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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다운 Dec 31. 2022

돈 얘기를 안 할 수가 없어서

나는 오늘을, 너는 내일을 -엄마의 일곱 번째 편지



요 며칠 예년의 12월보다는 낮은 기온의 겨울이 계속됐다. 뉴스에선 몇 년도 이후 가장 추운 12월이라며 한파에 동동거리는 우리의 일상을 연신 뉴스톱으로 내보내며 호들갑 아닌 호들갑을 떨어대고 가뜩이나 어려운 우리네 삶이 더 팍팍하게시리 이 추위를 나게 해 줄 도시가스나 등유, 전기세 등도 적잖이 오를 것이란 전망을 계속 내놓는구나. 가뜩이나 추운 겨울 해가 바뀌면 모든 생활물가가 더 상승할 것이란 뉴스보도가 더 마음을 얼어붙게 하고 몸이 움츠러들게 한다.


22년의 마지막 달은 우리 집에도 찬바람이 스며 스산하다. 어려운 경제에 직방으로 맞았다고 할까.

이번 달은 일이 너무 없어 너의 아빠는 내내 침울하게? 집에 있었지. 코로나 때도 자영업자로 잘 버텼는데. 아니, 그땐 모두들 집에 있는 시간이 강제적으로 늘어난 시기여서 인테리어업에 종사하는 너의 아빠는 오히려 일의 수요가 늘어 좀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런데 이제 아파트 거래가 확연히 줄고 건설 경기 또한 얼어붙어 그 직격탄을 피해 갈 수 없게 됐지.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당장 다음 달부터가 걱정으로 다가오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엄마는 너를 임신하고 처음으로 공포에 맞먹는 경제적 불안감을 경험했다. 경기를 수월찮게 타는 너의 아빠 직업특성상 결혼기간 내내 수입이 일정치 않은 것은 예사였고 일을 못할 때 침울해지는 너의 아빠와는 달리 나는 경제적 불안감은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었다. 우리 둘이 어떻게든 못살까 하는 생각이었고 결혼 전 너의 아빠도 미술 작가, 나도 미술 작가로서 수입이 일정치 않아 최소한의 돈에 적응하고 잘 꾸려간 경험도 있고 해서 별로 돈에 대한 개념이 없었달까, 경제에 아주 무지하다 해야 할까, 돈에 관해서는 미래에 대한 큰 불안감 없이 '어떻게든 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지. 그러나 너를 가지니 덜컥 겁이 났다. 내가 어떻게든 책임져야 하는 존재에 대해 돈은 필수 불가결, 그러나 별로 준비되어있지 않다는 생각이 강했거든.


그래서 엄마는 경제공부를 시작했다. 도대체 돈이 무엇이며 어떡해야 돈이 생기는지,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돈을 벌고 불리는지 이전에는 관심조차 없던 것이 꼭 알아야 할 중차대한 삶의 부분으로 인식됐다. 예전에는 교양으로 그저 넘겨보았던 자본주의에 대해 꼼꼼히 살펴봤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말이야. 평소에는 일절 보지도 않던 유튜브로 다큐멘터리들을 보는데 유튜브의 알고리즘이 안내한 대로 '성공하는 사람은 반드시 하는 몇 가지', '가난한 사람은 매일 하지만 부자들은 절대 하지 않는 무엇', '부자들이 답답해서 알려주는 부의 비밀', '부자의 잠재의식' 등등등. 제목만 보면 혹하는 영상들을 정말 혹해서 클릭하고 웬만한 것은 보도록 애썼다. 뭐랄까. 너무도 쉽게 회자되는 100억 단위의 돈이 무감각하달까. 엄마의 통장잔고를 생각하고 막 시작한 것과 다름없는 마이너스 주식을 생각하고 빚을 생각하고 그러니까 너무 쉽게 100억을 말하는 유튜버의 열띤 경험담이 저 먼 곳의 일들처럼만 느껴지니 나는 부자들이 정말 답답해하는 사람의 유형인 건지.


부동산 투자를 잘해서 7년 만에 다니던 회사를 퇴사해 일찌감치 파이어족이 되고 그 경험담으로 유명 유튜버가 된 어떤 이는 슈퍼카를 굴리며 첫 등장한 연출에 걸맞게 지금은 빌딩 몇 채의 건물주로 월세 수입이 수천만 원에 달한다 했다. 물론 그 콘텐츠로 강연도 하는데  이 사람의 유료강연에 수강한 어느 앳된 청년은 이렇게 말했다.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으려고 이 강연을 들어요. 저는 마트의 당당 치킨 사려고 줄 서는 일은 결코 하고 싶지 않거든요"

...... 글쎄. 돈에 궁핍한 낌새가 있어도 스스로가 부끄러운 감정은 과연 돈이 해결해 줄까. 그리고 저렴한 마트의 치킨을 돈이 없어서 줄 서 먹는다고 어떻게 단정할 수가 있지? 원래 좀 인기 있다 하면 줄 좀 서더라도 한 번  먹어보는 게 한국사람 아닌가? 재미로 호기심으로.

