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 팀장 된 지 일주일 소감문

너무나도 길었던 일주일 이야기

by 세니seny

팀장 되고 첫 일주일. 정말 너무너무 길었다. 팀원일 때는 회사 끝나고 회사 문 밖을 나오는 순간 바로 회사모드는 꺼버리는데 팀장이라고 고작 일주일 했을 뿐인데 그게 잘 안 됐다.




참고로 나는 이전 팀장님께 주 35시간제를 제안할 정도로 워라밸 중시하는 도라이(였)는데 첫 주는 주 40시간은커녕 제시간에 퇴근한 날이 하루도 없었다.


물론 이번 주가 월말이라는 조금 특수한 상황이기도 했지만 큰 회의가 무려 두 개나 있었고 중간중간 보고할 것도 많았다. 경험도 별로 없는 막내는 불안한 상황임에도 오히려 눈치껏 자기 할 일 하고 있으면서 나한테 면담을 하자는 둥 말을 꺼내지 않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팀원과 팀장으로 사이가 벌어져버린 나와 동갑인 동료. 뭐가 그리 불안하고 본인이 원하는 일을 못 가져갈까 봐 안절부절인지 회의실로 따로 불러서 계속 뭘 물어보고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상황을 자기도 알아야겠다는 듯 메일에 CC로 넣어달라는 둥 내가 허둥대는 건 보지도 않고 자기 할 말만 해댔다.


이보십시오, CC로 누굴 넣을지는 팀장인 내가 어련히 판단할게요. 오히려 업무적인 걸 공유 안 하면 내가 불편할 테니까. 그리고 업무 하는데 필요한 것들은 당연히 공유할 건데 이제 팀장 맡아서 일 시작하고 있어서 정신없는데 자기 잇속만 너무 차리려고 나한테 여러 번 찾아와 닦달하는 모습이 점점 더 별로로 느껴졌다.


막내는 실제로 도와줄 게 없더라도 꾸며낸 게 아니라 도와주려는 척이라도 하는데 얘는 그런 게 일절 없었다. 내가 뭘 바라겠니. 막내보다 나이도 한참은 더 먹고 경력도 10년은 더 많은 팀원이 보일 행태일까. 이럴 거면 퇴사해라, 이런 생각밖에 안 든다.


그 와중에 막내 밑으로 신입사원을 뽑는다고 했더니 인사팀에서 이력서를 봐달라고 연락이 왔다.


신입 4명만 보겠다 했더니 다른 애 한 명은 인사팀 팀장이 추천 채용 올린 애니까 꼭 봐달라 그러질 않나, 같은 본부 내 팀장들 모여서 축하해 준다고 점심도 같이 먹었고 타이밍 이상하게도 팀장 되자마자 시비(?)를 걸어온 다른 팀 팀장도 있었다.


세상에나, 이 모든 게 일주일 동안 있었던 일이다. 나의 조용했던 회사생활, 이제 안녕. 이제 내 의지와 상관없이 마구마구 어떤 상황들에 휘둘리게 되겠구나.


내가 팀장을 처음 하는 거니까 경험이 없다 보니 모든 일이 대부분 처음 겪는 것인데 참 신기했던 건 회의를 주관하거나 대표이사님께 보고를 직접 하거나 신입사원 면접 대상자를 고르거나 등 거의 모든 일에서 조언 아닌 조언을 참 많이 듣게 된다는 것이었다.


다들 ‘네가 팀장 처음하니까 얘기해 주는 건데’ 하며 하는 말들. 조언 같기도 하면서 이상하게 너는 처음 팀장하는 거니까 경험 많은 내 말 들어, 너는 아무것도 모르잖아, 그러니까 그런 선택을 하는 거야, 같은 취급을 받는다는 사실.


조언은 고맙지만 조언같이 느껴지지 않는 조언도 있었다. 내가 그들의 조언을 따르지 않으면 경험 없는 초짜 팀장이 아무것도 모르고 자기 맘대로 행동하네, 가 되는 것이고 그들의 말을 따르자니 그들의 꼭두각시로, 그들이 원하는 대로 놀아나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제는 팀장이 되었기에 팀장이 된 내가 하는 말 한마디의 파급력이 크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래서 사실 팀장된 첫날 싸운 것도 그런 게 이유였다.


그리고 다른 업체랑 통화할 일이 있었는데-업체라기보단 정확히는 채무자지만-기존 팀장님은 그 분과 인간적인 유대를 잘 쌓아놓았다. 그런데 나랑은 실제로 본 적도 없고 전화 통화만 한 데다 내가 잘 못 알아듣는 거 같으니 무시하면서 가르치려고 드는 느낌이 든다. 그것도 대화 중간에 내가 뉘앙스를 이상하게 말하면서 그쪽에서도 나한테 벽을 세운 느낌이 들었다.


주 35시간제를 외치던 패기 넘치던 돌아이였던 나는 어디로 갔는가? 그나마 내가 하던 실무를 아래로 거의 다 내린다면 조금 일 할 만할 것 같기는 한데 특히나 팀원 중 가장 선배인 팀원이 이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온다면 앞으로 어떨까?


역시 매니징 하는 건 내 성격에 잘 안 맞는다. 특히 내 동료같이 기어오르려고 하는, 주위 상황 생각도 안 하고 자기 할 말만 하는 사람 관리하는 거 진짜 안 맞는다. 일 다 내리고 일단락되면 올해가 가기 전 기말감사를 피해 11월쯤 퇴사하고 싶다는 게 팀장으로 일한 1주일의 소감이었다. (이 생각이 복선이 되고 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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