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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정원 Oct 10. 2024

(01) 연못 메울 거옌 허염신게

(단편소설) 열세 살 나의 연못 01



이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창작한 것입니다.







요즘 들어 어린 노루가 자꾸만 밭에 들어온다.

몇 번이나 난장판을 만들어놓은 것을 봐넘기다가 드디어 낑낑대며 돌담을 쌓고 있는데, 마을에서 이장을 한 적이 있어 여전히 이장으로 불리우는 나의 오랜 벗  이장이 찾아왔다.


“학교에 연못, 메울 거옌 허염신게.”

(학교의 연못을 메운다고 하네.)


나는 아...! 하는 희미한 외마디 소리를 내고는, 곁에 놓아둔 텀블러를 집어 들어 물을 마셨다.

학교의 연못을... 음... 그렇게 결정되었구나...


그새,  이장이 팔을 걷어붙였다.

우리는 돌을 하나씩 들어 차곡차곡 쌓으며 그동안 백 번도 넘게 했을 학교 이야기’를 처음인 듯 나누며 폭소했다.


걸핏하면 선착순 달리기를 시키던 체육 선생과 문제를 못 풀면 교실 뒤쪽에 줄을 세웠던 수학 선생.

운동회날 연못에 빠져 교감 선생을 걱정시켰던 그의 막내딸과 대청소날 화장실이 당첨됐었던 이야기 등...

마치 육십 년 전으로 되돌아간 것처럼 마음을 졸이다가도, 이미 이긴 것을 아는 스포츠 경기의 하이라이트를 뉴스에서 다시 보는 것처럼 우리는 호탕한 웃음으로 추억을 한 장면씩 넘겨봤다.  


그러나 빈 운동장을 서서히 채워가던 푸르스름한 여명과 모두 집으로 돌아간 시간 교실 안까지 파고들던 주홍빛 노을까진 강 이장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 빛들은 가슴 한구석에 간직해 둔 채, 나는 크고 작은 돌들이 바람구멍을 남기며 서로에게 잘 기대어 서 있는지 꼼꼼히 살폈다.




돌담은 잘 쌓아졌다.

철없는 어린 노루의 발자국이 이제 이곳으로 넘어오못하리라.





며칠 후 저녁, 나는 막걸리 세 병을 사 들고 학교로 갔다.

마침 문을 잠그려던 수위는 동네에서 본 적 있는 얼굴이었다.

연못을 메워버리기 전에 한번 보러 왔다고 말하자 그는 길을 내어주며 들어갔다 오라고 했다.


나는 막걸리 뚜껑을 하나씩 열어 연못 주위에 뿌리면서 찬찬히 한 바퀴를 돌았다.

노을이 어둠 속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잠시 서서 운동장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건너편에서 열세 살 소년이 연못가에 서있는  백발의 노인을 향해 숨가쁘게 달려오고 있것만 같아 가슴이 뻐근해왔다.





*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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