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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똑서 Oct 27. 2018

엄마가 시킨 일 꼭 해야 돼?

주말에 딸을 위해 오랜만에 요리했다. 야채를 잘 먹지 않는 딸을 위해 잘게 썬 야채를 듬뿍 넣은 짜장과 고등어구이였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엄마표 짜장밥을 해줬더니, “엄마, 나 밥친구 먹을래”라고 말했다. 밥친구는 밥에 뿌려먹는 인스턴트식품이다. 오랜만에 정성 들여 해준 엄마표 요리를 두고 인스턴트식품이라니. 안 될 말이다.

“안 돼, 오늘은 짜장밥 먹어”

말하는 동시에 딸이 밥친구를 뜯었다.

“맨밥 줘요”

“딸, 너 요즘 왜 이렇게 엄마 말 안 들어?”

짜증을 내면서 맨밥을 퍼줬다.

“왜 네 마음대로만 하려고 해?”

밥을 주면서 딸의 잘못된 행동을 또 지적했다. 

“그럼, 엄마 말대로 하라는 거잖아, 왜 내 마음대로 하면 안 되는데?”

정말 내 마음대로, 내 말대로 하라는 걸까? 자문해봤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그렇더라. 내 말대로 안 하니까 딸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딸 입장에서는 “왜 내 마음대로 하면 안 되고, 엄마 마음대로 해야 하는 건데?”라고 당연히 물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딸은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돌봐준다. 퇴근하고 딸을 데리러 가면 할머니, 할아버지는 딸에게 “말 잘 들어야지”라고 말하곤 한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자신들의 말대로 따라주지 않는 손녀딸이 막무가내라고 말한다. 그런 부모님의 양육방식을 보면서 나하고 있을 때만큼은 딸의 의견을 존중해줘야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런데 오늘 딸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나 역시 딸에게 내 말대로, 내 마음대로 딸이 움직여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런데 말이다. 아이가 내 말대로 안 하니까 속상했다. 왜 아이가 내 말대로, 내 뜻대로 따라 주기를 바랄까? 

첫째, 지금 당장 내가 편안하려고 하는 거였다. 딸이 한두 살 되었을 때, 스스로 숟가락질을 하려고 했다. 육아 책이나 주변 엄마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스스로 하겠다고 하면 그냥 내버려두라고 했다. 처음에는 그냥 내버려두었다. 그런데 먹는 것보다 버리는 게 더 많고, 그 흘린 것을 치우려고 하니 일거리가 너무 많았다. 그래서 숟가락질하려는 딸아이를 힘으로 제압하고 떠서 먹여줬다. 그러니까 딸은 밥을 훨씬 더 많이 먹었고, 뒤처리도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부작용이 컸다. 8살인 딸은 가끔 밥을 먹여줘야 먹는다. 

또 있다. 5살이 되니까 설거지를 하겠다는 거다. 엄마를 도와준다고. 처음에는 내버려 뒀다. 그런데 알다시피 설거지를 도와주는 게 아니다. 오히려 일거리만 더 만들어낸다. 5살 아이가 깨끗하게 씻지 못하니까 다시 꺼내서 씻어야 하고, 그릇 하나 씻을 때마다 세제와 물을 엄청 써대는 통에 그 옆에서 안절부절 지켜보았다. 마지막에는 주방 바닥이 물바다가 되어 버렸다. 그렇게 몇 번하니까 내가 힘들었다. 그래서 그다음부터 설거지를 못하게 했다.

둘째, 아이를 통해 대리만족을 하고 싶은 거다. 햄, 소시지, 고기만 먹으면 뚱뚱해지니까 야채도 먹여서 날씬하게 아이를 키우고 싶었다. 물론 아이의 건강도 생각했지만, 날씬하고 예쁘게 키우고 싶었다. 내 아이가 예쁘고 날씬하면 기분이 좋다. 엄마인 나는 날씬하고 예쁘지 못했지만, 내 아이는 날씬하고 예쁘게 키우고 싶다는 일종의 대리만족이었다.


살아오면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내 아이는 그런 시행착오를 겪지 않고 더 안전하고 좋은 길을 갈 수 있도록 미리 알려주고 싶었다. 과연 이것만 있을까? 아이를 키우면서 불쑥불쑥 올라오는 이상한 마음이 있었다. 내 자식을 내가 원하는 대로 만들고 싶은 마음. 내 자식은 내가 이루지 못했던 것을 이루었으면 하는 마음. 나는 못했지만 내 자식은 이렇게 훌륭하게 키웠다는 생색을 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어리석은 부모는 자녀를 자랑거리로 키우려고 하지만 지혜로운 부모는 자녀의 자랑거리가 되고자 노력한다” 


멋진 말이다. 이 말은 아이들을 부모의 자랑거리로 키우려고 했던 엄마가 뼈저리게 반성하며 한 말이다. 이 엄마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잘못한 일을 아이들에게 사죄하는 마음으로 책을 썼다. 책 제목도 <엄마 반성문>이다. 이 책을 쓴 이유남 교장선생님은 서울교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고 맡은 학급마다 1등으로 올려놓은 능력자였다. 이유남 선생님의 자녀는 연년생 남매로 전교 1등, 전교 임원을 휩쓸며 '부모의 자랑거리'로 자라주었다. 그러다 10년 전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는 사건이 일어났다. 고3 아들이 자퇴를 선언하고, 한 달 뒤 고2 딸마저 학교를 그만둔 것이다. 이후 남매는 집 안에 틀어박힌 채 엄마와의 대화 자체를 거부했다. 학교를 그만둔 아이들은 각자의 방에서 먹고 자고 게임하고 텔레비전을 보는 생활을 1년 반이나 했다. 엄마 입장에서는 미칠 일이다. 그러다가 딸아이가 벌인 광란의 현장과 기가 막힌 행동을 보고 큰 충격을 받은 엄마는 '이러다 저 아이가 죽으면 어떡하지? 혹시 자살이라도 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아이들을 살려봐야겠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코칭 공부를 시작했다. 코칭에서 가장 기본은 '선택'이라고 한다. 아이의 말을 지지해주고 인정해주지만, 스스로 바른 선택을 하도록 도와주는 게 코칭이다. 

솔직히 아이가 내 말대로 따라주면 기분이 좋다. 그런데 그건 어찌 보면 정말 안 좋은 거다. 자기 생각이 없다는 거니까. 자기 생각이 없는 아이가 어떻게 자기답게 행복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겠는가? 아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이루려고 시도하고, 그것을 성취했을 때 주도성이 생긴다. 이때 부모가 해야 할 일은 아이가 많은 것을 시도하도록 도와주고 실패하면 위로해주고, 다시 도전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것이라고 한다. 아이가 결과에 따라 느끼는 성공감과 실패감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아주 소중한 경험이 된다. 그런데 이런 경험은 엄마 말대로 하면 아이는 경험을 할 수 없다. 엄마 말에 그대로 따른다는 것은 그때 당시에는 좋을지 몰라도 멀리 보면 아이의 인생을 망치는 거다.


이런 말을 장황하게 늘어놓기 전에 아이가 “왜 내 마음대로 하면 안 되는데?”라는 말에 “그래? 네 말도 맞다”라고 수긍할 수 있는 넉넉한 엄마가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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