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며칠 안 되는, 아름다운 풍경을 매일 누리기
2025년 4월 초의 일기입니다.
벚꽃이 피기 시작한 이번 주를 제대로 누리고 있다. 사실 중국어 시험만 아니었다면 나는 벚꽃 보느라 집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거다. 아니면 밤에도 기어이 벚꽃을 보러 집 밖으로 나갔을 거다.
중국어 시험을 접수할 때 벚꽃이 만개하는 시기와 겹치는 걸 생각 안 한 건 아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번 달 시험을 놓치면 5월에 봐야 하는데 그때는 이사를 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취업이 돼서 일을 시작할 수도 있었는데 문제는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주말에 출근할 수도 있는 일이라 상황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한 달여 만에 다시 면접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면접시간이 2시라 애매해서 조금이라도 하려고 했던 알바도 아예 하루를 째버렸다. 그리고 면접이 끝나자마자 집으로 왔더니 4시도 채 되지 않았다.
이번 주 루틴은 계속 다음과 같다 : 집 앞에 도착해도 바로 집으로 안 들어오고 집 앞의 안양천을 아니 양재천을 산책하다 아쉬운 마음을 안고 들어오는 것. 오늘은 확실히 어제보다 꽃이 더 폈다. 어제는 하늘이 좀 흐렸는데 (비소식도 있었고) 오늘은 꼭 스마트폰의 사진어플 필터를 씌운 것처럼 하늘이 정말 너무너무 맑다. 살다 보면 이런 날은 많지 않다.
바람이 부니 벚꽃 이파리가 흩날린다.
작년에 마지막 출근하는 그 주 어느 날. 저녁 회식을 하고 퇴근길에 약간 술에 취해서 벚꽃이 흩날리는 벚꽃 눈ㅡ벚꽃이 흩날리는 게 겨울에 내리는 눈 같아서 내가 마음대로 붙인 표현이다ㅡ아래를 걸었었다.
어느새 그로부터 일 년이 지났다. 어제 산책을 하면서 자세히 보니 벚꽃이 꼭 바람 때문에 떨어지는 게 아니라 새들이 벚꽃을 쫘서 떨어뜨리기도 했다. 바람에 흩날리는 건 꽃 전체가 아니라 이파리 하나하나다. 바람이 불면 떨어지는 이파리들, 마치 눈송이 같은 그 연한 분홍색을 띤 이파리들 말이다.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만 봐도 행복했다.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귓가에는 이 계절에 가장 잘 어울리는 노리플라이의 <beautiful>과 <눈부셔>가 흐르며 귓가를 간지럽혔다.
Beautiful green, beautiful land,
beautiful world
I never stand without you
Beautiful tree, beautiful ground,
beautiful world
I never stand without you
<Beautiful>, 노리플라이
눈부셔
너의 마음은 나를 향해 빛나고
오후 햇살 가득한 너를 담은 풍경이
(중략)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어도
그대 마음은 영원하길
해가 저물면 불빛은 훨씬 아름답죠
<눈부셔>, 노리플라이
작년 이맘때, 이 길을 걸으며 그런 생각을 했었지. 아마 내년에 여길 걷는 게 아마 마지막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그런데 실제로 전세 계약을 연장하지 않고 이사를 앞두게 되면서 그 가능성이 실현되어 진짜로 마지막이 되었다. 하지만 이사를 간다고 해서도 못 올 거리도 아니다. 오려면 올 수 있는 거리다.
이곳에서의 벚꽃이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너무 슬퍼하지 말자.
내년에 내가 어디서 살고 있을지 아직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곳은 아닌 게 분명하다. 하지만 당분간은 여기서 멀지 않은 같은 양재천 줄기일 가능성이 높다. 그곳이든 혹은 그곳마저도 떠나서 다른 데로 둥지를 잡았든 나는 다시 이곳에 돌아와 봄날의 벚꽃을 보리라 생각했다. 나에게 그 정도의 시간은 주자. 충분히 그럴 수 있잖아?
물론 지금처럼 퇴근길마다 매일매일 마주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다시 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이게 마지막이 아니라고 생각하니 덜 슬퍼졌다. 이곳은 나의 숨겨진 벚꽃 명소가 되었고 아무도 모르는 나의 이런저런 비밀들을 품고 있는 곳이 되어버렸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