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 나라 친구들과 함께하는 무료 ELD프로그램
3학년 1학기만 마치고 왔는데 4학년으로 입학하라고요?
쿠퍼티노 교육청은 아이들의 생년월일에 맞춰 학년을 정한다. 즉, 태어난 해가 같아도 지정한 날짜를 기준으로 학년이 올라가거나 낮아질 수 있다. 결국 아이는 3학년 2학기인 6개월을 건너뛰고 4학년 1학기부터 시작하게 됐다.
미국에 도착한 다음 날, 시차적응이 안 된 부스스한 모습으로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쿠퍼티노 교육청(Cupertino District)이다.
우리가 미국행을 서두른 이유도 8월 말에 시작되는 쥬쥬(아이의 닉네임)의 초등학교 입학 일정에 맞추기 위해서였다.
쿠퍼티노 초등 교육 시스템은 유치원(Kindergarten)부터 5학년까지 총 6개 학년(K to 5)이다. 유치원이 초등학교 필수 교과 과정에 포함되어 있고, 5학년을 마치면 6학년부터 중학교(6-8), 9학년부터 고등학교(9-12)다.
교육청에 도착하자마자 "Registration"이라고 쓰인 푯말을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나이가 지긋한 선생님 두 분이 근엄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한국에서 방금 이사 왔다고 설명하고, “신입생 등록 방법을 알고 싶다”라고 하자 일단 데스크 위에 있는 차트에 이름과 주소를 적으란다.
공립학교는 주소지에 따라 학교가 배정되기 때문에 현재 거주하는 주소가 아주 중요하다. 특히 학군이 좋은 곳일수록 학생수가 정원을 초과하는 경우가 많아 등록을 서둘러야 제 학군을 받을 수 있다.
선생님 중 한 분이 번호가 찍힌 꽤 두툼한 종이 파일을 하나 건네주며, 등록일에 맞춰 파일 내 입학원서를 작성해 첨부서류와 함께 제출하라고 안내한다..
우리는 쥬쥬가 이곳 시스템에 천천히 적응하길 원했기 때문에 가능한 원래 학년 그대로 3학년부터 다녔으면 했다. 하지만 교육청의 입장은 단호했다. 이곳 기준 나이에 맞춰 해당 학년으로 입학해야 한다는 것.
까다로운 입학서류
기다리던 학교 등록일. 첫날 접수 장소에는 다양한 인종의 학부모와 아이들이 줄을 서 있었다. 첫날은 몹시 붐빌 것이라고 했으나 줄 서서 대기하는 시간이 앞에 4-5명 정도 있는 정도였다.
필요 서류는 아이 및 부모의 인적사항, 아이의 성향 등을 기록하는 입학원서와 아이의 출생증명서, 부모의 재정능력 및 미국에서의 신분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 - 아파트 렌트 계약서(proof of residence), 한 달 이내 PG&E Bill(부모의 이름이 인쇄된 전기수도고지서), 미국 운전면허증 -등이다.
왜 yellow card가 없나요?
갈색 긴 머리의 40대 중반 멕시칸 여성이 깐깐하게 서류를 훑어보더니 물었다. 모든 서류를 완벽히 준비했다고 생각했는데 갑작스러운 그녀의 질문에 순간 무척 당황했다. 서류가 미비해 아이 학교 등록을 못할까 하는 우려에서였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그게 뭐냐고 다시 물으니 '예방접종기록 카드'란다.
“아하! 예방접종기록을 옐로카드라 부르는구나?”
다행히 출국 전 아이가 다니던 소아과를 방문해 영문예방접종기록을 떼어왔다. 이 기록이 없었으면 태어나서 받은 모든 예방 접종을 다시 맞을 뻔했다. 우리는 지난주 한국에서 가져온 서류를 들고 쿠퍼티노에 위치한 현지 한인소아과 의사를 만나 예방접종 기록을 재차 확인받고, 간단한 신체검사와 결핵반응주사를 맞은 후캘리포니아 공인 예방접종카드, 즉 ‘옐로카드’를 받아두었다.
아직 도착 안 한 서류들은 첫 등교일에 아이 편에 보내기로 하고 초등학교 입학을 위한 서류 전형을 'PASS'한다.
영어 레벨테스트 깨기
다음 관문은 아이의 영어 레벨테스트!
처음 실리콘밸리에 이주해 온 사람들이 이곳 쿠퍼티노 지역을 선호하는 이유 중 하나는 학교에서 무료로 체계적인 ELD(English Language Development)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은 각자 다른 모국어를 사용하던 아이들에게 영어가 자연스럽게 흡수되도록 디자인된 이 지역의 특수 교육과정이다. 입학 서류 중 아이가 집에서 쓰는 언어와 모국어가 무엇인지 기재하는 란이 있는데 이곳에 모두 "Korean"이라고 적었으면 무조건 ELD 테스트를 응시해야 한다.
