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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의 난 그때의 최선을 다했다는 것.

by 라텔씨

돌아보면 후회로 물든 무수한 선택들이 모여서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너무 쉽게 포기했던 그때의 꿈들,
서툰 멘트로 했던 고백과 사소했던 이유의 이별들,
나중에 다시 할 수 있을 거라고 미뤘던 도전들,
그 조각들이 모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

후회란 지난날의 평가는 아니다.
그때를 기억하는 하나의 방법이기도 하다.
20년 전의 판단은 20년 전의 정보,
20년 전의 내 가치관, 20년 전의 주변 사람들 속에서 내려졌다.
10년 전도 그랬고, 어제도 그랬다.

오늘의 내가 더 멀리 볼 수 있다고 해서
어제의 나를 멍청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때는 그때의 내 안에서 나올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가끔 상상해 본다.
시간을 거슬러 돌아가면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을지.

고등학교로 돌아가서
미술 선생님이 미대에 지원하자고 할 때,
'미술 하려면 돈 많이 들잖아요. 저희 집 가난해서 안돼요.'라는 말 대신,
'저희 집이 좀 어려운데, 갈 수 있는 방법 없을까요?'라고 물어봤다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박봉의 건축 설계 회사에서도
열심히 해서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방법들이 있는지
더 적극적으로 알아볼 수 있었다면,
돈 때문에 꿈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지금은 '그때 왜 그랬을까?'라고 의문을 가질 수도 있지만,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니었다.
지금의 나에겐 그때의 내가 했던 행동들의 결과라는
경험과 자료가 있다.

그날의 나는 알지 못했고,
내가 아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했다.
'아는 만큼' 물었고, '아는 만큼' 살았다.




과거를 돌아보며, 후회로 남은 선택들을 회상하며
나는 배웠다.

후회는 지우고 싶은 낙서가 아니라,
지금의 나에게 던져야 하는 질문을 다양하게 만들어준 재료였다.
실패를 기록해 패턴을 보고,
'안 된다'는 결론보다 '실패했을 때 감당 가능한가'를 묻는다.
과거의 선택들이 지금의 내 생각을 조각했다.

그때로 다시 돌아가 선택의 순간에 놓인대도,
아마 난 또다시 그때의 나와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냉정하게 그때의 나를 판단했을 때,
매우 신중하게, 오랫동안 고민을 한 후 내린 결정이었으니까.



결국 후회는 그때의 나를 낮추는 행위가 아니다.
지금 내가 더 성장했다는 증거다.

그날의 나는 모르는 채로 최선을 다했고,
오늘의 나는 그 최선을 자료로 삼아 다시 앞으로 나아간다.

과거를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이
우리를 무력하게 만들 때도 있지만,
우리는 과거를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그때의 나를 존중하고, 위로해 주면 그만이다.





>> 한 줄 코멘트. 그때의 나에게 한마디 할 수 있다면, '고생했다. 네가 남겨둔 흔적 덕분에, 이제라도 나는 오늘 좀 더 나은 선택을 하게 되었다. 고맙다.'라고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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