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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텔c Nov 07. 2024

[사색의 서, 30] Falling(망함)

비워야 채울 수 있다.

"내버려둬도 자연은 춘하추동이 계속 반복됩니다.

봄을 보내야 여름이 오고 여름을 보내야 가을이 옵니다.

그런데 사람은 어떻게 하나요?

봄을 붙잡고 왜 여름이 안 오냐고 막무가내를 부리는 꼴 아닌가요?

비워야 새로운 것이 생깁니다.

이걸 깨달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번 망해봐야 합니다."


_<노자 마케팅>, 이용찬




이 시대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창의성을 요구한다.

남들과 다르게, 다른 사람은 해본 적 없는 시도, 독창적인 것을 만들라고 한다. 문제는 남들과 다르게 한다고 창조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단순히 기존의 것을 바꾸기만 하면 변조에 머물 확률이 높다. 기존의 것으로부터 시작한 생각은 막히기 쉽다. 기존의 틀 얽매여서는 뭔가를 더하거나 뺀다 한들 창조의 영역에 다가가긴 어렵다.


2~30대 여성을 위한 옷 브랜드가 있다고 가정하자. 의류 시장에 너무나 많은 2~30대 여성을 위한 옷 브랜드가 있다. 넘쳐나는 비슷한 브랜드와 차별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커플을 위해 남성 사이즈를 추가해서 만들어보거나, 모녀를 동시에 공략하기 위해 5~60대를 위한 스타일도 접목시켜 볼까? 옷에 어울릴만한 악세사리들을 같이 추천하는 형태로 확장해 보는 건 어떨까.


다른 브랜드들이 하지 않는 것을 시도하는 차별화 시도지만 본질적으로 큰 변화는 없다. 정말로 혁신을 해야 하는 단계에 있다면 기존의 것을 기준으로 변화를 도모하는 건 한계가 있다. 그래서 이런 브랜드는 차별화되기 어렵다. 다른 브랜드와 다르다며 홍보하지만 결국 마케팅에 돈을 쏟아부어야 유지되는 브랜드일 뿐이다. 최대한 많은 고객들에게 노출이 되고, 유명 연예인들을 모델로 쓰는 전략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기존의 생각을 버리지 않으면 새로운 생각이 나오지 않는다.

타깃을 바꿔보자. '2~30대 여성'에서 '2~30대'를 빼고, '여성'이라는 타깃도 빼자. 연령과 성별이라는 카테고리를 빼자. 새로운 타깃을 생각해 보자. '환경오염을 싫어하는 사람',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을 좋아하는 사람', '스타일보다 실용성을 우선하는 사람'


기존의 브랜드 색깔과 전혀 다른 색깔을 입혀본다. 기존의 색깔은 모두 무시해도 좋을 단어들이다.

'봄을 보내야 여름이 오고, 여름을 보내야 가을이 옵니다.'라는 말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 모두 계절이라는 단어에 속해있지만, 각기 다른 계절이다. 서로 연결된 흐름 속에 있지만 봄은 봄이고, 가을은 가을이다. 봄에 단풍놀이를 갈 수 없으며, 가을에 새싹 구경을 할 수 없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다. 기존에 살아왔던 방식을 비워내지 못한 상태에서 하는 도전들은 결코 새로울 수 없다. '이대로 살 수는 없어.'라고 말하며 변화를 주고 도전하지만, 이대로 살 수 없는 정도에서 조금 나아지는 수준에 그칠 뿐이다.


내 삶에 진정한 변화를 주기 위해서는 망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대로 망할 수 없다고 마지막 희망을 붙잡고 몇 년 더 버틴다고 해서 그 희망이 나를 구원하지는 못 할 것이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곧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라고 한다."

_<데미안>


"가장 무서운 지옥은 견딜 만한 지옥일 것이다. 빠져나올 생각을 안 할 테니까..."

_<일단 오늘은 나한테 잘합시다>


다가오는 겨울이 두려운가? 가을을 보내준 마음으로 겨울을 맞이해야, 다시 새 삶이 돋는 봄을 맞이할 수 있다. 비워야 할 것을 비우지 않고, 보내야 할 것을 보내지 않는 건 계속해서 '견딜만한 지옥'에 머물겠다는 것이다.


이걸 깨달으려면, 한번 망해봐야 한다. 나를 버려봐야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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