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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나 Oct 10. 2022

2020.11

11월 18

#오빠의묘이장


내가 태어나 해에 사고로 세상을 떠난 오빠의 묘는 광탄의 한 성당 뒤편에 있었다. 

양지바른 곳이지만, 다른 묘지보다 안쪽에 있어 그늘이 지는 경우도 많았고 푸릇함도 덜했다. 그래서 이번에 오빠의 유골을 화장하고 엄마가 계신 곳에 함께 모시기로 했다. 


간혹 이장을 위해 묘를 파 보면 시신에 물이 고여 있거나 그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다고 들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이미 어느 정도 흙이 파여 있었는데 관 위의 십자가 표시가 정말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완전히 썩지 않고 비교적 깨끗하게 보존된 그 관 속에 네 살짜리 아기인 오빠의 유골이 있었다. 장례지도사와 통화할 때는 오랜 시간이 흘러서 유골이 없을 수도 있다고 했는데 아니었다.


개장을 도와주시는 기사님들이 유골을 하나씩 모아 종이관 속에 넣었고, 우리는 관리 소장님과 기도 양식에 맞추어 기도했다. 노래로 연도하는 사이 종이관 속에 담긴 오빠가 우리 앞에 왔다.     

오빠의 두개골과 이는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었다. 해골인데 무섭거나 오싹하기보다는 귀엽고 예쁘고 고왔다. 그게 너무 신기했다. 아빠는 손으로 살짝 머리를 감쌌고, 나는 내 나이만큼의 시간이 흐른 유골을 보며 저만한 아이를 잃었을 엄마와 아빠의 마음에 오래 머물면서 그저 기도했다.     


오빠 이름이 적힌 종이 관을 들고 위쪽에 모셔져 있는 친할머니 묘소에 들러 인사드린 다음 성가를 하나 듣고 주모경을 바치고 절을 드린 뒤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에서 이날 처음으로 묘원에 단풍나무가 있는지 알았고 11월 이맘때 이곳 단풍나무가 참 예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태어난 지 5개월이 되었을 때 오빠가 돌아가셨기에 기억에 없음에도 내가 누군가의 동생임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잠시 단풍이 든 나무 아래에 종이 관을 내려두고 오빠와 단풍놀이도 하고 세상을 떠난 형제를 위해 기도했다. 남동생이 참 많이 울었는데 아마도 동생에게는 돌아가신 오빠 나이만 한 아들이 있기 때문이었을 거다.     


비 예보가 있었던 오늘, 개장하던 때는 비가 오지 않았다. 이장을 진행하면서 잘 모르는 부분들은 다른 분들에게 여쭈었는데 모두 상세하고 친절하게 방법을 알려주었기에 혼자가 아니라 모두 함께 같은 마음으로 큰일을 준비하는 것 같았다.      


오빠의 유골을 화장할 벽제 승화원에 도착해서는 오늘도 여전히 세상을 떠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상조회사 버스도 사람도 많았다. 일반 시신은 화장에 한 시간이 좀 넘게 걸리는데 오빠는 개장 유골이었고 어린이여서 20분이면 충분했다. 유골이 화장되어 수골실에서 한 줌이 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니 삶에서 중요한 것, 내가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의 우선순위가 분명하게 생기는 듯했다.


오빠의 묘를 개장하고 이장하는 주간. 살아 있는 모든 생물에 축복을, 이미 세상을 떠난 분들에게는 평화의 안식을 청한다. 내일 엄마 곁에 안치하기 전까지는 우리 집 안방에서 아빠와 하룻밤을 보낸다. 슬픔 너머의 것들이 있고 그것이 가족과 살아 있는 이들에게 정말 큰 유대와 사랑을 남긴다고 깨닫는다. 이 사랑은, 이 시간은 나에게 또 무엇을 남길까.     


무엇보다 아빠가 살아계실 때 아빠가 아들을 마주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던 것 같다. 아빠는 오빠를 엄마 곁으로 옮길 수 있어 마음이 너무 좋다고 하셨다. 묘지가 그늘이라 염려했던 것들이 하나도 없이 오빠가 고운 흙 아래 있던 모습을 우리 눈으로 직접 함께 볼 수 있어 모두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엄마의 음력 생신인 내일 오빠를 엄마 곁으로 모신다. 

