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가장 추웠던 겨울날에
눈이 왔다고 창밖을 좀 보라고 전 팀장님이 전화를 주셨던 그날, 전화 온 김에 약속 날짜를 잡아버렸다.
나는 12월 초라도 상관없었는데, 팀장님은 언제가 괜찮으시냐고, 시간 괜찮은 날짜를 주시면 제가 맞추겠다고 했더니 12월 중순의 날짜 월, 화, 수 3개를 주셨다. 그런데 내가 월, 화는 휴가를 낸 상태였기 때문에 수요일 하루가 남았다. 그래도 연마감전이라 괜찮은 날짜여서 그때 보기로 했었다.
그리고 휴가를 보내고 난 뒤 수요일에 출근했다. 하루 정도는 괜찮지만 2,3일 이상 휴가를 보내고 자리에 오면 아무래도 일이 쌓인다. 그래도 오늘은 야근하지 말고 오늘은 급한 일만 좀 처리하고 꼭 팀장님을 만나 내 얘기를 해야지. 내가 얼마나 기다려온 날인데.
그런데 문제는 오늘은 갑자기 추위가 들이닥쳐 한파주의보가 발령된 날이었다. 나는 상관없었다. 나는 오늘만 기다려왔기 때문에 추위가 대수랴. 대신 저녁에 어느 식당에 갈지 아직 예약을 안 했는데 팀장님한테 어느 쪽 선호하시냐고 물어봐야지, 이따 오후에 연락 한 번 드려야지 했는데...
나도 바빠서 정신없어서 놓치고 있는데 점심시간이 지나서 카톡이 왔다. 아, 오늘 약속 깨지는 건가… 싶어 보니 오늘은 날이 너무 추우니 다음에 만나는 게 어떻겠냐는 메시지였다. 다음에 볼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오늘 꼭 해야 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럼 퇴근 후에 카페에서라도 잠깐 보자고 타협안을 제시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난 어차피 야근해야 돼서 저녁 약속 있어도 애매했을 뻔했네.
팀장님과 회사가 가까우니 근처 커피숍에서 보기로 했다. 되게 아이러니한 사실은 회사 근처에 있는 모든 것들은 업무시간이 끝나면 오히려 회사 이야기를 하기 좋은 가장 안전한(?) 장소가 된다. 왜냐면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일이 끝나면 1초라도 빨리 회사 근처에서 벗어나고 싶기 때문에 회사 근처에서 잘 놀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누군가 이야기를 엿들을 염려도 적었다.
갑자기 급하게 보내야 할 메일이 생겨가지고 조금 늦을 거라고 연락드리고 갔는데도 아직 팀장님이 오지 않으셨다. 초조하게 문을 바라보며 기다렸다. 일단 내 몫의 야근 식대가 있으니 커피값은 내가 사기로 하고 음료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만나면 항상 나오는 이야기인 잘 지냈니, 요즘은 어떻니? 와 같은 말로 대화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나는 할 말이 이미 목까지 차올라 있었다. 음료가 나오고 나면 천천히 이야기해야지 생각했는데... 아아, 틀렸다. 벌써 팀장님 눈을 마주치지 못하겠고 우물쭈물한다. 그러자 팀장님이 눈치채시고는... 야~ 너 설마?
네, 맞아요.
생각하시는 그거예요.
저 퇴사합니다.
물을 넣어놓은 풍선을 잘 짬매고 있다가 손을 놓쳐서 입구가 푸르륵… 하고 펼쳐지면서 물이 쏟아지듯 그동안 꾹꾹 참고 눌러뒀던 이야기들이 그냥 나도 모르게 스르르 새 버리듯이 줄줄 나왔다. 음료라도 좀 나오고 나면 찬찬히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그냥 입에서 이야기가 새어 나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