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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래유영 Nov 18. 2020

삼겹살집 매니저에게서 배우는 프로페셔널

어떤 자리에서 일을 해도 멋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 내가 살았던 남영동에는 고깃집으로 이름 좀 날리는 삼대포가 있다. 쌍대포, 진대포, 조대포. 이 세 고깃집은 각자의 장점을 내세우며 오랜 단골들을 확보하고 있다. 나 역시 그 가게들의 유명세를 듣고 모두 방문해 봤지만 단골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애정하고 자주 갔던 집은 조대포 하나였다. 나무랄 데 없는 고기 질과 합리적인 가격도 좋았지만 삼대포라는 세 가지 좋은 보기들 중에서도 이곳만을 고집했던 이유는 매니저의 고객 응대 방식에 있었다.


조대포에 가면 언제나 '그'가 있다. 그는 다른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자리를 친절하게 안내하고, 주문한 음식을 서빙했지만 이러한 평범한 업무에도 그의 일하는 방식에는 일반적인 고깃집 직원들과는 다른 세 가지 포인트가 있었다.


첫 번째, '센스 있는 말재간'

조대포에서는 고기를 찍어먹는 보라색 소금을 준다. 그냥 '이것은 비트 소금인데 찍어먹으면 맛있습니다.' 하면 될 것을 그는 "이 보라색 소금은 비트 소금인데요. 이 비트는 쇼미 더 머니의 드롭 더 비트 아니고요~ 비트코인의 비트도 아니고요~ 빨간 무 아시죠? 그 비트인데 찍어먹으면 맛있어요~"라고 설명한다.

고기와 함께 나오는 소시지를 잘라주면서, "소시지를 자르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바로 귀찮기 때문이죠. 하지만 제가 그걸 해냅니다. 제가 소시지를 자르면? 자, 문어가 됩니다." 등 말재간을 부려 고기를 굽고 있는 뻘쭘한 순간, 분위기를 유머러스하게 전환한다.


두 번째, 그는 다른 직원들과는 다르게 '끝까지 서비스'한다.

일반적인 가게에서는 손님이 금액을 지불하면 모든 서비스가 종료된다. 하지만 그는 계산한 손님 손에 불량식품 같은 과자를 쥐어주고, 문 앞까지 배웅을 나온다. 그리고는 "만세! 해보세요~"한 뒤 페브리즈를 듬뿍 뿌려준다. 과한 서비스로 느껴질 수 있지만 막상 당하면 감격스럽다.


세 번째, 그는 '한결같다'.

우리가 다양한 유형의 식당에서 다양한 성격의 직원을 만나듯 그 역시 착하고 던진 농담에 잘 웃어주는 손님만을 만나기만 했던 것은 아녔을 것이다. 술 먹고 진상을 부리는 손님은 태반고, 그의 멘트에 쓴웃음을 짓거나 귀찮아하는 손님 있었겠지만 그는 항상 미소를 지으며 늘 같은 텐션, 같은 기분으로 손님을 맞이한다.


이야기를 풀기 위해 그의 호칭을 매니저라고 정했지만 그가 청년의 나이이며, 가게를 위해 매우 열심히 일을 한다는 사실만으 그의 위치를 유추한 것일 뿐이지 실제로는 사장인지 그냥 월급을 받는 직원인지는 알 수가 없다. 사장이면 정말 장사 수완이 좋은 사람이고, 일반 직원이라면 사장님이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보물 같은 존재다. 그는 조대포가 아니더라도 어디에서나 인정받을 수 있는 인재일 수밖에 없다.


그의 특별함은 그저 한 끼를 때우러 가는 손님에게 한 끼 이상의 기억을 남긴다.

모든 시작은 창대하다. 원칙과 목표를 세우고 나면 뭐든 다 해낼 수 있을 것만 같다. 단 기간에 끝나는 일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 일은 매일, 매주, 매월 반복된다. 때로는 다른 동료의 업무보다 하찮아 보이거나 혹은 그냥 기분이 안 좋은 날이면 늘 하는 일임에도 소홀해지곤 한다. 일은 매일 같은 모습이지만 그 일을 받아들이는 나는 매일 변하는 것이다. 조대포의 매니저처럼 늘 '한결같이' 일하는 사람을 볼 때면 부끄러움이 밀려온다. 흔히 인간미로 여겨지는 변덕스러운 기분과 태도가 일에서는 적용되지 않는 프로페셔널함을 나는 언제쯤 가질 수 있을까? 조만간 다시 조대포를 찾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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