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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허무라면, 사랑은 그 허무를 기억으로 바꾸는 힘

by 라텔씨

나의 방황의 시간을 잡아주는 두 사람이 있다.


한 명은 명절 때밖에 보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항상 웃는 모습으로만 기억되는 분이다.


바로 큰아버지.


큰아버지께서는 아버지보다 18살이나 많으셔서

일찍 돌아가신 할아버지보다 좀 젊은 할아버지로 느껴졌다.

실제로는 조카인 나를 손주 대하듯이 아주 예뻐하셨다.


명절이면 항상 미소를 지으시며 이야기를 해주시는

큰아버지 무릎 위에 앉아 있었다.


그때 그 무릎의 포근함이 아직도 생생하다.




또 다른 사람은 나보다 10살이 어린 사촌 동생이다.


동생은 어릴 때 어떤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몸은 커도 의식은 어린아이에 머물게 되었다.

어릴 때 나를 잘 따랐던 아이여서 그럴까,

나를 보면 항상 웃어줬다.


일반 사람들과는 다른 그 어색한 웃음이 부담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그건 천사의 미소였다.

순수함밖에 남아있지 않은 미소.


그런 그들이 떠나간 지 10년이 지났다.



930fdf4b8d7396b95f87025d27690690.jpg?type=w1 낙엽이 떨어졌다고 허무하지 않듯이.



나에겐 강인하고 따뜻했던 큰아버지께서

죽음 앞에 마음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서,


10살이나 어린 사촌 동생이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살다가

하얀 얼굴로 누워있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물었다.


그들의 꺼져가는 빛을 목도하며

인생은 무엇일까 물었다.


왜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걸까 물었다.


두려워해야 하는 게 맞을까.



아버지께서는 가족, 지인들의 죽음 앞에

항상 이런 말씀을 하신다.


'인생 참 허무하다.'


과연 허무한가.


죽음의 순간에서는 그동안의 인생이 아무것도 아닌 게 되는 것인가?

그럴 리 없다.


오늘이 되었다고,

어제까지의 내 삶이 허무한 건 아니니까.

지나온 모든 하루는 여전히 오늘 숨 쉬고 있다.


큰아버지의 웃음도, 사촌 동생의 미소도

시간이 흘렀다고 사라진 게 아니다.

그들의 따뜻함은 여전히 나를 지탱해 준다.

내가 방황하는 시간이면 언제나 나타나 내 등을 떠밀어준다.


그들은 떠났지만, 여전히 내 삶을 이끌고 있다.

그들의 미소와 온기는 더 이상 보이지 않지만

내 안의 시간들을 이끌어 간다.

죽음이 허무라면, 사랑은 그 허무를 기억으로 바꾸는 힘이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그 기억 속에서,

조용히 살아 있는 이들에 기억되며 산다.






>> 한 줄 코멘트. 그들의 죽음을 통해 죽음이 더 이상 두렵지 않게 되었고, 죽음이 두렵지 않은 사람에게 실패는 더더욱 두렵지 않다. 이것이 그들이 나를 방황에서 꺼내주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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