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의 맥북 수리와 두 번의 구매기
별안간 시작된 이번주.
월요일에도 화요일에도 어김없이 야근을 하였다.
내가 부족하기 때문에 야근하는 것 맞다.
도대체 나는 왜 이렇게 부족한가에 대해 진지한 고찰을 해 보았는데,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올빼미형 겸 벼락치기형 인간으로서의 삶이 지금의 나를 빚지 않았나...하고 생각한다.
솔직히 해도 해도 글 안써진다.
브런치 글은 이렇게 술술 쓰는데 말이지.
도대체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잘 살고 있을까.
한 수 배우고 싶다.
이 와중에도 화요일 저녁, 불어 수업은 내가 가질 수 있는 새로운 설렘이다.
수요일 저녁, 일하다 말고 sy언니를 만나 새로 생긴 햄버거집에서 밥을 먹었다.
고구마튀김을 추가할 수 있어 행복했다.
그러고는 미국에서 공부하던 시절 당연히 바꿔먹곤 했던(왜냐면 거의 무조건 있었으니까) 고구마튀김을 떠올렸다.
사물을 보고 떠올릴 추억이 있는 사람은 축복받은 사람이라는데, 몇몇 과거는 너무 빠르게 미화되고 중요한 부분까지 쉽사리 잊혀져 이제는 '아 내가 미국에서 살았던 시절이 있었지'라는 잔상만 떠올리게 된다.
사실 저 날 어떤 일로 마음이 심란하여 언니를 부른 것이었는데, 밥을 먹으면서 그 때를 떠올리니 과거 미국에서 그렇게나 고민이 많았던 내가
지금에 와서 당시 했던 고민을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웃겨 폭소를 터트리고 말았다.
역시 걱정해봤자 득될게 하나도 없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마주해서 해결하면 그뿐이다.
리트 스터디때부터 알던 사람이 이렇게 우연히 가까운 곳에서 일하게 된다는 것은 삶의 커다란 축복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나의 부름에 기꺼이 시간을 내어준 그녀와는 매번 비슷하지만 또 다른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시간을 보내게 된다.
예를 들면, 일하기 싫다->일이 해도 해도 어렵기 때문이다->일은 어렵지만 잘은 하고 싶다->근데 노력은 안하고 두 배로 잘해지고 싶다->아 근데 우리 곧 결혼하는데 인테리어 어떻게 꾸미지?->적은 돈만 들여서 바우하우스 풍의 스튜디오처럼 꾸미고 싶다->근데 이쁜건 비싸다->너무 비싼걸 사겠다고 하면 배우자 중 한 명이 분명 난색을 표하는데 어쩌지->우리 돈 없네->돈 언제 벌지?
로 귀결되는 식이다.
깔깔깔깔.
하지만 그럼에도, 사람이 빠져나간 카페의 정적을 즐기면서 어느 하나 불편할 것 없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기쁜 일이다.
언니는 내가 대통령도 될 수 있을 것 같다며, 너는 어떻게 이렇게 늘 에너지가 넘치냐고 물어봤는데 너무 놀라고 말았다.
요즈음 지나는 시간 속, 나를 가장 고민케 하는 부분 중 하나가 '나는 왜 이렇게 무기력한가?'인데, 저런 말을 하다니.
내가 에너지 넘치게 말할 수 있고, 수다스러울 수 있는 것은 언니를 만났기 때문이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하지 않았다.
왜냐? 그럼 매력 없지.
회사로 돌아가는 길, 휘영청 달이 너무 밝아 아이폰 성능을 정말 잘 이용해보고 싶었는데.
추파춥스 딸기맛 같이 찍혔다.
퇴근합니다.
오늘도 여느 때와 같이.
목요일에는 출장을 온 대학원 동기 j양을 만났다.
j양과 만날 약속은 거의 1달 전에 잡은 것인데, 나는 그 약속을 통해 미리 잡은 약속이 인간에게 어째서 행복과 기쁨을 주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녀가 출장을 온 김에, 이 즈음 나를 만나러 온다고 생각하니 그 몇일 전부터 괜히 신이 났다.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는 삶보다는, 역시 설렐 무언가가 있는 삶이 훨씬 대단하다.
그녀는 나와 p의 결혼을 미리 축하한다며,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주고 떠났다.
