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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정원 Oct 03. 2024

옆구리에 아카시아가 자란다 09

우리 마음이 슬픈 이유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 넌 그 이파리들이랑 줄기, 어떻게 했어?


- 처음엔 서랍 속에... 그러다 다섯 쯤 됐을 때 창문 열어서 바람에 날려줬지. 그 후론 떨어질 때마다 그렇게 했고. 마지막에 줄기만 누나가 다니던 성당 정원 구석의 나무 아래 놓고 왔어.


- 난 종이상자에 다 모아놓았는데.



우리는 다시 한동안 말이 없다가, 이번엔 진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 잎들언제 떨어진 것 같아?


- 내가 잊어갈 때마다...? 아마도.


-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어. 그리고 아예 틀린 것도 아니야.


- 그러면?


- 누나가 '이제 그만 나에게서 놓여나' 라고 말하고 싶을 때마다... 아마도.



너무나 그럴 듯한 대답에 나는 조금 아득해졌다.

머리에서 하늘까지의 거리가 휘청 멀어지는 느낌이었다.


- 군대 갔을 때, 한 겨울에 새벽 보초 서다가 문득 들었던 생각이야.



다시 침묵. 얼마 후 진우가 낮은 목소리로 울먹임을  억누르며 천천히 말했다.


- 유정아. 우리 누나...  슬프게 하려고 일부러 그런아니잖아...... 그치?



눈물이 그렁그렁한 진우의 얼굴을 보며 내가 말했다.


- . 일부러 그렇게 할 엉터리같은 누나가 어디 있어...?

다 누나의 모습대로 살아낼려고 그런 거지.


- 그치?


- 응.


- 그건 나를 사랑하고 안 하고의 영역이 아니야, 그치?


- 응. 를 사랑하고 안 하고의 영역이 아니야.


- 수인이도.


- 응... 수인이도.



나는 숨을 휘익 내쉬고, 울지 않으려고 애쓰며 말했다.


- 그런데 그냥, 우리 마음은 슬픈 거야. 소중하니까.

우리도 우리 마음이 제일 소중하니까.

그건 우리 마음이니까.



진우는 젖은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에서도 눈물이 뚝뚝 떨어지며 옷 앞섶이 젖어 들었다.

진우는 오른손바닥으로 내 왼쪽 얼굴과 오른쪽 얼굴의 눈물을 차례로 닦아주었다.

그리곤 대본에 적혀있기라도 하듯, 마치 반드시 그래야 하는 것처럼, 우린 잠시 입을 맞추었다.


나는 침대에서 내려와 아직 그곳에 앉아있는 진우를, 한의원 입구에 들어섰을 때처럼 아주 꽉 끌어안았다.

진우가 속삭였다.


- 유정아. 옆구리의 자국 보여줄까?



우린 껴안고 있는 채로 웃었다.


- 난 지금은 옆구리에 자국이 있는 게 좋아.


- 나도 그래.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린 그렇게 말했고, 그건 진심이었다.



*



며칠 후 크리스마스 날.


옆구리에서 떨어진 가늘고 긴 줄기로, 종이상자 안에 보관했던 아카시아 잎들과 핸드폰 캐이스 안에 넣어둔 대추나무 잎을 한데 모아 칭칭 감았다.

그것을 다시 종이상자 안집어넣고 절로 갔다. 


대웅전 뒤뜰의 대추나무로 가서  살짝 판 후 상자에서 잎들을 꺼내어 땅으로 보내주었다.


흰 운동화 발로 꼭꼭 밟아주고서 몇 걸음 물러서 대추나무를 올려다보고 있으려니, 어느새 곁에선 주지스님이 ‘메리 크리스마스!’  지긋이 웃어 주었다.


노을이 시작되고 있었다.

내년 5월, 수인이가 필 것이다. <끝>     









다음화(10화)에 짧은 '에필로그'와 '작가노트'가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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