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터면 자전거에 치일 뻔했다
2024년 어느 여름날의 일기.
나는 별 일이 없으면 집에 있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매우 길어서 돈을 벌지도 않는 주제에 생활비로 돈을 꽤 쓰게 된다. 물 계속 마시지, 화장실 휴지 쓰지, 하다못해 커피도 마시고 차도 마시고 하니 티백도 계속 줄어들지...ㅎ 쓰레기는 계속 나와서 체감적으로 휴지통 갈 때만 쓰는 커다란 비닐백봉투도 더 많이 쓰는 거 같은 느낌.
약속 없거나 나갈 일 없으면 집에 있고 자격증 취득을 위한 공부와 이 틈을 타서 하는 외국어 공부 그리고 책 읽기, 유튜브 보기, 낮잠 자기 등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오늘도 그러한 하루였는데...
낮에 갑자기 안내방송을 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안내방송이 나오기 전에 '띠리리링' 같은 알림음이 먼저 나오고 그다음에야 본 안내방송이 나온다.
예전에는 관리사무소 직원이나 사무소장님이 직접 방송을 했던 거 같은데 전문가는 아니다 보니 말이 좀 어색하거나 빠르거나 느리거나 혹은 약간의 사투리가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이것조차도 기계음으로 바뀌었다. 어느 아파트를 가도 마찬가진데 그렇게 하는 기능(?)이 생겼나 보다. 안 그래도 차가운 아파트 생활인데 더 차가워졌다. 아무튼 낮 4시 30분쯤이었는데 방송 내용은 이러했다.
"오늘 오후에 아파트 단지 내에서 누군가가 위층에서 아래로 음료수 캔을 던진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다행히 주민이 맞지는 않았지만 어쩌고 저쩌고... 이러한 행위는 상해를 입힐 수 있고 범죄에 해당하므로... 어쩌고 저쩌고..."
이걸 들으니 떠오르는 일이 있었다.
예전에 살던 아파트에서 있던 일이었다. 지금은 1000세대가 넘는 대단지 아파트에 살지만 그때는 아파트 단지라고 해도 달랑 두 동 밖에 없는 아주 작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그래도 단지 내에 자그마한 산책길이 있었다. 멀리 나갈 때는 집 앞에 안양천까지 나가서 산책을 했지만 거기까지 나가기 귀찮거나 그런데도 조금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아파트 내를 몇 바퀴씩 돌곤 했었다.
그날도 그런 날 중 하루로, 엄마랑 대화하면서 걷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내 눈앞으로 뭔가 툭 하고 떨어졌다. 진짜 간발의 차로 나는 그 물체에 맞지는 않았는데 그게 뭐였나 하면...
살짝 연기가 나고 있는
담배꽁초였다.
하마터면 욕이 나올 뻔했는데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하지만 속으로 외쳤다.
"어떤 ㅆㅂ새끼가 사람들 걸어 다니는 산책로에 담배꽁초를 투척하고 ㅈㄹ이야!!!!!!!!!!! 하마터면 나한테 맞을 뻔했단 말이다!!!!!!! 어떤 사고가 생길 줄 알고 담배꽁초를 창 밖으로 던지는 거야??? ㅁㅊ새끼 아냐?"
그래서 아까 그 안내방송이 남일 같지 않았다. 어떤 미친놈이 도대체 고층에서 물건을 던지는 걸까? 어디가 아픈 사람인 걸까? 생명은 소중하고 험한 말하면 안 되겠지만 ‘디질려면 그냥 본인만 조용히 디지세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제발 남한테 피해 좀 주지 말라고.
오늘은 일찍 저녁을 해 먹고 며칠간 먹을거리도 해놓았다. 그리고 비빔밥도 두 개 비벼놓고 참치 마요네즈 해가지고 주먹밥도 만들어놓은 뒤 부엌을 싹 다 치우고 눈누난나 해가 아직 지지 않은 일곱 시반쯤 산책하러 나왔다.
공식적으로 해가 지는 시간은 이제 오후 7시쯤으로 짧아졌고 당분간은 그러니까 동지까지는 끊임없이 짧아질 일만 남은 거다. 유럽의 길고 긴 여름 저녁이 그리워진다. 낮에는 더우니까 밤늦게 해가 다 떨어지고 나서야 나왔는데 그래도 이제 조금, 아주 조금 시원해진 거 같다. 해가 아직 남아있었지만 걸을 만했다.