밥도 그녀의 회사가 지급한 법인카드로 먹었는데, 뭔가 상경한 첫째 언니가 첫 월급을 타 호텔 레스토랑에 데려간 기분이었다.
가만히 있으니 옷도 생기고 밥도 먹는 그런 행복.
우리는 카페에 둘러 앉아, 과거에 공부하던 시절 얼마나 많은 것에 집착했었는지 그리고 그러한 집착이 지금 와서 얼마나 큰 후회와 자조로 남았는지를 이야기했다.
나보다 몇 배는 어른스럽고 자주적으로 살아가는 것 같은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분명 주말이 지날때마다 이번에도 로또가 되진 않았다며 안타까워하던 친구가 어느새 어린시절 내가 말하던 어른이 되고 있구나를 생각하게 됐다.
야 너무 빨리 크지마 나랑 같이 놀자.
므찐 회사원의 인생으로 돌아가던 j양.
평일 뭐 별거 있어요?
b와 y언니 꼬셔 커피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그런 재미면 됩니다.
저 테이블에서 나누는 수많은 말들은 사실 잘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특별히 기분 나쁜 말을 듣지 않아서인지
혹은 자연스럽게 내가 하고픈 말은 뭐든 해도 된다고 생각해서인지는 몰라도
커피가 바닥을 보일 때 즈음 나도 다시 뭔가 해볼 의욕을 반푼어치만큼은 얻는 것 같다.
솔티 카라멜 휘낭시에 6등분 해서 3명이서 나눠 먹으면 얼마나 좋은고 하면, 버터 냄새만 맡아도 저 때를 기억할 수 있게 된다(오바 약간 보태서).
금요일, p는 갑자기 몰린 일과 나빠진 몸 컨디션으로 집에 오기 어렵다고 했다.
토요일 일찍 오겠다면서.
나는 여유롭게도 그러라며, 유유자적 필라테스를 다녀왔는데 막상 저녁 늦게라도 오겠다며 내려온 p가 역에서부터 집까지 오는 동안 몇 번이고 문을 쳐다본 나를 보며 내심 그를 기다렸음을 알게 됐다.
우리는 기절한 채로 자다가 그렇게 소고기국밥에 바싹불고기까지 시켜먹은채 주말을 맞았다.
아프다며...? 그냥 배부르고 신난 것 같은데...
저러고는 먼저 문을 닫아걸고 내 눈치를 살피며 조용히 나를 맞이하였다.
토요일 j양이 사준 결혼선물을 교환하기 위해 옷가게에 들렀다.
j양 내 사이즈 스몰이라고 생각해줘서 고맙다.
정말 마음은 잘 받았어 비록 난 라지도 딱 맞는 수준이지만 말야^^...
결국 나는 웃돈을 주고 출근용 흰 셔츠로 교환하고, p는 본인 사이즈 찾아 원래와 비슷한 블랙 티셔츠로 교환하여 집에 가기 전,
위 사진은 나와 남의 발 끝 찍기를 좋아하는 내 작품활동을 포착한 순간이라 할 수 있다.
작품명: 크리스탈 제이드 입장을 기다리며
늘 내가 먹고 싶은 메뉴를 추론하여 시키는 신공을 발휘하는 p님께서
오랜만에 자기 주관 발휘하여 간 크리스탈 제이드.
소고기탕수육이랑 유니짜장 왜 이렇게 맛있는 거야?
우리는 연신 감탄사만 연발하며, 아 여기는 확실한 맛이 있어란 말만 하다가 식당을 나왔다.
그렇게 백화점 가구코너를 습관처럼 한 바퀴 돌아주고, 이번엔 놓치지 않고 러그도 제대로 구경하고는 집에 돌아와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봤다.
백이진...나 너 보고싶었냐?
이 드라마 나에게 너무 해롭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지나치게 미화하고, 나의 온 신경을 태리와 주혁으로 현혹시킨다.
나도 불꽃놀이하며 삼척 어드매로 떠나야 할 것만 같다.
현실은 집에서 귀찮다고 커피도 시켜먹고 있지만.
아침에 일어나니 p가 여전히 컨디션이 회복되지는 않은 것 같다며, 최대한 에너지 소모를 줄이는 활동을 하자고 하였다.
