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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부. 첫 번째 조각, 흔들림 없는 방패 2

엔지니어링 센스

by 닥터 F

"돌아가. 그리고 다 잊어버려. 유령처럼 조용히 살아. 그게 당신 같은 사람이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이강혁이 단호하게 등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쾅!


사무실의 낡은 철문이 안쪽으로 찌그러지며 폭발적인 소음과 함께 튕겨져 나갔다. 문밖 복도에서 섬광탄이 터지며, 눈과 귀를 마비시키는 빛과 소음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아키텍츠'의 추격조였다.


이강혁의 반응은 거의 동물적이었다. 그는 섬광이 터지기 직전, 본능적으로 몸을 날려 책상을 방패 삼아 엄폐했다. 동시에 허리춤에서 권총을 뽑아 드는 동작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젠장, 여기까지 따라붙었나!"

그의 외침과 동시에, 검은색 전술 장비를 착용한 괴한들이 일사불란하게 방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들의 움직임에는 군더더기가 없었다. 목표는 오직 방 안의 두 사람, 김서연과 이강혁이었다.

이강혁이 응사하며 맞섰지만, 적들의 수는 너무 많았다. 잘 훈련된 그들은 순식간에 방 안의 지형을 장악하고 포위망을 좁혀왔다. 이강혁이 한두 명을 쓰러뜨리는 사이, 다른 총구들이 어김없이 김서연을 향했다.


절체절명의 순간.

모든 것이 느리게 보이기 시작했다. 총성과 비명, 파편이 튀는 혼돈 속에서 김서연의 감각은 극도로 예민해졌다. 공포가 목을 조여왔지만, 그녀의 뇌는 차갑게 식어갔다. 세상이 피상적 모습이 아닌, 시스템의 속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것이 그녀의 "엔지니어링 센스"였다.


그녀의 눈에는 더 이상 벽과 가구가 보이지 않았다. 낡은 콘크리트 벽에 선명하게 드러난 응력 집중 균열, 천장을 가로지르는 녹슨 수도관의 압력 수치, 이강혁이 엄폐한 책상의 재질과 운동량, 추격조의 탄도 예상 경로가 수만 개의 데이터처럼 머릿속에 쏟아져 들어왔다.


그녀는 공황 상태에 빠지는 대신, 자신도 모르게 물리 상수를 암송하기 시작했다.

"만유인력 상수 G는 6.674×10⁻¹¹ N·m²/kg²... 파스칼의 원리, F₁/A₁ = F₂/A₂..."

이성은 공포를 억누르는 방아쇠였다. 그녀는 이 혼돈 속에서 탈출을 '설계'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허공에 보이지 않는 설계도를 그리며, 이강혁을 향해 거의 비명처럼 외쳤다.


"이강혁 씨! 3시 방향, 천장 스프링클러 배관! 가장 두꺼운 관이야!"

이강혁은 총을 쏘며 그녀를 돌아보았다. 미친 소리처럼 들렸다.

"뭐 하자는 거야!"

"잔말 말고 쏴! 7.62mm탄이면 충분해! 관 이음새에서 15cm 지점, 용접부가 가장 취약해!"

그녀의 목소리에는 히스테릭한 확신이 담겨 있었다. 이강혁은 망설였다. 이건 전술이 아니라 도박이었다. 하지만 쏟아지는 총탄 속에서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그는 몸을 비틀어 천장을 향해 정확하게 두 발을 쏘았다.

'탕! 탕!'


총알이 낡은 배관을 꿰뚫자, 끔찍한 파열음과 함께 녹물이 섞인 시커먼 물줄기가 엄청난 압력으로 터져 나왔다. 천장이 무너져 내리듯 물이 쏟아지며 추격조의 시야를 가리고, 바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제 왼쪽 벽! 석고보드 뒤에 낡은 배전반이 있어! 감전 위험!"


김서연의 지시는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다음 단계를 보고 있었다. 터져 나온 물이 바닥에 흥건해지자, 그녀는 추격조가 서 있는 바닥이 거대한 함정이 되었음을 간파했다. 이강혁은 그녀의 의도를 깨닫고, 배전반이 있을 만한 벽을 향해 총을 난사했다. 스파크가 터지고 전선이 끊어지는 소리와 함께, 비명 소리가 방 안을 채웠다.


혼란은 극에 달했다. 김서연은 이강혁의 팔을 잡아끌었다.

"따라와요! 지금이야!"

그녀는 사무실의 반대편,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벽으로 그를 이끌었다.

"여긴 막혔어!"

"아니! 이 건물, 70년대 증축 모델이야. 내력벽이 아니라 단순 조적벽이라고! 저쪽 기둥에 가해진 충격으로 이미 구조적 결함이 발생했어!"


그녀는 벽의 한 지점을 가리켰다. 그녀의 눈에는 벽돌 사이의 모르타르가 부서져 내리는 미세한 균열이 보였다. 그녀는 이강혁이 들고 있던 렌치를 빼앗아 들고, 가장 취약한 지점을 미친 듯이 내리치기 시작했다. 그녀의 비현실적인 계획이 눈앞에서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몇 번의 충격에, 벽돌 몇 장이 안쪽으로 우수수 무너져 내리며 어두운 구멍을 드러냈다. 오래된 환기구였다. 김서연은 주저 없이 좁은 구멍 속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지하 18미터의 트라우마가 목을 조여왔지만, 그녀는 이를 악물고 기어갔다.


이강혁은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책상물림인 줄 알았던 가냘픈 여자가, 눈앞에서 지옥도를 설계하고 탈출로를 창조해냈다. 그는 총을 고쳐 쥐고, 그녀의 뒤를 따라 어둠 속으로 몸을 던졌다. 복수가, 아주 희미하지만 가능한 형태로 그의 눈앞에 나타난 순간이었다. 마침내 그는 그녀의 '방패'가 되기로 결심했다.


