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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니seny Feb 05. 2022

2021년의 등산을 마치며

등산 입문자분들, 2021년은 어떠셨나요?

     나는 2020년부터 본격적인 등산을 시작했다. 시작은 집 앞에 있는 300m 정도의 높이가 되는 낮은 산만 올라다니다가 2021년 들어서는 조금씩 반경을 넓혀 서울 시내에 있는 비슷한 높이의 산을 올라 다녔다. 그렇기에 높고 험준한 산을 다니는 사람들에게 낮은 산만 골라 다니는 나의 등산 일기는 시시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등산에 관심도 없었을뿐더러 등산을 싫어했던 내가 등산을 시작하게 되고 취미를 붙였다는 것 자체가 큰 이변이기에 이것은 큰 사건이다. 등산을 시작하면서 적은 글(https://brunch.co.kr/@lifewanderer/60) 이후 2021년에 본격적으로 등산을 하며 느낀 점에 대해 적어볼까 한다.






     2020년 가을에 산행을 시작했고 겨울엔 쉬었다. 그리고 2021년 봄엔 집 앞의 산만 여러 번 오르다가 여름이 되어버렸다. 여름이라는 계절 특성상 낮에는 너무 더워서 새벽이나 오전 일찍 등산을 해야 하는데 매번 늦게 일어나서 여름은 등산을 쉬게 되었다.


     드디어, 등산하기 좋은 계절인 가을이 왔다. 이제 집 앞산 등산으로 기초를 다졌으니 서울 시내와 근교의 낮은 산들을 하나씩 정복해보기로 한다. 다음은 2021년 가을에 다녀온 산들이다.


날씨가 너무나 멋졌던, 9월의 추석 연휴에 @ 하남 검단산


하남 검단산

구룡산 & 대모산 (구룡산 정상 찍고 -> 대모산 정상 찍고 -> 수서역 쪽으로 하산)

용마산 & 아차산 (용마산역 -> 용마폭포공원 -> 둘레길 따라 용마산 정상 -> 둘레길 따라 아차산 정상 -> 해돋이 광장 -> 생태공원 -> 광나루역)

안산 & 인왕산 (독립문역 -> 봉수대 -> 안산 정상 -> 하늘다리 건너서 인왕산 진입 -> 인왕정 -> 성곽길 -> 범바위 -> 정상 -> 성곽길 따라 하산 -> 수성동 계곡 -> 통인시장 -> 경복궁역)

김포 문수산 (1코스 선택. 강변 쪽으로 걸어서 문수산성 따라 정상 -> 삼거리 -> 산 안쪽 길로 하산)

청계산(옥녀봉)

강화도 마니산 (함허동천 야영장 주차장 -> 야영장 -> 계곡로 -> 바다가 보이는 바위 능선길 -> 정상 -> 단군로로 하산)

불암산 (불암사 -> 석천암 -> 정상 -> 석천암 -> 불암사)

북악산 (와룡공원 -> 말바위 -> 숙정문 -> 청운대 -> 1.21 소나무 -> 정상(백악마루) -> 창의문 쪽으로 하산 -> 윤동주 문학관 -> 청운효자동 -> 경복궁역)



     등산을 하며 좋은 점 첫 번째는 뱃살이 처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30대 중반이 되면서 똑같이 먹어도 금방 살이 붙는다. 게다가 코로나를 핑계로 기존에 하던 운동인 수영을 하지 못하니 몸무게가 불어나기 시작했다. 등산을 한다고 살이 빠지진 않았지만 적어도 더 이상 뱃살이 처지지 않고 배에 딱 붙어있다.


     등산을 하며 좋은 점 두 번째는 산을 오를 때만큼은 잡생각을 할 수 없으니 문자 그대로 '현재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산에서는 다른 생각하거나 한눈팔다가 발을 헛디디는 순간 다치기 십상이다. 그래서 진짜 그 순간순간에 집중해야 한다. 우리가 말로는 잘하는, 왜 지금 현재에 집중해야 살아야 한다는 말이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등산할 때만큼은 진짜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등산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강제로나마 현재에 집중하게 된다.