전부터 p와 가보고 싶었던 카페를 가기 위해 큰 마음 먹고 택시란 걸 탔다.
택시 함부로 타면 돈 못 모은다던데...내가 큰 인심 썼다.
절대 나도 타고 싶어서 탄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이 곳을 오고 싶어했던 이유.
왜인지는 모르나 그가 소나무 분재에 상당한 애정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학부시절은 본관 앞마당이 전부 소나무였는데, 그 땐 들여다보지도 않던 소나무가 작은 공간에 뿌리를 내리니 이렇게나 의연하고 의젓해보일 수가 없었다.
역시 모든 것은 다 어디에 담기 마련이고, 자리는 분재를 그리고 사람을 만든다(응?)
회사 후배가 브런치를 시작한 내게 빌려다 준 '쓸수록 나는 내가 된다'라는 책을 읽었다.
읽으며 나는 왜 사춘기가 찾아온 이 시점에 느닷없이 글을 쓰고만 싶었던 것인지, 글을 쓴다는 것은 내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었다.
그 부분이 가장 좋았다.
글을 써 불행을 극복하고, 글로 써 불안을 줄여나가자는.
그렇다. 나는 지금도 불행을 극복하고, 불안을 줄이기 위해 이렇게 타이핑하고 있는 것이다.
정면으로 안 찍는다고 예술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사울 레이터 전시의 효과는 굉장했다.
뭔가 평범하지 않게 찍고 싶다는 열망이 날이 갈수록 더해가고 있다.
위 사진은 중력의 영향을 거부한 한 여성의 몸부림이 담겨 있다고 해석해줬으면 좋겠다.
집에 가기 전, 열린 창문 틈새로 보이던 인테리어에 끌려 들어온 식당 '고숩'
너무 멋있고 맛있고 그랬다.
고기 구워준 직원분이 내 마음에 드는 극한의 정리쇼를 보여줘서 혹한게 절대 아니다.
이렇게 대파김치에 미나리에, 냉이된장국을 먹을 수 있어 혹한 것이다.
기차를 타러 가기 전, p가 방앗간처럼 들르는 빈티지 숍 lilisun을 갔다.
그냥 다 이쁘기 때문에, 사이즈만 맞으면 사면 된다 싶을 정도다.
사장님 센스 저세상 요지경이다.
잘 있어 아르마니야.
언니가 안사안사병 고치면 데리러 올게
p를 데려다 주고 오던 길.
추운 요즈음 햇살이 비치는 순간 둘 모두 말 없이 치유받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분명 그도 그렇게 생각했음을 확신했다.
날씨의 힘은 막강하고, 그걸 즐길 사람이 있다는 것은 순수한 기쁨을 준다.
예...일 다 못해서 잠시 나왔다가 갔네요
예 뭐 그렇습니다.
다시 돌아온 월요일, 무사히 찾아온 직급별 식사.
사진 찍는 것은 놓쳤지만.
y언니가 가까운 식당으로 가자고 하여 간 카페에서 샌드위치를 시켜 앉아있는데, 우연히 커피를 마시러 온 mj도 만나게 되어 넷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직급별 식사를 마무리했다.
돌이켜보면, 사진을 남길 필요성을 느끼지조차 않을 정도로 그 시간이 좋았다.
일 이야기보다는 거의 봤던 드라마 얘기, 영화 얘기, 누가 무엇을 샀다더라 했다더라 하는 이야기들을 나누고 내 안에 많은 것을 채우는 시간을 가졌다.
말은 할수록 공허한 것이라는데,
누구와 어떤 말을 나누느냐에 따라 내 마음에 무언가가 채워지기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퇴근 후, 오랜만에 네일아트도 받고 유유히 sun과 만날 약속을 잡아 시내의 한 고깃집으로 가자며 약속을 하였다.
해 질 어스름 무렵은 이렇구나, 하면서 내가 놓치고 살아가는 것들에 대한 센치한 마음을 팍팍 먹고 있는데
진짜 현실로 헉 소리가 나며 망했다는 것을 직감했다.
지하철 역을 잘못 내린 것이다.
침착하게 다른 지하철 역으로 돌아가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는데,
나는 내가 또 다시 잘못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 곳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너무나 놀란 마음에 급하게 카카오택시를 불러 다른 곳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맞겠지.
