렇게   있었다는 것에도 감사하다. 작별의 시간,  지내시던 공간과의 인사도 분명 필요하니까.     


장례식장에는 엄마와 다양한 인연으로 만난 분이나 학부모로 만나 친구처럼 동료처럼 지내던 분이 호접란을 보내주셨다. 그 화분들이 전부 식장에서 버려지는 것이 아깝고 아쉬워 마지막 날 용달 트럭을 빌려 집 정원으로 옮겨놓았다. 엄마에게 준 마음을, 꽃으로 피어 있던 그 마음을 내가 다 받고 고이 접어 보이는 곳에 두고 싶었던 것 같다.     


정원을 보면서 그날을 종종 떠올린다.

남동생이 엄마의 영정사진을 들고 성모상 앞에서 엄마와 인사하던 . 평생 남을 정원의 기억이다.     


https://youtu.be/agnZxLZRrNI

이 곡을 ‘하늘의 문’ 이란 장례미사 성가대에서 불러주셨다.



2019년 4월 26일 세상 하나뿐인 엄마가 돌아가신 뒤

인스타그램에 엄마의 세례명을 딴 #로사리아의선물 글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글쓰기란 사랑하는 대상을 불멸화하는 일' 이란 프랑스 철학자 롤랑 바르트의 말을 아낍니다.                

이제, 세상을 떠난 엄마이지만 엄마와 나눈 시간, 말과 행동을 오래 기억하고 싶어 글로 남겨둡니다.

훗날, 엄마를 잃게 될 많은 딸들과도 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정리하고 있습니다.

제 10회 브런치북 응모를 위해, 지난 글을 정리해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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