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코피 팡팡 쏟으멍
(단편소설) 열세 살 나의 연못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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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십 평생 코피를 그렇게 철철 흘린 건 그때가 유일하다.
육십 년 전이다. 열세 살이었다.
지금은 대기업의 녹차밭이 된 오름에서 어머니와 나는 쇠촐(소 먹이는 풀)을 베고 있었다.
그러던 도중 느닷없이 코피가 터진 것이다.
들판에 흔했던 쑥잎을 북북 뜯어 콧구멍을 틀어막았지만, 머리를 뒤로 젖히면 피가 목구멍 아래로 쿨럭쿨럭 내려가고, 앞으로 조금만 숙여도 쑥잎 사이로 핏줄기가 줄줄 새어 나와 옷 위에 붉은 동그라미와 줄무늬가 어지럽게 그려졌다.
(그 시절 제주에선 코피가 나면 꼭 쑥잎을 뜯어 박박 비벼서 보드랍게 만든 후 콧구멍을 막았다. 다른 풀은 안 된다.)
곧 괜찮아질 거라고 어머니를 안심시키면서도 가슴 한복판이 심하게 왈랑거렸다.
고개를 젖히지도 숙이지도 않은 각도를 겨우 찾아 몸을 고정하니, 바다처럼 파란 하늘과 막 금빛이 섞여들기 시작한 녹색 벌판이 한눈에 들어왔다.
쇠촐을 베며 흘린 땀이 목과 등줄기에서 서늘하게 흘러내렸다.
순간 머리가 아득해지면서, 전날 밤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나는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갈 돈이 없어 어머니와 남의 밭에 검질(잡초)을 매러 다녔는데, 어둑해지면 동네 아이들과 모여 나뭇가지로 칼싸움을 하거나 술래잡기를 하며 돌아다니는 게 일이었다.
당연히 어젯밤에도 아이들과 어울려 떠들썩하게 몰려다니고 있었다.
언제부터 거기에 서 있었는지, 어른 한 명이 우리를 폭낭(팽나무) 아래로 불러 모았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 어른은 제주시에서 대학교를 다니는 면장 집 둘째 아들이었다.
대학생은 우리를 일렬로 세운 후 차례로 얼굴을 가리키며 도지사 이름을 물었다.
아이들은 심각한 표정이 되어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모르쿠다(모르겠어요)’라고 대답했다.
대학생의 얼굴은 답을 모르는 우리보다 더 심각해 보였다.
“이거, 이거, 아는 놈이 한 놈도 없구나. 마지막으로, 너! 도지사 이름이 뭐냐?”
“김영관입니다.”
끄트머리에 서있던 나의 대답이었다.
동네에선 라디오를 폭낭 가지에 묶어 방송을 틀었는데, 우리집에서 지척이라 소리가 잘 들렸다.
뉴스에서 그 이름을 들었던 기억이 난 것이다.
“오, 너는 이름 알암구나! 잘들 들으라, 이?
너네 이추룩 도지사 이름도 모르고 밤에 모영 허는 일 어시 들돌아다니멍, 공부도 안 허고 세상 돌아가는 것도 모르민 이, 코피 팡팡 쏟으멍 늙어 죽도록 밭디서 일만 허여사 되는 거여, 알아시냐?”
(오, 너는 이름 알고있구나! 잘들 들어라, 응?
너희들 이렇게 도지사 이름도 모르고 밤에 모여서 하는 일 없이 싸돌아다니면서, 공부도 안 하고 세상 돌아가는 것도 모르면은, 코피 펑펑 쏟으면서 늙어 죽도록 밭에서 일만 해야 되는 거야. 알았냐?)
대학생의 잔소리가 이어지며 흥이 깨진 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
어젯밤엔 듣고 잊어버렸던 그의 말이 붉은 코피처럼 선명하게 가슴을 적셔오며, 나를 적잖이 심란하게 만들었다.
코피 팡팡 쏟으멍...
코피 팡팡 쏟으멍... 늙어 죽도록...
아! 대학생은 나의 오늘만이 아니라 내일까지도 예견한 것일까...!
벌써 며칠째 날이 밝기도 전에 일어나, 한 그릇이 되나마나 하는 밥을 간장에 찍어 먹고는 쇠촐을 베러 이 오름까지 왔다 갔다 하는데, 우리에게 쇠촐을 맡긴 집의 쇠막(외양간)을 팔월 명절 전까지 가득 채우려면 아직 갈 길이 구만리였다.
그래도 그날 밤, 그 구만리보다 더 급한 말을 어머니에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머니. 나 내일 하루만 쇠촐 비래 안 강 어디 좀 갔당와야쿠다.”
(어머니. 저 내일 하루만 풀 베러 안 가고, 어디 좀 다녀와야겠어요.)
- 다음주 월요일(24.10.14.)에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