그러나 나는 알게 되었다. 이 고깃집도 아니란 것을...
오늘 무슨 마가 씌었나?
결국 내린 자리에서 다시 카카오택시를 불러 다른 고깃집으로 향하고 나서야 겨우 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상황은 이렇다.
이 도시에는 같은 이름을 가진 고깃집이 세 개가 있는데, 처음 내가 지도 어플을 보고 찾은 곳은 첫 번째 지점이었다.
그리고 지하철을 내릴 즈음에 도보로 찾아가기 위해 고깃집을 재차 검색하니 지도어플이 그로부터 멀리 있는 또 다른 고깃집을 찾아준 것이다.
이후 두 번째 고깃집으로 향한 나를 지도어플은 다시 첫 번째 고깃집으로 가라고 말하지 뭐야?
물론 내 친구가 나를 기다리던 장소는 세 번째 지점 고깃집이다.
결국 나는 두 번의 택시를 타고, 한 번의 지하철 환승을 거치고 나서야 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
이럴 수가 있나? 나는 바보가 아닌가?(바보는 맞지)
라고 생각하다가, 문득 요즈음의 내가 발전이 주는 편리성을 얼마나 맹목적으로 믿고 따르는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처음부터 가고자 했던 지점이 무슨 동 무슨 번지에 위치하는지에 대해서만 짧게나마 생각해보았더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는 지도를 들고 어디로 가는지, 어떻게 가야 하는지를 주체적으로 찾아가던 시절을 지나
휴대폰 화면이 알려주는 목적지로 큰 생각 없이 가는 생활을 반복하다 보니, 그 사이에 위치한 길과 길목은 모두 내게 의미 없는 장소가 되어버렸다.
우스운 소리지만, 인생도 이런 것 아니냐며.
길을 잃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채 해맑게도 제대로 가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남들이, 휴대폰이, 알려주는 대로 세상을 살고 있다.
정말 나만의 지도를 펼쳐 스스로 찾아가며 살아야지.
네, 이상 고깃집 못 찾고 근거리에서 교통비로만 20,000원을 쓴 사람의 뻘소리가 맞습니다.
너무 맛있었다.
맛있는 고기가 이미 구워지고 있던 것이 얼마나 큰 위안이 되던지.
sun은 크게 나를 탓하지도 않고, 그저 나를 놀리면서 오늘 이거 브런치 각이라고 위로해 주었다.
내가 샀다(강조).
사진 속의 sun양.
밥을 먹다가도 회사 일 때문에 통화를 해야만 하는 시대의 여성상을 엿볼 수 있었다.
길을 걷는데 불난 줄 알았다.
현실: 고깃집에서 나오는 환기 연기였음.
나도 방금 고기 먹고 나왔는데...세상...이대로 무사할 수 있을까?
밥을 먹고 나와 우리는 처음부터 가고자 했던 카페가 시간이 늦어 문을 닫았음을 알게 됐다.
내가 늦어서가 맞다.
길바닥에서 1시간이나 허비하다니
나 자신이 싫었다 정말로.
하지만 그럼에도 나름대로 생각하지 못했던 다른 곳도 가보자며, 우리는 낄낄거리고 이리 저리 돌아다녔다.
sun이가 나를 기다리며 이 곳에서 책도 사주고, 편지도 써줬다.
복 받았어.
편지에는 누가 뭐래도 니 마음대로 살아라~는 골조의 메세지가 있었는데
그게 참 위안이 됐다.
그래 뭐 어쩌라고.
내 맘대로 살거야~.
헤매다가 결국 들어간 이씨씨커피.
거의 단골이다.
인테리어도 예쁘고, 아페쎄를 연상시키는 아니 일부로 오마주한듯한 로고 디자인도 마음에 들며 무엇보다 커피가 맛있다.
나는 이 그림자를 보라면서, 어둠이 짙을 수록 그림자는 선명한 법이야(응?)
하며 지금의 많은 고민들은 우리 삶의 많은 그림자 중 하나일 뿐이라고, 그저 우리는 지금을 잘 보내기만 하면 충분하다고 했다.
내 말이 충분하게 와 닿았을까?
커피는 바닥을 보이지만, 우리의 이야기는 카페의 불이 꺼지도록 마르지 않았다.
