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리메 Oct 06. 2020

엄마를 사랑하는 방법

첫째딸로 살아간다는 것은 

엄마가 싫은데, 엄마를 놓치 못하는 첫째의 숙명


© marvelmozhko, 출처 Pixabay


하루는 엄마가 엄청 좋은데, 어떤 하루는 엄마가 다른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너무 싫다.



이런 생각이 점점 강해지는 요즘이다.


뭐 하지 않아도 별 얘기 없다가도 투닥거리게 되고 서로에게 섭섭해지고, 결국엔 하지 말아야 할 얘기까지 하게 되는 어떤 부부들처럼 너무나도 자주 다투는 우리는 모녀지간이다.










나만 그런 줄 알았다. 나만 엄마랑 사이가 안 좋고, 나만 엄마가 유독 별난 이상하리만큼 자식밖에 모르는 사람인 줄 알았다. 정말 얼마 전까지 말이다.


근데, 주변에서 엄마 이야기를 보면 나보다 더 심하거나 아니면 나처럼 비슷하게 엄마가 너무 답답하게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듯 지켜보고 궁금해하고 심지어 만나는 남자 친구까지 관섭해서 헤어지는 일도 있듯이 말이다.



엄마를 사랑하는데, 우리 엄마도 나를 사랑하는데 왜 우리는 다투게 되고 서로에게 상처 주는 말만 되풀이하게 되는 걸까?


관계에 있어서 집착을 하게 되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엄마에게 자식 말고 다른 대안이 없어서 그런 건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들로 고민을 하던 차에 엄마와 관계가 좋을 때마다 과거 얘기를 하던 때가 생각났다.






그때 엄마의 과거를 돌이켜 생각해보니 엄마의 마음이 아픈 이유가 드러났었고, 그래서 엄마가 이해가 안 가다가도 이해가 되었고, 어느새 엄마가 나를 나아 기르던 젊을 적 엄마의 나이가 되고 보니 새삼 엄마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엄마의 모진 말들 엄마가 나를 향해 외쳤던 모든 말들이 상처가 되기도 했지만, 그 말들의 뜻을 잘 펼쳐보니 그 속에 엄마의 마음은 사랑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엄마를 사랑하기로 결심했고, 이제 엄마를 사랑하는 방법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그전에 우리 엄마를 이해하게 된 계기들 즉, 과거의 사건들을 먼저 살펴보고 이야기해봐야겠다. 그래야 우리 엄마를 더 이해하기 쉽기 때문에 엄마가 겪은 과거 사건들로 엄마의 성향을 알아본다면 좀 더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우리 엄마는 1959년 5월경 초여름 날씨에 오전에 태어나셨다. 5남매 중 둘째 딸로 태어나 할머니께서 자랑하는 것 중 하나인 업고 키운 딸이셨다. (딱, 이때만 이뻐하신 거 같다.)


나중에 이 말이 엄마의 가슴에 얼마나 깊게 박히는 말이 되었는지는 말미에 밝히도록 하겠다.


할머니 역시 둘째 따님이셨는데, 할머니의 엄마 즉 엄마의 외할머니께서 할머니를 엄청 미워하셨다고 하셨다.

첫째 딸만 이뻐하시고, 할머니는 모든 행동들을 다 미워하셨는데 유독 할머니를 싫어하셔서 언니에 대한 미움이 크다고 하셨다.


근데, 그 행동을 우리 엄마에게 고스란히 하셨던 거다. 첫째 딸에게만 몰래 깨워서 우유를 먹이시고( 근데 우유 못 먹은 우리 엄마가 제일 크다.)


할머니가 밖에 일 보러 나가시면 집안 살림은 우리 엄마의 몫이고, 하루는 엄마가 반항한다며 초등학교 때 친구네 집에 놀러 갔다가 밥까지 먹고 늦게 집에 들어갔더니, 할머니가 집안일 안 했다고 엄청 두들겨 패셨다고 했다.


그 당시 겨우 10살 미만이었던 어린아이를 밥 차리고 설거지 안 했다는 이유로 때린다는 게 도무지 이해가 안 가지만, 엄마는 그렇게 동생들 3명과 언니 1명을 먹여 살리는 가장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매일 같이 학교 갔다 와서 밀가루로 수제비나 칼국수 등을 해 먹고 뒤에 설거지까지 해 놓아야 할머니에게 매를 맞지 않았다.


그렇게 엄마는 불안 속에서 성장했고, 나이가 들어서도 차별대우는 여전했다. 내가 태어나고 내 동생이 태어나고 나서도 우리에게까지도 차별대우가 너무 심해서 지금 우리는 할머니를 보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아마 할머니께서도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한다.










할머니가 엄마를 업어 키운 사실이 엄마에게 아픈 이유는 어느 날 할머니 댁에서 친척들이 모두 썰물처럼 빠져나간 명절 마지막 날 저녁때쯤이었다.


할머니와 엄마가 이야기를 하다가 예전 이야기가 나왔는데, 엄마가 할머니에게 서운했다고 말씀을 하셨다.


그때 할머니가 언성을 높이면서 이러셨다. “너는 내가 이쁘게 나아줬고, 특히나 너만 업어 키웠으니 절을 하라” 고 그만큼 엄마를 소중하게 키웠다고 자랑을 하셨던 거다. 


우리 엄마의 과거 이야기가 무엇이었냐면 중학교 가야 할 시기에 입학금을 준비하셨는데, 그 돈을 옆집 삼촌 입학금으로 쓰고 엄마는 결국 중학교를 다니지 못하시게 되었던 이야기이다.


