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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5, 그녀와의 행복했던 1년.

호주의 아름다움을 알게 해 준 '리나'

by 라텔씨

"내년에 갈 거 같아요."


호주 워킹홀리데이 10개월 차, 나는 농장 생활을 하고 있었다. 한국에 있는 그녀와의 마지막 통화에서 그녀의 한마디에 호주 워홀을 1년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그녀와의 통화 때문만은 아니었다. 시드니에서 그녀를 기다리는 동안 모든 초점은 '기다리는 것'에 맞춰져 있었다. 기다리는 것에 충실하기만 했다. 기다리기 위해 시드니에 머물고, 시드니에 머물기 위해 생활비가 필요했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했다. 애초에 영어공부가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공부를 열심히 하지도 않았다. 셰어하우스의 외국인 친구나 일할 때 사용하는 생활 영어가 조금 늘었을 뿐이었다.


계약연애였을 뿐이라던 그녀(1화 참고)와 6개월 만의 통화에서 당황하거나 거짓말을 할 때 나오는 그녀의 존댓말을 듣고 아차 싶었다. 만약.. 그녀가 호주에 오지 않는다면?


'이대로면 내 첫 해외 생활은 아무것도 얻는 게 없이 망한다.'


'사랑을 위해 잠시 이별하는 것일 뿐'이라던 나의 다짐은 점점 방향을 잃어갔다. 그녀는 호주에 올지 안 올지 알 수 없었고, 나에게 남은 워홀 기간은 6개월. 영어 공부는 거의 하지 않았고, 돈은 한 달 생활비 정도만 남아있었다. 이 돈으로는 남은 기간 여행은커녕, 남은 기간 내내 아르바이트를 해야 할 것이다. 사랑도, 영어 실력도, 돈도, 이 중 어떤 하나도 얻지 못하고 끝나버릴 게 분명했다.


호주행 비행기를 함께 탔던 일행 3명과 함께 400만 원을 모았다. 300만 원으로 주행거리 30만 km, 15년 된 중고차를 샀다.


Nissan-Serena-C23M.jpg


'닛싼'사의 'Serena'라는 봉고차였다. 호주는 계절의 변화가 크지 않아서 조금만 관리 잘하면 20년도 타고, 30만 km도 우습게 탄다고 했다. 실제로도 그랬다. (이 차를 1년 동안 타고 다니면서 말썽 부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렇게 지도 한 장 들고, 호주의 북쪽으로 떠났다. 지금 계절에는 이 지역에 일자리가 있다는 인터넷 정보만으로 무작정 출발했다. 목적지는 시드니에서 북쪽으로 1,000km.


일행 4명 중 운전이 가능한 사람은 중국인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떠나는 그(2화 참고)와 나, 둘 뿐이었다. 둘이 번갈아가면서 운전하면 목적지까지 이틀이면 도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는 길에 대한 어떤 정보도 없었다. 밤이 깊어지면 아무 데나 주차하고 차에서 자면 될 일이었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니, 중간중간 'National Park'라는 표지가 많이 보였다. 우리나라로 치면 '졸음 쉼터'의 공원 개념이었다. 차로 들어갈 수도 있고, 캠핑도 가능했다. 둘이 번갈아가며 운전을 해서 700km를 단번에 달려왔다. 목적지까지는 3~4시간 남은 거리. 밤이 깊어 더 이상 운전하기 힘들어졌을 때, 가까운 '내셔널 파크'에 들어갔다. 입구 어딘가에 차를 세우고, 곯아떨어졌다. 아무리 피곤했다지만 운전석 의자에서 불편하게 자는 건 힘들었다. 새벽빛이 어스름하게 나타나자 금방 눈이 떠졌다. 피곤한 것도 잠시, 눈앞의 광경에 일행들을 깨웠다.



우리 차 '세리나' 앞에서 캥거루 두 마리가 격투를 벌이고 있었다. 고요한 공원 안에 여러 야생동물들이 자유롭게 뛰놀고 있었다.