     등산의 좋은 점 세 번째는 올라갈 길을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흔히 등산을 인생에 비유하곤 하는데 인생은 등산처럼 대놓고 쉬운 길, 어려운 길을 선택할 수 없다. (인생에선 정답 같아 보이는 길도 있긴 하지만.) 아무리 쉬워 보이는 인생 여정이라 해도 직접 겪어봐야 아는 것이고, 남들이 다 쉬운 길이라고 해서 갔는데 막상 본인에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것은 등산을 할 때도 마찬가지라 남들이 쉬운 길이라고 해서 막상 올라가 봤는데 아닐 수도 있다. 내가 직접 올라가 보기 전까진 남들 말만 듣고 올라가기에 느낌이 다른 것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올라온 뒤엔 다시 돌아가기엔 늦었기에 그대로 밀고 나가야 한다. 등산에는 정상이라는 목적지가 반드시 있기에 힘들어도 끝까지 가보려는 마음이 샘솟지만 그것이 지나치면 객기나 오기로 변질되기도 한다.


     그러니 자신을 너무 과신해서 무리할 필요도 없다. 내 체력이 따라주지 못한다는 나 자신의 문제에서부터 자연환경의 변화 같은 외부 변수에 의해 포기해야만 하는 시점이 올 수도 있고 그럴 땐 포기를 하는 게 더 현명한 선택이다. 특히나 등산을 할 땐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도 중요하지만 자기 능력에 대한 판단 또한 중요하다. 이걸 오판하면 몸을 다치고 산에서 내려오느라 개고생 할 수 있다.


     혹자는 어차피 내려갈 거 왜 산에 올라가냐고 하지만 조금 어려운 길로 올라가 정상에 섰을 때의 기쁨이 있고 그건 등산을 해 본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번 가을에 다녀온 곳 중에 힘든 코스를 선택한 탓에 마니산을 올라갈 때가 제일 힘들었다. 다시는 이 길로 안 올 거라고 이를 박박 갈며 정상에 도착했고, 올라갔던 길이 아닌 다른 길로 내려왔다. 하지만 눈을 감고 작년 가을의 산행을 떠올렸을 때, 눈꺼풀 안쪽에 가장 많이 떠오르는 건 그렇게 고생하며 마니산에 올라갈 때 봤던 풍경들이다.


문수산에서 바라본 강화도와 북녘땅
서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인왕산 자락에서


저 멀리 손에 잡힐 듯 보이는 북한 땅과
넓게 펼쳐진 평야.

서울 시내의 빽빽한 건물들 사이로
끝도 없이 길게 이어진 도로와 거기에 줄지어 서있는 차들.

여기저기 울긋불긋 단풍이 들어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하기도 하고
사람들은 너무 작아서 보이지 않는다.

산 위에 올라가면 세상의 모든 것들이 조그맣고 아무렇지 않게 느껴지고
내가 왜 아등바등 살았나, 조금 더 마음을 놓아도 되지 않나 마음을 풀게 된다.






     마지막으로 등산의 좋은 점 하나 더.


    나는 주로 일요일에 등산을 하는데, 등산을 마치고 내려와서 먹는 건 뭐든지 꿀맛이므로 입맛이 좋아진다. 그 상태로 집에 와서 씻고 저녁 먹고 나면 꿀잠을 잘 수 있다. 불면증? 월요병? 이런 거 없다. 보통 월요병이 오는 게 주말에 늦게 일어나고 늦게 자면서 생활패턴이 깨지다 보니 일요일 저녁에 잠을 제대로 못 자서 다음날 더 피곤한 것이다. 그런데 일요일에 등산을 하면 일요일 저녁엔 무조건 푹 자게 되고 (너무 무리만 하지 않는다면) 잠을 푹 자서 상쾌한 월요일 아침을 맞이하게 되면서 불면증과 월요병은 안녕이다.


     겨울로 접어들어서 당분간 등산을 쉰다. 하지만 나는 봄이 되면 다시 산에 오를 것이다. 이번에는 좀 더 높은 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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