내가 걷는 양재천변은 자전거 도로와 인도가 같이 붙어 있고 인도로 합류하려면 자전거 도로를 건너야 하기 때문에 꼭 양옆을 살피고 자전거 오는지 안 오는지 본 다음에 건너곤 한다. 나는 오늘도 그렇게 양옆으로 살피고 무사히 길을 건넜다.
그러고는 신나게 음악을 들으면서 걸은 지 1분이나 됐으려나? 그래도 1분은 넘어서 3분 정도 됐으려나? 이어폰을 꽂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어폰 너머로 뒤쪽에서 퍽, 하는 엄청 큰 소리가 났다.
놀라서 뒤돌아보니 어떤 자전거 한대가 나랑 간발의 차이 까지는 아닌데... 그래도 한 3미터 정도? 꽤 가까운 거리에 쓰러져 있었다. 누구랑 부딪힌 건지 혼자 넘어진 건지는 모르겠는데 바로 일어나지 못하는 걸로 봐서는 꽤 심하게 넘어진 모양이었다. 소리도 퍽, 하면서 꽤 크게 났고.
지나가던 자전거들이 멈춰 서고 뒤에서 오던 사람이 자전거도 옆으로 치워주고 괜찮냐고 막 물어보고 있더라. 몸을 일으키는 걸 보니 의식이 없는 건 아닌 거 같았다. 나도 그 걱정하는 무리에 끼어야 하나 했는데 이미 나는 사실 그 현장에서 벗어난 위치에 있어서 (뒤에서 오다가 본 게 아니라) 그냥 내 갈길을 가기로 했다.
혼자 넘어진 건지 아니면 뒤에 오는 자전거가 앞으로 끼어들려고 해서 놀라서 넘어진 건지 돌부리에 걸린 건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 큰소리가 났고 하마터면 내가 조금만 늦게 나왔더라면 나랑 부딪쳤을 수도 있겠다. 아니면 저 소리를 진짜 바로 1미터도 안 떨어진 곳에서 들었겠다 싶었다. 지금도 놀랐는데 더 가까이서 들었으면 아마 더 놀라서 바닥에 주저앉을 뻔했네 하는 생각과 함께.
다친 분도 그렇지만 나도 엄청 놀랐다. 좀만 늦게 나와서 만약 나랑 부딪쳤다면 혹은 부딪치지도 않았는데 내가 혼자 놀래가지고 주저앉거나 그런 나를 발견하지 못한 다른 자전거가 우릴 치면서 2차 사고가 난다거나... 상상에 꼬리를 무는 특징을 가진 나는 N에 가까운 사람.
자전거보험도 있다고는 들었는데 자동차 보험처럼 체계적으로 적용되는지는 모르겠다. 만약 자동차 사고의 경우 사고가 나서 일을 못하거나 입원을 하게 되는 경우 내 직업에 맞게 보상이 된다. 만약 내 직업이 사무직이라면 일당을 보전해주기도 하는데 지금의 나는 그냥 백수니까 즉 공식적으로 수입이 없으니 병원비라도 겨우 보전받을까 말까 그렇게 되겠지.
내가 자격증 공부하고 이런 건 쳐주지 않을 테니 사고를 당하게 되면 나는 공부도 못하고 그냥 며칠 혹은 몇 달을 시간을 날리게 되는 거다. 그런 것들이 줄줄이 연상되어 상상이 되고 나니 사고 현장에서 한참 걸어가면서 멀어졌는데 그제야 등골이 서늘해졌다.
오히려 회사 다닐 때가 출퇴근길에 끝나고 약속에 여기저기 돌아다닐 일이 많으니 사고 날 확률이 더 높아야 하는데 어째 집 주위만 돌아다니는 백수에게 이런 시련이 닥칠 뻔한 것일까. 뒤통수에 눈을 달고 다닐 수도 그렇다고 이마 위에 눈을 달고 다닐 수도 없는데.
그래서 이런 걸 보고 나면 당장 돈 못 버는 문제보다는 그저 팔다리 건강하고 무사히 걸어 다니는 것, 살아있다는 그 자체가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더불어 살아있음에 감사하는 마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