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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초록 Jul 13. 2021

인형

한 번도 울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 하나 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정말이고 닮아있다는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이 얼마나 오랜 세월을 살았는지, 아마 결코 짧지는 않았을 시간 속에서 과연 얼마나 성숙해졌는지 따위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허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는 반드시 한 번은 울었다. 태어날 때를 제외하고도, 아니 좀 더 봐줘서 어린이 시절을 제외하고도 한 번은 울었다. 기뻐서 울었다는 핑계도 대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분명 슬퍼서 울었다.


눈물이 정말 없어 보이는 사람이 있다. 텐션이 지나치게 높아서 머릿속에 행복과 기쁨만 가득 찬 것만 같은 생기발랄 타입일 수도 있고, 카리스마가 철철 흐르는 과묵한 엄근진 타입일 수도 있다. 이런 사람들이 우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역시 분명한 것은 그 사람도 반드시 울었다. 언젠가 몰래 숨죽여 반드시 울었다. '난 원체 눈물이 없어서...'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냥 눈물을 잘 참는 사람이거나 쓸데없는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다. 내가 그렇다.


나도 지금껏 엄청난 양의 눈물을 흘렸지만, 눈물을 흘리는 느낌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우는 동안에는 그 마음과 느낌을 진지하게 분석할 만큼 여유가 있지 못하니 말이다. 분석한대도 오롯한 결론 하나도 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최대한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눈물이 마음을 굳게 하다가 어느 순간 터져나가는 느낌이 든다. 마음이 차가운 쇠사슬로 단단히 매이다 찌그러지는 느낌이랄까? 답답하면서도 소름 돋는 느낌이다. 지금 이 순간도 그 느낌을 온몸으로 체험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는 우리의 인생이다. 이 야속하고도 당연한 사실을 외면하지 못하는 이는 눈물만 흘릴 뿐이다.


세상은 마치 정기적으로 막이 열리고 닫히기를 반복하는, 끝나지 않는 연극 같다. 같은 무대지만 막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씬이 시작되며 그 결말도 항상 다르다. 관객석은 없고 무대가 전부다. 가만히 앉아 마치 관객인 마냥 무대를 지켜보는 사람들도 사실은 무대 위에 서 있다. 그들은 관객 역할을 연기하는 주연 배우다.


희극과 비극이 마구 뒤엉켜 섞인다. 막이 열리고 닫히기를 반복하며 신예 배우들이 탄생하고, 원로 배우들은 아름다운 끝을 맞는다. 원로 배우 중 극히 일부는 전설이 되어 무대 뒤편에 기록되고는 한다. 배우의 연기력이 좋았다거나, 비중이 높은 주연 배우였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엑스트라는 애초부터 무대에 없다. 엑스트라처럼 보이는 배우는 있는데 그들은 스스로 엑스트라를 연기하는 주연 배우다.


약속한 것처럼 저마다의 순간에 눈물을 흘리고, 자신의 감정을 지배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역할이 정해지기 시작했다. 무대 위의 조명은 아무에게나 얼굴을 들이밀지 않았다. 특별한 역할을 배정받은 배우에게만 얼굴을 들이민다. 그리고 조명을 받지 못한 이들은 소리 없이 무대를 떠난다. 아무도 알아 차리지 못할 만큼 조용하게. 남은 배우들의 수준급 연기가 다시 시작된다. 무대의 공기는 변함이 없다. 모두가 울고 있는데 조금의 축축함도 없다.


눈물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은 눈물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을 뿐이다. 겉바속촉이다. 눈물이 정말 많은 사람들은 속이 촉촉해지고 촉촉해지다 견디지 못하고 겉까지 배어나오는 것이다. 강철처럼 단단해 보이는 이들도 저마다 마음속에 앙증맞고 부드러운 인형 하나를 지니고 살아간다. 어찌나 소중한지 인형의 손을 꼭 쥐고 애지중지 키운다. 어떤 사람은 목숨같이 관리한다. 어떤 사람은 돈을 쏟아붓기도 하고, 운동을 하기도 하고, 명상을 하기도 하고, 책도 읽고, 사람도 만나고, 약도 먹는다. 그만큼 그 인형은 작고 연약하고 소중하다. 그러나 잔인한 무대를 사는 배우들에게 작은 인형 따위 살뜰하게 돌볼 여력은 없다. 눈물이 마구 쏟아지지만 겉으로 내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인형은 젖어간다. 복슬거렸던 털은 숨이 죽어 마구 얽히고설키다 엉망이 되었다.

우리의 마음이, 우리가 사랑하는 인형 같다는 생각을 했다.

눈물을 연기하기 쉽지 않은 이유다. 그렇게 누군가는 인형의 손을 놓치고 만다. 마음을 놓치는 순간, 조명이 고개를 돌려 그 위를 비춘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돌린다. 무대 위에 주저앉은 주연배우의 차기작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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