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의 20대] 0일차: 글을 써보려 한다.

20대의 마지막 겨울, 한 달간의 질문 글쓰기

by 읽쓰생정

0일차



눈 떠 보니 스물 아홉이다.


열 아홉살, 이제 진짜 성인이다 라고 좋아했던 순간이 벌써 10년도 넘게 흘렀다. 성인이라는 것이 처음 되었을 때 기대가 클수록 얻는 즐거움은 반감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술과 담배를 합법적으로 할 수 있다는 성인은 생각보다 별 것 없었고, 내 생각과 행동거지는 이전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기에 내가 기대했던 '교통사고 같은 놀라움'이 담겨 있는 재미는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 지나가는대로 살다보니, 진짜 성인을 넘어 ‘너무 성인’이 되버려 모든 것에 무료함을 느끼고 있다. 내가 꿈꿔 온 스물아홉과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스물아홉이 너무 이질적으로 느껴져 메스껍기도 하고 서럽기도 한 요즘이다.


20대 초반 내가 속으로 다짐했던 지민정의 인생 분기점은 ‘28, 스물여덟’이었다. 왜 그렇게 정했는지, 정확히 언제 정했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 또한 막연한 기대가 담겨 있었을 터인데, 정확한 이유도 모른체 상상 속의 빛나는 스물 여덟을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던 것 같다. 남들보다는 약간 늦게 사회생활을 시작하여 이리저리 부딪히며 정신없이 살다가, 이제 좀 내 마음 챙기려 잠시 멈췄더니 나도 모르게 스물 아홉이라니... 늦게서야 스물 여덟의 즐거움이 있는지 두리번 거려도 희미한 아지랑이만 보이는 것으로 보아 이번에는 기대가 정말 너무 컸나 보다.


내가 세운 내 인생의 분기점 스물 여덟 쥐도 새도 모르게 지나갔다.

어쩌면 쥐도 새도 다 알았는데 나만 몰랐던 것일 수도 있겠다.



하늘.jpg 아무도 없을 때 사무실 창에 달라붙어 찍은 사진. 지는 해를 보다 문득 내 20대가 끝났음을 알아버렸다.



스물 아홉이라니! 20대의 마지막! 아쉬움 반, 들뜸 반으로 어떻게 보낼지를 고민해 봐도 별다른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눈만 이리저리 굴려보았다. 별 의미없이 햇빛을 반사하는 먼지들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쫓아가다 보험사에서 매년 보내주는 달력 뒷면이 눈에 잡혔다.


보험사의 내년 달력 컨셉은 ‘건강한 의식주’ 였는데, 가장 첫면인 올 해 12월 달력 뒷면은 뜬금없이 ‘나와 대화하는 즐거움’ 이라는 주제로 짧은 에세이가 적혀 있었다. 달력의 1/6 정도의 면적 밖에 차지하지 않는 조그마한 글은 거리에 나뒹구는 홍보 판촉물들과 별반 다를게 없었다. 뭔가 지적이다 싶은 문구는 다 때려 박아 놓았는데, 많이 본 단어들이라 그런지 술술 읽혔다. 요즘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 편지를 쓰는 것이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할 것도 없고, 나도 유행을 체험하기 위해 핸드폰으로 '나를 위한 글쓰기'를 검색했다. 각종 블로그들은 스스로에게 하는 질문 10개, 20개, 7개 등을 추천해 주었다. 나의 의지가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는 내가 가장 잘 알기에 이내 검색어에 수업, 강의를 추가했다. 역시 유행이라 그런지 멘토 역할을 해준다는 프로그램은 역시나 있었다. 검색 결과 창에는 글쓰기를 통해 ‘진짜 나’를 찾을 수 있게 도와준다는 전문가들이 환하게 웃으며 쌓여 있었다. 쌓여 있다는 표현이 부정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정말 많았다.


'나를 찾아가는 글쓰기!'

'진정한 자아를 위한 글쓰기!'


글쓰기를 통해 스스로를 아주 잘 안다는 이들을 보며 소크라테스가 함께 있으면 무척이나 좋아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사이트를 둘러 보다, 이 레드오션으로 뛰어든지 별로 안된 것 같은 사람을 선택했다. 베테랑이라는 사람들은 유행특수를 맞아 내가 쓴 글을 자세히 보지도 않을 것 같다는 이유가 첫번째요, 질문을 주되 답변 내용을 참고하여 그 다음 질문을 준비하겠다는 커리큘럼과 한 달이라는 짧은 기간이 또 다른 이유다.


돈을 입금하니, 나를 찾기 위한 질문이 평일 매일 새벽 6시에 이메일로 배송될 것이라는 안내 메일과 문자가 왔다. 커리큘럼에서 봤던 대로 하루하루 질문에 대한 답변을 보고 그 다음날 질문을 주겠다는 말도 적혀 있었다. 얼굴 한 번 본적 없는 사람이지만, 누군가 내 글을 읽고 질문을 준다고 하니 괜히 긴장되고 기대된다.



무슨 바람인지는 몰라도 내가 요즘 참 무료한가 보다.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