계속 계속 과거의 이야기를 반복해서 꺼내고
그 과거의 누군가에 대한 근황도 나누면서
그리고 우리가 과거에 비해 얼마나 많은 것들을 끝내 성취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무엇보다 뭣 모르던 고등학교 시절부터 이거다! 하고 시작한 공부를, 학부에서도 그리고 대학원까지 가서도 해내고 끝끝내 거기서 빛을 본 그녀가 대견했다.
그러니까 너는 뭣 모르지도 않았구나, 나는 그 때 나의 꿈과는 전혀 상관도 없는 무언가를 하고 있는데 말이야.
집에 돌아가는 길, 나는 다시 지하철을 잘못 탔다.
오늘은 길을 잃는 날인가보다.
그 와중에 사울레이터 식 사진도 찍겠다면서 말이야.
그래 뭐 어쩌겠어.
대충 살자. 길 잘못 찾으면 다시 또 찾으면 되고, 그 길도 틀리면 다시 또 찾으면 된다.
결국 고기도 잘 먹었고, 집에도 잘 왔다.
집에 돌아와 mj가 성공선물(이별선물 절대 아님. 이별이란 없는 거야)로 준 비누함을 열어보았다.
오늘이야말로 이 냄새가 주는 힐링이 필요했다.
이거 아까워서 쓸 수나 있을까?
네, 쓸 수 있습니다.
너무 좋네요.
거품은 몽글몽글 손을 타고 흐르고, 내 안의 많은 찌꺼기들도 한 풀 꺾어 내려 보냈다.
그러곤 돌아와, 미뤄두었던 맥북의 장례식을 치뤄주었다.
이 맥북으로 말할 것 같으면, 2016년형 맥북 프로 15인치로서, 멋진 디자이너가 되겠다며 터치바 있는 최고사양 노트북이 필요하다고 농성을 하여 엄마로부터 얻어낸 꿈의 산물이다.
고등학교 시절 아빠가 선물해 준 삼성 11인치 노트북을 거쳐, 미국에 가기 전 싼 것 쓰겠다고 샀던 레노보 울트라북도 떠나보내고, 마침내 오빠가 공짜로 준 acer 노트북(그마저 자가수리로 ssd를 바꿔 달았다)을 사용하고 나서야, 엄마한테 정말로 갖고 싶었던 노트북이 있다고 얻어낸 집착의 결과물이다.
물론 디자인은 안했다. 얼마 후 나는 꿈을 접고 공부를 시작했다.
비록 터치바로 포토샵 색감을 조절하는 행위는 하지 않았지만, 교수님의 수업을 녹음하여 속기를 할 때 터치바의 일시정지 버튼을 자주 사용했고, 스포트라이트를 이용하여 디자인 소스를 모으진 않았지만, 스포트라이트 검색 기능을 이용하여 노트북에 흩어져 있는 판례 문구를 검색해 쏠쏠히 사용했다.
물론 항상 좋았던 것은 아니다.
사자마자 2주만에 이유 없이 화면이 나간 적도 있고, 기다리던 취직이 마침내 좌절되었던 날 삼다수 1.5L 한 병을 통째로 자판에 쏟아버려 거금을 주고 하판을 통째로 갈게도 했다. 다시는 수리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으나, 이내 스피커가 망가져버려 스피커와 그 옆 키보드까지도 재차 바꾸게 하였으며, 나는 취직을 하고도 이 컴퓨터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못하고 25도까지만 화면이 출력되는 현상을 해결하려고 서비스센터에서 돈을 또 썼다.
그렇다. 사용하는 7년동안 네 번이나 노트북을 수리했다.
그랬는데 정말 어느 날 나갔다 화면이. 여느 때와 같이 집으로 돌아와 밥을 먹으면서 영화를 보려고 하는데, 노트북이 아예 아무 소리도 없이 움직이지도 않더라.
나는 그렇게 내 좌절과 성취와 휴식을 함께 한 내 오랜 벗을 보내주기로 마음먹었다.
삼가 맥북의 명복을 빕니다.
그래서? 새로 샀다.
새로운 물건이 오면 새로운 세계가 오는 것이라는데(응?)
얼마나 새로울까?
깔깔깔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