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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꽃다발을 들고 가는 사람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이유

by 세니seny Mar 06. 2025

      주 1회 악기연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집으로 가는 버스를 검색해 보니 곧 오겠는데? 싶어 급하게 걷고 있었다. 그 와중에 이 길에 버스 중앙차로가 있어서 (내가 타는 곳은 이쪽 정류장이 아님) 눈길을 한번 훅 돌렸는데…. 오늘 하늘이 너무 예뻐서 자연스레 고개를 돌리다 보니 보게 된 걸지도 모르겠다.


한 남자가
 꽃다발을 들고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아마 횡단보도를 건너는 걸 보니 중앙차로에 오는 버스 중 하나의 버스를 타겠지. 남자가 꽃다발을 들고 돌아다닐 때 그 사람이 그걸 선물로 받았을 확률은 반대의 경우보다 희박한 것 같다. 그러므로 나는 이 남자가 이걸 다른 누군가에게 줄 것이라고 가정하겠다. 그러니까 저 꽃다발은 누군가에게 주기 위해 산거다.


     그런데 가만 보니 옆에 여동생인지 여자친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자랑 같이 가고 있다. 뭘까? 만약 옆의 여자에게 주었다면 그 여자가 들고 있어야 할 텐데… 아니면 부모님에게 드릴 꽃일 수도 있고 장인/장모님 집에 인사 가는 길에 산 걸 수도 있고.


     음, 그것도 아니라면 옆에 있는 여자가 여자친구가 아니라 여동생이고 여자 친구에게 줄 선물을 샀거나 아님 정말로 옆에 있는 게 여자 친구이고 그녀에게 준 건데 그녀가 '네가 좀 들어줘~'라고 해서 여자친구에게 주고도 결국 자기가 들고 있을 수도 있고…


      그런데 꽃다발을 들고 가는 사람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만약 주는 사람일 경우,
   누구에게 주는 걸까?


     꽃다발을 준다는 건 대체로 기념일이나 특별한 일이 있을 때가 많다. 그러니 뭔가 좋은 일이 있어서 그런가 보다 좋겠다는 생각. 근데 또 그렇다? 특별한 일이 없어도 꽃을 주면 그게 특별한 일이, 특별한 날이 될 수도 있는 거다.


     그리고 꽃을 만나기 직전에 살 수도 있지만 그런 게 아니라면 꽃을 산 뒤 그걸 들고 한참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이동을 하거나 걸어야 한다. 그동안 꽃다발을 상하지 않도록 잘 들고 있어야 한다. 꽃다발은 모양이 망가질 수도 있으니 짐이 담긴 쇼핑백 마냥 아무렇게나 휙휙 들 수는 없다.


     꽃다발은 여러 꽃이 조화를 이루도록 나름의 질서를 가지고 예쁘게 모양을 잡아 놓은 상태다. 또 꽃다발 아래에 물을 대놓은 경우도 있어서 흐트러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들고 있어야 한다.


    상대방을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꽃을 들고 이동하는, 하루 24시간 중 그렇게 길지는 않은 얼마 간의 시간. 하지만 꽃다발을 들고 지나가는 저 사람은 그저 우리를 스쳐 지나가는 사람일 뿐이고 그 꽃을 받을 상대방이 누군지 모른다. 하지만 꽃다발을 들고 가는 모습 하나만으로 모든 게 그려진다. 그 꽃다발을 받을 사람이 누군지 몰라도 부러워진다.

   

      만약 꽃을 받는 사람이라면, 기념일이나 특별한 날이어서 소중한 사람에게서 받았겠지. 혹은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그냥 평범한 날인데도 꽃을 받음으로써 그날이 특별하게 기록되겠지.


     그 설렘을 안고 집으로, 또 어딘가로 가는 길이겠지. 그러니까 이유가 무엇이 되었든 꽃을 들고 가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설렘이 나에게도 전달되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다.


      독립해서 산 지 얼마 안 됐을 때, 마침 집으로 가는 동선에 괜찮은 꽃집이 하나 있었다. 꼭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평범한 날에 나를 위한 꽃을 살 수 있는 곳. 가격이 그리 비싸지 않으면서도 여러 꽃이 조금씩 섞여 있어서 집에다 꽂아두고 기분 전환을 하기에 딱이었던 꽃다발을 많이 팔았다.


     그 뒤로 관심이 생겨서 미리 디피되어 있는 거 말고 직접 만들어보려고 시도도 해봤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오히려 비용이 더 들더라. 그래서 그 뒤로는 미리 만들어진 꽃다발 중에 마음에 드는 걸 고르곤 했다.


     그런데 꽃다발이라는 건 어느 정도 경제적 그리고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살 수 있다. 왜냐면 필수재는 아니기 때문이다. 당장 꽃다발이 없는다고 죽지 않으니까.


     지금의 나는 경제적 여유가 없으니 꽃다발을 함부로 사지 않는다. 하지만 다시 경제활동을 하게 된다면 퇴근길에 마음에 꼭 드는 꽃집을 찾고 싶다. 그리고 지친 하루 끝에, 그곳에 들러 꽃다발을 사들고 집에 돌아가야지.


    그저 그 누구도 아니고, 나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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