ELD 반으로 배정될 경우, 영어는 물론 해당 학년의 정규 교육 과정도 함께 이수하도록 되어있어 학교 수업만 충실히 참여하면 별도의 사교육 없이도 영어와 학업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이 교육청 해석이다. 타 지역에 비해 아파트 렌트비가 다소 높은 이유가 이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담당자는 "아이의 영어실력이 현지인 정도로 fluent 하지 않은 이상은 어차피 ELD 반으로 배정되니 부담 없이 응시하면 된다"라고 설명했다.
예약 시간에 맞춰 테스트장에 도착해 보니 이미 몇몇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대기 중이다. 얼굴이 검은 편인 여자 선생님이 쥬쥬와 인도계열로 보이는 남자아이를 데리고 4, 5학년을 위한 고학년 테스트 장소로 이동했다.
"부모님은 걱정하지 말고 집으로 돌아가셨다가 2시간 후에 다시 오세요."
진행하는 선생님이 미소를 띠며 부모들을 안심시킨다.
일주일 후, 쥬쥬는 예상한 대로 집과 가까운 ELD 코스가 있는 초등학교로 배정됐다. 쥬쥬가 속한 반은 4학년과 5학년의 콤보 클래스로 앞으로 2년간 같은 담임 선생님과 공부하게 된다.
ELD반 학생은 매년 영어 테스트를 다시 실시해 정규 클래스에 편입되어 정상적인 수업을 할 수 있는지를 확인받아야 한다.
"쥬쥬는 똑똑하니까 ELD에서 조금만 노력하면 곧 일반 클래스로 옮길 수 있을 거야. 일부러 영어학원도 다니는데 얼마나 좋아. 엄마랑 같이 열심히 해보자!"
한국에서 못해 준 엄마 역할을 이곳에서는 원 없이 해줘야겠다고 결심한다.
자... 이것으로 학교 입학 등록과정은 모두 마무리 됐다. 이제 학교 시작일에 맞춰 쥬쥬를 등교시키만 하면 된다.
첫 등교 - First Day of School
드디어 첫 등교일이 밝았다. 쥬쥬는 무척 흥분된 모습이다.
첫 등교일을 앞두고 아이를 위한 준비물을 하나씩 준비했다. 미리 집으로 우송된 "첫 등교일에 필요한 준비물 리스트"는 연필, 지우개로 시작해 자, 인덱스카드, 계산기 등등 꽤나 다양하고 종류도 많았다. 집 근처에 있는 대형 쇼핑몰인 '타겟 Target'-우리나라 이마트 같은 곳-을 수시로 드나들어야 했다.
아침 일찍 옷을 깔끔히 입고, 필요한 준비물들을 모두 챙겨 책가방에 넣은 후, 등교 시간에 맞춰 학교로 향한다. 학교까지는 차량으로 10분 거리.
이미 다양한 인종의 또래 아이들이 여럿 도착해 운동장에 모여있다. 우리를 포함해 아이들을 라이드 하기 위해 함께 온 부모들도 아이들의 첫 등교를 지켜보며 왁자지껄 하다. 쥬쥬 반에는 중국, 일본, 독일, 인도, 멕시코, 아프가니스탄, 이란 등 유독 다양한 국적의 아이들이 많이 있다.
8시 "학교종"이 울리자 각 반의 담임선생님들이 운동장으로 다 같이 모이더니 반별로 아이들을 정렬한다. 이어 각 반 선생님들이 맡은 학생들을 직접 인솔해 교실을 향해 간다.
이곳에선 몇 학년 몇 반이 아니라 교실 번호와 선생님 이름으로 클래스를 부른다. 이를테면 ‘Room 15, Mrs. P 클래스’와 같은 식이다. 또한 선생님이 교실 문을 열어줄 때까지 아이들은 교실 밖에서 기다려야 한다. 등교시간보다 일찍 학교에 도착하더라도 교실에 입실은 불가다. 혹시라도 아이들끼리 교실에 머물 때 생길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것 같다.
나이가 지긋한 싱가포르 출신 여선생님이 쥬쥬의 담임이다. Mrs.P라고 했다. 라스트네임이 복잡해 간단히 P로 부른다고... Mrs.P는 활짝 웃는 얼굴로 아이들 이름을 한 명씩 호명한다.
"쥬쥬!"
"알리!"
"린타로!"
....
앞으로 나선 아이들에게 Mrs.P는 이름표를 하나씩 나눠주며 일일이 눈을 맞추고 '하이파이브'를 청한다.
Welcome, everyone! I'm so excited to have each and every one of you in our class this year!
선생님의 얼굴에는 잔잔한 미소와 함께 새로운 학기를 새로운 아이들과 시작하는데 대한 기쁨과 기대감이 묻어있었다.
아이들이 하나둘씩 교실 안으로 들어가고 Mrs.P는 밖에서 지켜보는 부모들은 아랑곳없이 교실문을 굳게 닫아버린다. 이제부터 아이들은 학교에 맡기라는 듯이... 담임 선생님과의 면담은 학기가 시작된 후 별도의 세션인 "백투스쿨나잇(back to school night)"을 이용한다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다.
우리 아이 쥬쥬는 이렇게 무사히 실리콘밸리 초등학교에 첫 발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