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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피 Jan 17. 2024

Q. 출근 만원 지하철에서 명상 중 패닉이 왔어요.



Q. 최근 출퇴근 만원 지하철이 힘들었어요.

명상을 해보려고 했는데,
오히려 더 힘들어지면서
현기증과 식은땀이 찾아오더군요.

잠시 지하철에서 내려 쉬다가 다시 갔는데...
제가 뭘 잘못한 걸까요?




몇 년 전, 거의 처음 MBSR 수업을 듣던 시기였습니다. 아직 직장생활에 대한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알 수 없는 불편감과 불안함, 힘겨움을 느끼고 있었는데요. 특히 출퇴근 만원 지하철에서 불안감이 증폭됐습니다. 그래서 때때로 잠시 내렸다가 타거나, 두세 정거장 정도는 걸어 다니기도 했어요. 무리해서 비싼 주차료와 교통체증을 감수하면서까지 차를 가지고 출퇴근을 하기도 했고요.


그러다 명상을 배웠다는 생각에, 야심 차게 아침 출근 만원 지하철에서 꽉 끼어 호흡 명상을 시도했습니다. 그런데... 가득 찬 사람들의 움직임과 열기, 그리고 여러 냄새들이 뭉쳐 만들어내는 불쾌감까지... 순간 호흡이 답답해지면서 현기증이 났고, 식은땀까지 찾아왔습니다. 그즈음 지하철에서 몇 번 겪었던 증상이었습니다.


결국 지하철에서 내려 잠시 앉아 쉬었습니다. 그러다 한 정거장 정도가 남아있었던 상황이라 내려서 걷기 시작했죠. 이 일을 겪은 후 했던 질문이었습니다.





A.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여러 원인이 있을 수 있겠지만...

명상이 익숙하지 않을 때는
우선 안전감을 느낄 수 있는 장소와 상황에서
연습하는 걸 추천해요.

마음챙김 명상은 현재 순간에 대한
알아차림을 경험하는 것인데,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강한 저항감이 느껴지는
상황이나 감정을 마주하는 것은
힘든 일이 될 수 있어요.






마음챙김 명상수업에 처음 들어가면 권고되는 중요한 태도가 하나 있습니다. '판단/평가하지 않기'인데요. 쉬운 말처럼 보이지만, 명상을 반복하다 보면 일상의 거의 모든 순간에 '판단/평가'를 하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어린아이들은 순수하고 열린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아주 어린아이들은 자기 응가가 뭔지 모르고 만지기도 하고, 맛을 본다고도 하더라고요. 어른들에게는 '으- 더러워!' 하는 반응을 일으키겠지만요.


자라는 과정에서 여러 경험을 하며 배우고 익힙니다. 이것이 삶에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방해가 되기도 하고요. 잘 발현될 때는 '삶의 지혜'가 되지만, 잘못 발현이 될 때는 '편견'이 되어 내적 성숙을 방해하기도 합니다.


이 일은 저 스스로 '판단/평가'하는 태도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었던 기회가 되었습니다. 나중에 명상과 상담을 병행하며 이 에피소드에 대해서도 다루면서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는데요. 그 당시, 저는 사적/공적으로 사람에 대한 불신과 혐오가 커지는 일들을 연이어 겪었습니다. 그러면서 '타인은 지옥'이라고 생각하고 느끼고 있던 시기였어요.


그런데 만원 지하철은, 알 수 없는 불특정 다수가 가득한 장소였고 그 장소에 있는 것만으로도 근거 없는 불안감과 혐오라는 감정이 강하게 발현되었던 것이죠. 그래서 지하철이 싫었고, 불편했고,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아무런 준비 없이 명상을 시도했던 것이죠.


이후에 명상 선생님과 이 상황에 대해 생각하며 명상을 연습해 보았는데요. 우선 그 상황을 떠올려보며, 그때 감각한 신체/생각/감정을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그때 몸의 반응은 어떠했고, 어떤 생각을 했으며, 어떤 감정들이 있었는지요. 그리고 다음으로 그 감각이나 생각, 감정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를 함께 이야기하며 저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내용들을 풀어 보았습니다.


이렇게 명상을 하다 보면 '이게 뭐지?'하고 깜짝 놀랄 만큼 큰 감정이나 생각의 덩어리가 떠오를 수 있습니다. 일련의 경험과 사건들로 인해 매우 강한 저항감을 야기하는 생각이나 감정이 말입니다. 이럴 때는 마음챙김 명상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다른 종류의 명상이나 정신/심리적 도움(정신과 치료, 심리상담 등)과 병행하는 것을 마음챙김 명상과정에서도 권장합니다. 실제로 MBSR과 같이 마음챙김 명상수업 전에 지도자와 1:1 대면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는데, 이때 우선적으로 정신/심리적인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판단되면 수업 진행을 거절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우리 안에 무수하게 자리하고 겹겹이 쌓인 세상과 사람에, 상황에 대한 '판단/평가'의 근거들이 우리가 현재의 모습을 그대로 보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는 A라는 상황일 수 있지만, 거기에 우리의 '판단/평가'라는, 경험/생각/감정이 뒤섞인 것이 들러붙게 되면 A라고 보지 못하고 B라고 보면서 강도 높은 저항감을 느낄 수도 있으니까요.


여기서 저항감이라는 것은, 우리가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는 강한 힘으로 심적 고통의 근원이 된다고도 합니다. 이렇게 되고 싶은데 되지 않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이렇게 되기 싫은데 이렇게 되어버린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무엇인가 변화하길 바라지면 변하지 않는 것, 변화하지 않길 바라지만 변화해 버리는 것... 이 모든 것이 바로 우리의 욕망과 현실의 불일치를 의미하고, 그 간극에서 저항감이 강하게 발현됩니다. 그런데 결국 이 모든 기대의 불일치는 우리가 살면서 쌓아 온 '판단/평가'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아무런 '판단/평가' 없어 세상을 본다면 꼭 그렇게 되어야 할 일도, 되지 말았어야 할 일도 없을 것이니 말입니다.


만약, 마음챙김 명상을 하던 중에 스스로 이해하기 어렵고 불편하고 힘든 상황을 겪는다면 꼭 좋은 명상 선생님으로부터 도움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 장점이 많다고 알려진 명상이지만, 잘못된 방식으로 지속할 경우 자기 내면에 침잠하면서 오히려 고립될 수 있다고도 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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