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 1일 차 후기 : 퇴사 마렵네, 진짜
그나저나 아빠는 괜찮은 건가? 쓰러져서 병원에 실려갔다가 검사받아보라는 거 만류하고 그냥 일어나서 왔다는데. 이게 큰 병의 전조증상일 수도 있잖아.
그러면 나는 오늘 아빠랑 통화도 못했는데 오늘 보낸 카톡이, 아빠가 어제 엄마를 통해 생일축하한다고 보내온 현금 5만 원이 아빠와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거잖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엄청 슬퍼졌다.
만약 아빠가 아프게 된다면 아빠 병간호를 핑계로 회사를 관둘까? 마침 좋은 핑계잖아? 그 누구도 말릴 수 없는 핑계. 그리고 나도 아빠한테 빚진 듯한 느낌을 갚을 수 있는 기회.
엄마와 아빠는 애정이 있어 결혼했지만 흔한 중년의 부부가 그렇듯 애증의 관계라고 해두자. 나는 아빠가 엄마만큼 좋지는 않지만 아빠의 외모와 성격을 많이 닮았다. 아빠는 엄마와 함께 나를 세상에 나오게 해 준 사람이고 힘든 IMF 시절을 회사에서 버티면서 나와 가족들을 먹고살게 해 주었다. 요즘의 아빠들처럼 다정다감하고 사려 깊은 스타일은 아니지만 최소한 자신의 할 도리는 하려고 노력한 하나의 인간이다.
재작년 이맘때쯤, 갑자기 어머니가 쓰러져서 중환자실에 입원했다가 마지막으로 아무 말도 못 하고 세상을 떠난 직원 생각이 났다. 응급실 갔다 오면 괜찮겠지 하면서 그녀는 출근을 했고 그렇게 출근한 그녀를 분명 아침에 회사에서 봤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날 오후에 그 직원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부고 메일이 전사에 발송되어서 굉장히 놀랐다. 나는 조금 희귀한 성씨인데 그녀 역시 사회에서 만나기 어려운, 나와 똑같은 성씨라 아마도 우리는 먼 친척일 거라며 깔깔대기도 했었다.
나와 그녀가 일하는 부서는 위치한 층도 다르고, 업무도 달라서 많이 친하진 않았지만 흔치 않은 같은 성씨라는 이유로 마음이 쓰였다. 그녀는 여러 사정이 있어 올해 초 퇴사했는데 2년 전 이맘때쯤 더운 여름날에 그녀의 어머니가 그렇게 하늘로 갔었기에 그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사실 최근 몇 년간 퇴사/이직을 꿈꾸고 있었기 때문에 사내 인간관계를 잘 다지지 않았다. 그래서 사적으로 친한 사람이 거의 전무하기에 팀장이 된 첫날인데도 사람들한테 축하받기는커녕…
첫날부터 다른 팀 팀장과 싸우고(?) 내가 팀장이 된 것에 대해 말로는 괜찮다 했지만 속으로는 역시 마음에 들지 않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지 아직 업무분장 하지도 않았는데 자기는 이것과 저것이 하고 싶다고 콕콕 업무를 발라내고 여기저기 끼어들려고 하는 나랑 동갑인 팀원.
그녀는 그렇게 해야만 자기가 살아남을 수 있고 그래야만 다른 사람들한테 뭔가 보여준다고 생각하는 거 같은데 나는 잘 모르겠소, 다. 사실 그럴수록 별 감정 없던 그녀가 더더욱 미워질 뿐이다.
팀 내 선배 사원이라면 선배답게, 팀이 흔들리지 않도록 평소 하던 일의 1.1배(아니 그 이상) 정도 하려 노력하고 알아서 막내사원도 잘 돌봐준다면 없던 호감도 생기면서 그녀를 다시 보게 될 테지. 하지만 자기가 하는 행동이 옳다고 생각하는 그녀가 과연 이런 것들을 알아챌 수 있을까.
팀장 발령 첫날인데 하루를 겪자마자 ‘팀장 하기 싫다’ ‘퇴사하고 싶다’ '퇴사 마렵다'를 되뇌고 있는 햇병아리 팀장 1일 차 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