'아.. 이게 호주구나.'


하마터면 호주의 아름다움을 전혀 경험하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갈 뻔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드니로부터 우리를 7~800km 떨어진 곳에 데려다준 하늘색 봉고차 'Serena'가 고마웠다. 성인 4명이 비좁지만 함께 차박을 할 수 있었던 것도, 하루에 7~800km를 달려도 멀쩡한 것도 모두 고마웠다. 이 차가 아니었으면 공원에서 차박을 할 수도 없었을 거고, 캥거루들이 격투기 하면서 노는 모습을 볼 수도 없었을 테니.


"이제부터 얘 이름은 '리나'야."


일행들은 모두 봉고차를 '리나'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성인 4명에 짐도 가득 싣고 오르막길을 오르며 힘겨워할 때면, '리나야 힘내. 넌 할 수 있어.'라며 응원했다. 아침마다 엔진오일이 잘 있는지 체크하면서 '오늘도 잘 부탁해.'라며 인사했다. 1년 후 혼자 '리나'를 타고 1,200km를 운전해야 할 때는, 이해하지 못하는 라디오를 듣기보다 '리나'와 대화를 했다.


'리나'는 우리와 3개월, 나와는 1년을 함께 했다. 농장에서 일자리를 구하며 돌아다니고, 포도를 따고, 사과를 따고, 딸기 모종 분류 농장에서 일을 할 때 함께 했다. 2시간 거리 도시의 카지노에서 일주일 치 일당을 탕진할 때도 함께 했고, 200km 떨어진 '브리즈번'까지 가서 부대찌개에 소주를 마실 때도 함께였다.


농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리나'를 많이 부러워했다. 여차하면 공원에서 차박을 할 수도 있고, 여러 사람이 함께 타고 다닐 수도 있었다. 계절마다 농장을 돌아다니면 길에서 사람들이 나를 알아봤다. 내가 타고 다니는 '리나'를 알아봤다. 특유의 빛바랜 하늘색과 망가진 에어컨 때문에 언제나 창문이 열려있는 '리나'.


그렇게 우리는 1년의 시간을 함께 했다. 리나와 헤어질 시간이 다가왔다. 한국으로 돌아갈 시간. 이제 '리나' 그녀를 다른 이에게 보내줘야 할 시간이었다. 리나를 보낸다는 공고를 지역 마트 게시판에 붙인 지 하루 만에 한 사람에게서 연락이 왔다. 평소에 내가 리나를 타고 다니는 걸 봤던 그는 바로 리나를 데려가겠다고 했다. 혼자 다니면서 '차박'을 하고, 농장도 다니고 여행을 하겠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간단히 동네 한 바퀴 돌아보고 엔진오일만 체크했다. 내가 그동안 타고 다니던 모습이 그녀의 상태와 역량을 증명했다.


1년 동안 온갖 길을 달리며, 농장의 흙먼지와 비를 맞으며 함께 했던 '리나'


"잘 가, 리나."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도 모른 채 혼잣말을 내뱉었다. 그녀가 떠났다. 새로운 친구와 좋은 여생을 보내며 40만 km, 50만 km도 넘게 무병장수하기를 바랐다. 내 시야에서 사라졌지만 알 수 있었다. 호주 어딘가에서 여전히 길 위를 달릴 '리나'의 모습이. 그리고 언젠가 나처럼, 또 다른 누군가의 여행을 함께 할 것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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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농장의 마트에서 우연히 리나의 '새 친구'를 마주쳤다.

"아직 안 떠났어요? 바로 떠난다면서요."

"출발하는데.. 퍼졌어요. 제가 디젤(경유)을 넣었어요.."

"리나는 가솔린(휘발유)만 먹는데....."

"저.. 혹시 환불 안될까요?"

"네?"


그렇게 리나는 하늘나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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