엄마 또래들은 심지어 대학까지 갈 수 있는 시대에 중학교를 안 보낸다는 게 말이 안 되는 이야기 아닌가? 어떻게 부모가 자식에게 학교를 마음대로 안 보내는 게 그것도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남의 집 자식의 학비를 주면서 안 보내다는 건 말이 안 돼도 너무 안 되는 이야기였다.


근데, 적반하장도 모자라 떳떳하게 말하는 할머니를 보고 있으니 부하가 치밀어올라 내가 한마디 했다.


"원래 아이들은 업어 키우는 게 맞고요. 할머니 있잖아요? 자식은요? 부모가 되면 교육시키는 건 당연한 거예요. 돈이 없는 것도 아니면서 어떻게 그렇게 하실 수가 있어요? 정말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


그랬더니 그 이후로 나는 할머니를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관계가 틀어져서 우리 집안 가족들은 우리 가족만 빼고 만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이렇듯이 할머니의 편애적인 사랑이 한 사람의 인생에 얼마나 크나큰 영향을 주는 건지 잘 알게 되었고 나는 그런 모순적인 사랑과 가족을 갖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엄마가 조금은 이해가 되었던 순간이었다.










엄마의 이야기는 더 많지만 일단 나의 상황으로 넘어와서 엄마와의 관계를 보자면 할머니에게 차별대우를 겪으며 도망치듯 한 결혼생활이 좋을 리가 없었고, 그 사이 내가 태어났고, 그다음 해에 내 동생이 태어나게 되었다.


나는 결혼생활이 원래 이렇게 재미없고, 서로가 싸우고 다치고 물어뜯으며 살아가는 건 줄 알았다.


평범하다고 하기엔 너무 위태로웠고, 잘못된 선택을 했다면 우리 집은 파탄이 났을 것이다. 아버지는 술을 먹고 나면 폭행적으로 변하는 주사가 심한 사람이었고, 그 속에서 우리는 불안하게 생활하며 자라왔다.


그러다 큰 싸움이 생긴 적이 있었는데, 동생말에 의하면 아빠를 칼로 찔러 죽이고 싶었다고 했다. 나는 몰랐던 그 마음이 짐작이 갈 정도로 끔찍했던 우리 가족은 결국엔 필요 없는 가족이 꼭 같이 살아야 함은 아니기에 포기했고, 그 안에서 우리는 질서를 찾았다.


그 결과 우리 가족은 아빠는 없다.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지 10년이 넘었다. 우리에게 아픈 손가락인 아빠는 우리를 태어나게는 했지만, 우리가 어떻게 자라고, 어떻게 성장했으며, 어떻게 생활했는지 잘 모른다. 대부분 아버지들이 그렇듯 우리 아빠도 그렇게 모르게 우리는 자랐다. 아빠 이야기 역시 지금 다루기엔 너무 무겁고, 할 이야기가 많아서 추후 아빠 이야기를 다루게 된다면 그때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나에게 엄마는 유독 무서운 사람이었다. 첫째였던 나를 잘 키우겠다고 엄하게 하신 건지 모르겠지만 유독 훈육을 심하게 하셨고, 실수는 용납이 안되셨으며, 나에게는 사랑보다는 집착적이고, 강압적이며 모순적이었다.


엄마 역시도 할머니처럼 나와 동생을 차별적으로 키우셨고, 나는 그걸 느낄 때마다 섭섭함에 몸서리쳤다. 엄마는 절대 그렇지 않다며 둘 다 똑같이 대한다고 하신다.


하지만 받는 입장에서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방법 아닐까? 내가 그렇게 느끼지 못하는데 어떻게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모순적이게도 우리 엄마에게는 그것이 가능하신 가보다. 자신은 그렇게 대하지 않았다며 내가 잘못 느끼는 거란다. 웃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아마 엄마는 그거 너 잘 되라고 그렇게 한 거라며 나를 이해 못하실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렇게 컸기에 사회생활할 때 너무 많이 아팠고, 너무 많은 관계에서 실망했고, 너무 많이 다쳤다.

그래서 엄마에게 하소연도 해보고 그만 해달라고 떼도 써봤지만 엄마는 내가 이상하다며 이해하지 않으려고 하셨다.


그렇게 엄마와의 관계가 틀어지면 틀어질수록 나의 인생도 틀어지기 시작했고, 엄마와 10년을 다시 같이 살면서 엄마를 닮아가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게 같이 살아보니, 보이더라 엄마가 왜 그렇게 나를 대했는지 그리고 엄마의 표현 방식은 서툴 뿐이지 하지 않았던 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젠 엄마를 사랑해보려고 한다. 연인을 사랑할 때처럼 뜨겁게 가 아닌 온돌처럼 천천히 데워지고, 절대 금방 식지 않는 온기처럼 말이다.










엄마를 사랑하는 방법은 우리가 정의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내리사랑을 받은 자들이 겪게 되는 오해이고, 그 오해를 풀려면 우리 역시 내리사랑을 해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가장 위대한 사랑은 어머니의 사랑이라고 누군가 이야기했듯이 신이 우리 모두를 사랑하기 어려워서 어머니를 보냈다고 하듯이 엄마의 사랑을 버거워하거나 숨 막힌다고 피하지 말고 그 안에 숨어있는 의미를 잘 이해해 보기를 바란다.


나처럼 헤매지 말고 나아가기를 바란다.


이전 01화 이하이의 ‘홀로’가 위로가 되는 그대들에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