엄마는 이 청년에게 딴지를 걸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단지 이 사회의 현상이 보였지. 부동산 투자, 주식투자, 코인투자, 또 스타트업. 묵묵히 회사 다니며 기존의 방식대로 사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도 투자 붐, 퇴사 붐에 파이어족이 되고 싶은 사람들이, 말하자면 '경제적 자유'를 원하는 사람들이 그 어느 때보다도 많다는 것이.


이미 경제적 자유를 얻은 젊은 유튜버들은 그들의 경험담으로 또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더구나. 계속 강조했다. 자신들이 얼마나 평범했고, 아니 평범 이하였고 돈도 없고 좌절도 많이 했었는지를. 그러나 수많은 자기 계발책을 섭렵하고 무한 긍정의 에너지와 열정적인 실천으로 지금에 이르렀음을. 그리고 너무나 쉽게 그러나 진정으로 말했지. 여러분도 누구나 저처럼 될 수 있다라고.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어떤 유명한 금융인은 수많은 유튜브 채널과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장기투자의 장점에 대해 말하며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고 했어.  유튜버가 당차게 질문하더구나. "장기투자만 하면 부자가 되는데 그럼 모두가 부자가 아니죠?" 그는 대답했지. "내 말을 듣는다고 모두가 따라 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죠."


알겠니? 사람은 각자 타고난 본성이라는 게 있다. 공부도 재능이라는 것은 천편일률적으로 공부, 수능에만 집착하는 우리의 공교육에 비교적 최근에 오가는 담론인데 공부재능, 글 쓰는 재능, 예술적 재능, 과학적 재능이 몇몇의 사람에게 주어지듯 엄마는 '경제적 재능'도 따로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왜, 보면 돈에 관련해 유독 머리 회전이 빠르고 손익 계산 철저한 사람들 있잖아. 부자들의 특징도 늘 머릿속에 '현금 흐름'에 관한 생각이 있다더라고.

우리는 공교육에서 전혀 금융을 배우지 않은 금융문맹이라 노년에 빈곤으로 고생한다는 말이 꼭 틀린 말은 아니야. 아예 무지한 것보단 강제로라도 경제에 관해 배워서 최소한의 경제감각을 익히는 것은 살아가는데 중요하겠지. 우리가 사는 사회가 돌아가는 시스템을 알아야 무지해서 당하는 일 없고. 그러나 모든 필수 교육에서 모든 사람이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경제를 교육하는 나라의 국민이 모두 돈을 잘 벌지는 않을 거야. 경제 전공자도 파산을 할 거고.

어떤 사람은 아주 가난했던 가정형편 때문에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공장에 취직했는데 세상에서 가장 부자는 공장 사장인 줄 알았더란다. 그런데 우연히 그보다 더 부자를 보게 된 거야. 어떡하면 저렇게 돈을 벌까 하고 유심히 보니 방법이 보이더래. 그래서 돈을 모아 건물을 사고 또 불리고 불려서 지금은 몇 채의 건물주에 자신이 쌓은 노하우로 강연까지 해서 돈을 벌더구나. 이쯤 되면 이 사람의 경제 감각은 과히 타고난 것 아니니?


엄마는 그래서 생각해 봤다. 나는 과연 돈에 철저히 집중해서 그에 관련한 일들을 벌일 수 있을까. 내가 당장에 자기 계발서 100권을 읽고 자기 암시글을 하루에 100번 적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긍정적 자기 확언을 되풀이하여 암기하며 내내 머릿속에 내가 원하는 부를 상상할 수 있는가. 창업을 준비하고 당장에 인스타나 오픈마켓 판매를 시작하고 온라인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을 벌이고 마케팅을 하며 종횡무진할 수 있는가. 내가 원하는 것은 그토록 큰 부인가. 내가 원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


결론이 궁금하니?

결코 짧지 않은 시간 공부를 해서 얻은 결론은 글쎄, 좀 더 근본적인 것이더라. 돈을 대하는 태도는 삶을 대하는 태도와 무관하지 않더라. 엄마가 다음 편지에서 돈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하면서 결론을 말해줄게.


오늘은 12월의 마지막 날이다. 내일에 감정적 추위가 예고되어 있어도 오늘을 또 충실히 살아야겠지. 이런 마음을 따뜻이 보듬으며. 새해엔 집에서 아빠를 마주하는 시간이 많아질 수도 있어. 이도는 잘 놀아주는 아빠가 늘 함께 하면 더 좋을 수도 있겠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니 오직 기쁨만을 아는 너는 작은 등을 웅크리고 잠들어 있다. 어떻게든 되겠지. 이 말이 때로는 잔걱정을 털어버리는데 도움을 주지.

내일도 다음 주도 다음 달도 내년도 어떻게든 되는 거야. 오늘 하루를 살면!




DEC. 2022. 엄마의 일곱 번째 편지.


너의 아빠는 우리를 지탱하고 있다. (아빠를 모티브로 한)엄마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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