어쩌면 이 날짜를 오빠가 스스로 선택한 건 아닐까 생각도 든다.          


11월 19

#엄마곁으로돌아온오빠 #위령성월


작년 이후 고민하고 생각만 하다가 지난 달 성당 사무실에 알아보고 진행한 오빠의 묘 개장과 이장 작업. 

어른들에게 이야기하면 ‘정말 큰 일하네. 힘들지만 하고 나면 마음이 좋을 거야.’라고 하셨는데 그 말을 온전히 이해하게 되었다.     


엄마의 음력 생신날에 오빠를 엄마 곁에 안치할 수 있어 오빠 스스로 선택한 날이 아니었을까 놀라워하기도 했다. 어젯밤 내내 비가 쏟아지다가 엄마 모신 곳으로 갈 때부터는 비가 그쳤고 안치하는 시간에는 언제 비가 왔냐는 듯이 우산 없이 있을 수 있었다.     


이번 엄마 기일에 복사하고 코팅해둔 기도문을 같이 읽고, 늘 장례미사에서 듣고 부르는 성가 

〈이 세상 떠난 형제〉를 그 어떤 때보다 애틋하게 부를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자식들 가운데 가장 짧은 시간 엄마와 머물렀던 이가 이제는 엄마 옆자리에서 오래 함께 있게 되다니. 인생은 어쩌면 이리 또 공평할까? 엄마의 생일날, 엄마 곁으로 돌아온 오빠. 가족들의 마음이 정말 좋다. 따뜻하고 기쁘다.   

  

엄마를 사랑하는 이가 엄마를 생각하면 파란색이 떠오른다며 튤립을 전해주었다. 사랑은 사랑으로 꽃 피고 나눠짐을 엄마 생신인 오늘도 느꼈다.     


슬픔에는 반드시 목격자가 필요하다는 말을 기억한다. 나는 작년부터 이 이야기를 계속 쓰고 공개하고 공유하고 있다. 그리고 나의 이야기는 나에게서 벗어나 먼 사람에게 닿기도 했고 죽음이 인간이라는 보편적 존재가 모두 겪을 수밖에 없는 공평한 일이라고 생각도 하게 되었다. 혼자 그리고 오직 가족끼리만 겪으면서 전부 소화할 수 없던 큰일이기 때문에 더욱더 이 이야기를 끊임없이 적어두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성당 사무장님, 묘원 관리소장님, 엄마 때의 장례지도사님, 수녀님, 엄마의 성당분들, 나의 사람들과 랜선 지인들, 엄마와도 알고 지내던 수녀님, 신부님, 또 엄마 돌아가신 뒤 인연이 된 신부님과 수녀님. 많은 분의 도움과 기도 덕분에 오직 우리 가족만의 일이 아닌 일로 잘 치를 수 있었다.     


위령성월, 곳곳에 물든 단풍의 아름다움에 황홀해하다가 시간이 흘러 아름답던 나뭇잎들이 잎을 떨구는 것을 보는 것도 위령성월의 축복과 은총처럼 느껴진다. 


떨어지고 자리를 내어주는 자연스러운 현상을 모두가 바라보며 지내는 달. 소멸, 순환, 버려야 사는 나무들을 바라보며 살아 있는 이들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하는 달. 그것이 11월이다.

한식이나 추석에 성묘갈 땐 몰랐던, 묘지 주변의 단풍.

https://youtu.be/-JKqi7SmD4g

성가로 받는 위로. 노래 가사도 기도같다.




2019년 4월 26일 세상 하나뿐인 엄마가 돌아가신 뒤 

인스타그램에 엄마의 세례명을 딴 #로사리아의선물 글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글쓰기란 사랑하는 대상을 불멸화하는 일' 이란 프랑스 철학자 롤랑 바르트의 말을 아낍니다. 

이제, 세상을 떠난 엄마이지만 엄마와 나눈 시간, 말과 행동을 오래 기억하고 싶어 글로 남겨둡니다.

훗날, 엄마를 잃게 될 많은 딸들과도 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정리하고 있습니다. 

제 10회 브런치북 응모를 위해, 지난 글을 정리해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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