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만 보고 달리던 엄마, 동료가 떠나 외로운 엄마도 사람이었다
(2009년 시점에서 쓰인 글입니다.)
마주치기 싫었다. 지쳐있는 모습을 보는 것도 싫었다. 그런 모든 게 취직을 못하고 있는 나에게는 다 부담으로 느껴졌으니까. 같은 이유로, 내가 학교에 갈 때 자꾸 태워다 주겠다던 것도 싫었다. 누군가가 태워주는 차를 타고 어딘가로 이동한다는 것 자체는 참 편하고 좋은 일이다. 왜냐? 구두 신고 지하철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지 않아도 되고, 버스를 기다리지 않아도 되니까.
하지만 둘이 탄 차 안에 흐르는 기류가 불편해서 같이 차를 타고 싶지 않았다. 사람이 항상 좋은 이야기만 듣고 살 수는 없겠지만 엄마는 이렇게 단 둘이 있는 기회를 이용해 나에게 쓴소리를 해댔다. 예전에는 동아리 활동을 그만하라던지 공무원 준비를 하는 건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주로 했었다. 지금 나는 대학교 4학년 2학기 재학 중으로 마지막 학기였고 곧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직접적으로 취업에 관련된 이야기로 내 마음을 콕콕 쏘아댔다.
사실 이번 학기에 달랑 교양수업 두 개만 듣는 데다가 한 과목은 교수님 사정상 다다음주에 시험을 보기로 해서 시간 여유도 있는 편이었다. 그래서 저녁을 먹으러 나가자는 엄마의 말에 오랜만에 순순히 따라나섰다. 나도 지금 다른 친구들처럼 학점을 꽉꽉 채워 수강했다면 이런 여유는 결코 없었을 것이다.
엄마는 업무 특성상 월 초반에는 정신이 없다. 그래서 엄마한테 받아야 할 돈이 있다던가 긴히 상담을 해야 한다던가 이런 건 월 초반에는 피하는 게 좋다. 엄마는 바쁜 월 초반을 지나고 이제야 조금 시간 여유가 났는데 입맛도 없고 해서 나가서 밥을 먹고 싶다고 했다. 전에 갔던 쌈밥집을 찾아가보았지만 오리고깃집으로 바뀌었기에 식당이 밀집해 있는 다른 상가로 다시 가보았다. 뭘 먹을까, 하다가 보쌈집에 들어갔다. 손님이 별로 없었지만 우리가 다 먹고 나올 때쯤에는 모든 테이블이 꽉 차 있었다.
엄마는 요즘 일도 힘들고, 밥 맛도 없고, 손등은 일하다가 어디에 찍혔지만 괜찮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간지럽길래 '이제 나으려나보다'싶어서 벅벅 긁어댔다가 세균이 들어갔는지 더 아프기만 하다고 했다. 예전에는 돈 모으는 재미로 일 다녔는데 이제는 그것도 별로 흥미가 안 생긴다고 했다. 마음도 어느 정도 맞고 돈에 욕심도 많고 해서 그만둘 줄은 몰랐던 좀 친했던 동료가 저번달부로 그만둬서 같이 밥 먹을 사람도 없고, 얘기 나눌 사람도 없고 그래서 좀 쓸쓸하다고 운을 뗐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도 결국 나오는 건 그분 이야기다. 일에 완벽하고 깐깐하고 차가워 보이는 성격이라 그런가 싶은데 알고 보면 우리 엄마는 참 따뜻한 사람인데 말이지. 엄마가 다니는 곳은 기혼 여성들이 많은 직장이라 그런지 뒤에서 엄마에 대해 수군거리고 따돌림시켜서 힘든 시기가 있었다. 그나마 그분이랑 잘 맞고 또 그분이 엄마보다 나이도 어리고 해서 동생처럼 엄마를 잘 따르기도 하고 해서 잘 지냈다고. 둘 중에 누군가 그만둔다고 했을 때 나이도 더 먹고 더 오래 일한 엄마는 당신이 먼저 그만 둘 줄 알았다고 했다. 자녀가 셋에다 아직 학생인 애도 있어서 돈 들어갈 곳도 많은 그분이 이렇게 급작스럽게 그만 둘 줄은 몰랐다고 했다.
그동안 먹고 사느라 바빠서 친구들은 만나지도 않던 엄마였다. 요새 들어서 아주 가끔이긴 해도 고등학교 동창회도 나가고 친구네 집에도 놀러 가곤 하는 엄마를 보면서 앞만 보고 달리던 엄마도 이제는 조금 멈추고 싶어 졌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엄마의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엄마도 그냥 외로웠나 보다. 나는 오늘도 밥을 먹으러 나가면서 '또 취업해라 어쩌고 저쩌고 잔소리하겠구먼? 짜증나'라고 아직 벌어지지도 않은 일에 엄마를 탓하며 따라나섰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엄마는 오늘 저녁 자리에서 취업에 관한 이야기를 단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뭐 모르지, 내일 아침에 눈 뜨고 일어나자마자 말할지도. 어쨌든 보쌈과 영양 돌솥밥과 누룽지를 다 먹은 엄마의 얼굴은 조금 피어 있었다. 웃는 모습이 조금 더 자연스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