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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피 Feb 21. 2024

Q. 무의식적으로 불편한 감정에서 도망치려고 해요.



Q. 명상을 하다 저도 모르게
불편한 감정을 만나면,
도망치려고 하는 것 같아요.

 다른 생각을 한다거나,
신체의 다른 부위에
집중을 하려고 한다거나...

그러다 결국 다시 불편한 감정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지만,
때로는 그게 싫어서
명상을 끝내기도 했어요.

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어느 정도 명상을 지속하고서 이제 꽤나 명상이 익숙하다 생각할 즈음 발견한 모습이었습니다. 명상을 하면서 어느 정도 익숙한 불편함 들은 소화하기 시작했지만, 갑작스럽게 발생한 새로운 불편함 들은 다루기가 어려웠어요. 새로운 사람과의 갈등, 새로운 좌절, 새로운 분노, 새로운 당혹감 등등. 저도 모르게 몸과 마음에 낯선 불편함이 느껴지면 명상으로 도망가버리는 느낌이었다고 할까요? 가장 강하게 느껴지는 불편한 마음을 제쳐두고, 애써 다른 감정이나 몸의 반응으로 주의를 돌리려고 했던 거죠.


문득 깨닫게 된 이 모습이 적절하게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명상은 현재의 상태를 잘 알아차리는 연습인데, 불편한 것만 쏙 빼놓고 알아차리려 하고 있었으니까요. 생각해 보자면, 그 불편함의 정체를 파악하고자 시간을 가지기 위해서였던 것 같기도 해요. 애써 안 본 척하면서, 대체 이 불편함은 어디에서 온 것이고, 무엇이 문제이며,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머리의 한쪽 구석에서는 열심히 훔쳐보고 있었습니다.





A. 불편한 감정을 마주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렵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세요.

불편함으로부터 도망치려고 할 때마다,
거기서 발생하는 저항감이 불편함을
더 강화한다는 것을요.

불편한 감정이나 고통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함께 머물러 줄 때,

자연스럽게 사라지기도 합니다.




MBSR의 수업에서 "투쟁-도피 반응 (fight-or-flight response)"에 대해 처음 들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주 먼 과거, 원시시대의 우리 선조들은 자연에서 삶과 죽음을 맞이했는데요. 도처에 존재하는 위험들에 대해 반응을 잘한 경우에만 살아남아 우리에게까지 유전자를 넘겨줄 수 있었고, 그 노하우가 바로 "투쟁-도피 반응"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겁니다. 쉽게 요약하자면, 야생에서 곰과 같이 생명을 위협하는 대상과 마주했을 때 "싸우거나, 도망가거나, 얼어붙거나"의 반응 중 한 가지를 택한다는 것이고요. 이것은 우리의 의식이나 의지와 무관하게 신경계의 반응으로써 먼저 발현된다고 하는데요.


이렇게 위협을 인지하면 우리의 뇌는 교감신경을 활성화하면서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있도록 준비시킵니다.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예민해지며, 당장 도망가거나 싸우기에 불필요한 내장기관의 활동을 억제합니다. 그러면 몸이 잔뜩 긴장해 그대로 달려 나가 싸우거나, 도망가거나, 또는 얼어붙어 움직일 수 없게 되어요. 신체적으로는 가장 적절한 반응을 이끌어낸다고 하지만, 재미있는 점은, 사람마다 선호하는 반응들이 있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저의 경우 먼저 얼어붙고, 두 번째로 도망가고, 그래도 안 되면 자포자기 상태로 싸워보자는 상태가 된다랄까요? 명상수업 시간에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떤 사람들은 싸우기부터 시작하고, 어떤 사람들은 도망부터 가기도 했습니다.


이 "투쟁-도피 반응"은 스트레스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인 반응패턴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 '곰'은 없지만, '곰 같은 것'은 도처에 깔려 있습니다. 흔히들 비유하기로는 직장 상사, 불편한 친척 어른, 나의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는 기타 사람들(성적을 내주거나, 돈을 주거나, 사회적 관계들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등)... 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잔잔하고도 위험한 '생명의 위협'들은 만성적으로 우리를 괴롭히기 쉽다고도 하고요.


여하튼, 이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패턴에 따라 저는 불편함을 새롭게 마주할 때 저도 모르게 얼어붙어 애써 호흡에만 집중하기도 하고, 또는 다른 생각이나 마음의 상태를 찾아 헤매며 도망 다녔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이 새로운 불청객에게 낯이 익었다 싶을 때가 되어서야 조금씩 다가가 자세히 살펴보고, 함께 있어 줄 용기를 낼 수 있었어요.


선생님 말씀으로는, 그렇게 하는 것도 아주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명상을 할 때 감당하기 힘든 정도의 불편감이나 고통과 억지로 마주하려다 외려 그 안에 깊이 빠져 더 힘들어질 수도 있다고요. 그렇지만 가능하다면, 불편감에 대해 이해하거나 분석하려 하지 말고 그저 느껴주는 연습은 필요하다고도 하셨습니다. 정말 낯선 새로운 물체를 만났다는 태도로, 그것이 '불편감'이라는 것조차 잊고서요. 이런 느낌이구나, 이렇게 영향을 미치고 있구나, 거기 있구나... 하면서요. 중요한 점은 저도 모르게 '불편감'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싫은 것'이라고 정의해 버리는 행동을 멈추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이 부분은 아직도 어렵습니다. 평생을 살아오면 쌓인 습관이 있기에, 저도 모르게 스트레스가 찾아오면 '불편감'이라는 딱지를 붙여 잠시 뒤로 밀어 두고 보지 않으려 하거든요. 그럼에도 명상을 하면서는, 저 스스로 그렇게 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딱지를 떼어주고, 한 발짝 다가가서 살펴보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가장 신기한 점은, 외면하고 흘깃 봤을 때는 정말 거대하고도 어마어마하게 어두운 그림자처럼 보였는데 막상 다가가 보면 티끌 같은 작고 하찮은 것이었음을 깨닫는 순간이 참 많다는 거예요. 참, 괴로움의 공식도 기억해 두시길 바랄게요.



Suffering (괴로움) =
Pain (고통) x Resistance (저항)


                    


우리가 살면서 마주하게 되는 고통과 스트레스에 '저항'이 얼마나 곱해지느냐에 따라 괴로움은 100이 될 수도, 0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말입니다. 불편함이라고 하는, 고통이나 스트레스는 어떻게 해도 없앨 수 없습니다. 그저 함께 머물러주고, 그 감정과 아픔을 느껴줄 때 서서히 흩어져 사라진다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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