어둠, 그리고 먼지.

김서연이 몸을 밀어 넣은 낡은 환기구는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만큼 비좁았다. 사방이 막힌 강철 벽이 그녀의 온몸을 짓눌러 오는 듯했다. 지하 18미터의 감옥에서 느꼈던, 숨 막히는 공포가 등줄기를 타고 기어올랐다. 차갑고 논리적이던 그녀의 뇌에 '위험'이라는 붉은 경고등이 미친 듯이 점멸하기 시작했다.

호흡이 가빠지고 시야가 흐려졌다. 이대로라면 과호흡으로 정신을 잃을 터였다.


'안 돼.'


그녀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이성이라는 밧줄을 필사적으로 붙잡았다. 뇌의 다른 영역을 강제로 활성화시켜 공포를 억누르는 것. 그것이 그녀가 찾아낸 유일한 생존법이었다.

"아보가드로 수, 6.022 곱하기 10의 23제곱... 플랑크 상수, 6.626 곱하기 10의 마이너스 34제곱..."

그녀는 멈추지 않고 공식을 암송했다. 의미 없는 숫자의 나열이 아니었다. 그것은 혼돈에 맞서는 그녀만의 질서이자, 무너지는 정신을 붙잡는 기도였다.


바로 등 뒤에서 이강혁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이 좁고 어두운 공간에서도 한 마리 맹수처럼 침착했지만, 앞에서 들려오는 김서연의 기묘한 중얼거림에 의아함을 느꼈다. 그녀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아까 사무실에서 탈출을 설계하던 광기 어린 천재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연약한 모습이었다.


"어이, 책상물림. 숨 제대로 쉬어. 여기서 퍼지면 둘 다 죽어."

무심하게 던지는 말이었지만, 그 안에는 그답지 않은 염려가 묻어 있었다.


김서연은 그의 말에 대답할 여력이 없었다. 그녀는 손목의 단말기를 향해 간신히 속삭였다.

"Lumen... 건물 원본 설계도... 이 환기구의 최종 출구는?"

[탐색 중... 생체 신호 불안정. 심박수 분당 135회. 빠른 개방 공간으로의 이동을 권장합니다.]


단말기에서 흘러나온 Lumen의 목소리는 이강혁의 귀에도 들렸다. 그는 그제야 그녀의 상태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앞에서 힘겹게 기어가는 그녀의 등을 말없이, 하지만 단단하게 밀어주었다. 물리적인 도움 이상의, 무언의 격려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마침내 환기구의 끝에서 희미한 빛과 함께 탁 트인 공간이 나타났다. 김서연은 거의 굴러떨어지다시피 환기구를 빠져나왔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또 다른 심연이었다.

오래전에 폐쇄된 지하철역의 승강장이었다. 선로는 녹슬고, 천장에서는 물이 뚝뚝 떨어졌다. 희미한 비상등 불빛만이 어둠 속에서 두 사람의 모습을 유령처럼 비추고 있었다. 도시의 소음이 완전히 차단된, 고요하고 거대한 무덤 같은 공간이었다.

김서연은 바닥에 주저앉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탁 트인 공간에 오자 옥죄던 공포는 서서히 물러갔지만, 온몸의 긴장이 풀리며 탈진 상태가 되었다.


이강혁은 그런 그녀를 잠시 내려다보다, 주변을 경계하며 다가왔다. 아드레날린이 식자, 아까의 상황이 비현실적인 꿈처럼 느껴졌다. 그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대체... 정체가 뭐야? 당신이 한 짓, 마술이라도 부린 건가?"

김서연은 호흡을 고른 뒤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은 다시 원래의 냉정함을 되찾고 있었다.

"마술이 아닙니다. 노후 건물의 구조적 취약성을 계산하고, 유체 역학과 전자기학의 기본 원리를 응용한 결과일 뿐입니다. 당신의 전투력과 제 계산이 결합하여, 생존 확률을 3.7%에서 68.2%까지 끌어올린 겁니다."


그녀의 대답은 너무나 건조하고 사실적이어서, 이강혁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목숨을 건 탈출을, 그녀는 한 편의 결과 보고서처럼 요약하고 있었다. 그는 그녀에게서 경외감과 동시에 섬뜩함을 느꼈다.

"...당신 부상은 현재 우리 팀의 전체 효율을 17% 감소시킵니다. 당신의 회복은 최우선 과제입니다."

김서연은 이강혁의 팔에 난 자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강혁은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었지만, 더 이상 그녀를 '책상물림 몽상가'로 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팔을 대충 둘러메며 그녀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알았어. 이제 알겠다고."

그의 목소리는 아까와 달리 진지했다.

"당신 말이 맞아. 이건 혼자서는 불가능한 싸움이야."

그는 주머니에서 낡고 닳은 인식표 하나를 꺼냈다. '이진우'라는 이름이 희미하게 새겨져 있었다.

"진우는... 내 친동생이나 마찬가지였어. 그 녀석, 엔지니어가 되는 게 꿈이었지. 당신처럼. 근데 그 꿈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그 차가운 땅 밑에서..."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김서연은 아무 말 없이 그의 말을 들었다. 그녀는 위로하는 법을 몰랐다. 그저 데이터를 입력받듯, 그의 고통을 입력받을 뿐이었다.

이강혁은 인식표를 다시 주머니에 넣고, 결심이 선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좋아. 당신의 제안, 받아들이지. 당신이 '설계'해. 나는 당신의 '방패'가 되어주지."


두 사람의 첫 번째 연대가, 도시의 가장 깊은 어둠 속에서 마침내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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